문집苟全先生文集
苟全先生文集
제목 잡저(雜著), 서(序)
작성자 관리자 [2017-12-23 14: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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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苟全先生文集卷之五]    구전선생문집권지오 

 

[雜著  잡저

   

                        제임진년창의병총록 (壬辰年倡義兵總錄)

    임진왜란 때 각 지방에서 일어났던 의병들의 활동 내역을 정리한 글이다.

    화왕산성(火旺山城)를 중심으로 한 곽재우의 활약을 비롯해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조헌 등 당시 의병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原文(원문)

    題壬辰年倡義兵總錄 (제임진년창의병총록) 

     嗚呼。國有聖君。朝多吉士。堂堂漢道。可謂有盤石之勢。而豈念今者遽爲海冦所抗讐。兇鋒所向。

     오호。국유성군。조다길사。당당한도。가위유반석지세。이기념금자거위해구소항수。흉봉소향

    坐失金湯之險。百萬長驅。如入無人之境乎。嗟我一國上下大小人民婦女被殺見虜者。曾不知其幾千萬億。

    좌실금탕지험。백만장구。여입무인지경호。차아일국상하대소인민부녀피살견로자。증부지기기천만억

    而彼洛矣惟腥惟。百年之廟社靡托。念中路于霜于露。一隅之乘輿何厄。言之至此。不覺痛泣。

    이피락의유성유전。백년지묘사미탁。념중로우상우로。일우지승여하액。언지지차。불각통읍。 

    爲王臣者所當甞膽苦心。唾手杖戈。爲士卒前行。以圖復不共之讐。而奈何列邑官守。一向竄伏深山。

    위왕신자소당상담고심。타수장과。위사졸전행。이도부불공지수。이내하열읍관수。일향찬복심산

    無念討賊之大義。只謀偸生之苟計耶。數箇書生。但學俎豆。未有弓馬之才。寧知軍旅之事。然特立風霜。

    무념토적지대의。지모투생지구계야。수개서생。단학조두。미유궁마지재。영지군여지사。연특입풍상  

    終始一節。其所尙也。生爲義士。死作忠魂。其所願也。寧可全身退坐。徒詠無力整乾坤之句而已乎。

    종시일절。기소상야。생위의사。사작충혼。기소원야。영가전신퇴좌。도영무력정건곤지구이이호

   古語有之  斃蛇掉尾  百蛇生氣  病龍翹首  龍踊躍  以武才言之  則吾輩不過爲斃蛇病龍  而掉尾翹首之際。

    고어유지  폐사도미  백사생기  병용교수  군용용약  이무재언지  칙오배불과위폐사병용  이도미교수지제

    不有生氣踊躍之類乎。抑有說焉。義勝者謀立。有志者事成。苟能有志而義勝。則不難於謀立而事成矣。

    불유생기용약지류호。억유설언。의승자모립。유지자사성。구능유지이의승。칙불난어모입이사성의

    或者有曰介之士。擧皆奔潰而莫敢當其鋒。詩書之儒。素無分寸武勇而猝爲馳騁矢石之間。徒死無功。

    혹자유왈개주지사。거개분궤이막감당기봉。시서지유。소무분촌무용이졸위치빙시석지간。도사무공

    有何補益。此則大不然。夫介之士。能爲國捍衛。不爲奔潰。則雖不爲此擧可也。而今旣不然。

    유하보익。차칙대불연부개지사。능위국한위。불위분궤。칙수불위차거가야。이금기불연

    凡我國內外文武之臣  皆坐視危亡  而鮮效擎天捧日之誠  則十年詩書講明忠義之士  可不忘身徇國以效一死耶。

    범아국내외문무지신  개좌시위망   이선효경천봉일지성   즉십년시서강명충의지사   가불망신순국이효일사야  

    與其徒生。不若義死。鞠躬盡瘁。死則已也。敢與上下同志。分爲部署伍旅。又定規約軍令。部伍之名額。

    여기도생。불약의사。국궁진췌。사칙이야。감여상하동지。분위부서오려。우정규약군령。부오지명액

    約令之條目。昭錄如左。

    약령지조목。소록여좌。                                                                           

 

 [壬辰年倡義兵總錄]     임진년창의병총록     임진년에 의병을 일으킨 총록을 제목으로

 

아아!

국가에는 성군(聖君)이 있고 조정에는 길사(吉士)가 많아 당당(堂堂)한 한도(漢道국운)가 반석같은 형세라고

말할 만한데 오늘날 갑자기 섬 오랑캐가 원수처럼 대항해 와서 사람을 죽이는 흉측한 칼날이 향하는 곳에서,

가만히 앉아서 금성탕지(金城湯池)와 같은 요새를 잃었고 백만이나 되는 군사로 길게 몰아치면서 무인지경으로

들어가 듯 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아!

우리 온 나라의 상하 대소 인민(人民)과 부녀자들이 살해되거나 사로잡힌 자가 그 몇천 명이 되는 줄 모르겠으며,

저 한양도 온통 피비린내와 누린내가 진동하여 그 백년동안 수호해온 종묘(宗廟), 사직(社稷)이 의탁할 데가 없게 되고,

임금님께서 피난길의 중도에서 이슬도 맞고 서리도 맞은 걸 생각하니 국토 끝인 한 쪽 모퉁이인 의주로 향한

임금의 수레 그 무슨 재앙인가?

말이 여기에 이르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흐름을 깨닫지 못하겠다.

임금의 신하된 자는 당연히 쓸개를 씹은 심정과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고통을 참고 근심하며 손에다 침을 뱉으며 창을

힘껏 집고서 사졸(士卒)들의 앞잡이가 되여 함께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를 복수하려고 도모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한결같이 깊은 산 속에 숨기만 하고 적을 토벌하는 대의(大義)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목숨을 아껴 구차스럽게 살 계획만 도모한단 말인가?

몇 사람의 서생(書生)은 단지 예절에 관한 것만 배웠고 무예[궁마(弓馬)]에 대한 재능은 없는데 어찌 군사에 대한 일을

알겠는가?

그러나 바람과 서리에도 우뚝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절개를 지키는 것은 그 숭상하는 바이고 살아서는

의사(義士)가 되고 죽어서는 충신(忠臣)의 넋이 되는 것은 그 원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찌 물러나앉아 몸을 온전히하면서 한낱 아무런 힘없이 하늘과땅이 가지런하다는 글귀만 읊조릴 따름이겠는가?

더구나 엤 말에 죽어 가는 뱀이 꼬리를 흔들자 모든 뱀들이 생기가 나고 병든 용(龍)이 머리를 쳐들자 뭇 용이 날뛰었다.

고 하였다.

군사에 관한 재능으로 말한다면 우리 무리는 죽어가는 뱀이나 병든 용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쳐드는 즈음에 생기가 솟고 날뛰는 부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할 말이 있으니 의리가 뛰어난 자는 계책이 세워지고 뜻이 있는 자는 일이 이루어지는 법이니,

진실로 뜻을 지니고서 의리가 뛰어나다면 계책이 세워지고 일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갑옷을 입은 군사들도 모두가 허물어져 도망하여 감히 그 칼날을 당해내지 못하는데,

시(詩)나 서(書)를 익히는 선비들에게는 본래 무용(武勇)이라고는 한 푼이나 한 치도 없는 터에 갑자기 화살과 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로 달려가게 된다면 한갓 죽음만 있을 뿐 아무런 공이 없을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그렇지 않다.

대저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국가를 위하여 방패 역할을 잘하여 허물어져 도망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은 이미 그렇지도 못하다.

무릇 우리나라 안팎의 문무 신하들이 모두가 위태롭게 망하는 꼴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하늘과 태양을 떠받들 듯 하는

정성을 본받으려는 자가 적다면 10년 동안 시와 서를 익히면서 충성과 의리를 강론하고 밝힌 선비들이 자신을 잊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림으로서 한 번의 죽음을 본받게 하지 않겠는가?

그저 덤덤하게 사는 것 보다 의리에 죽는 것만 못하니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다 죽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상하(上下)의 동지(同志)와 함께 부서(部署)와 군사를 나누고 또 규약(規約)과 군령(軍令)을 정하였다.

부서와 군사의 이름과 정원 그리고 군령과 규약의 조목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기록한다.

 

 

                                               기생변(寄生辨)

  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만이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고 있는 글이다.

  사람들은 기생하는 식물이 나무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것만을 알뿐 이 나무와

  모든 것들이 天地의 작용에 기생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내용이다.

 

 

     原文(원문)

    寄生辨 (기생변) 

    寄生寄生者也。吾不知其何所寄而生耶。以其寄生於木而名之以寄生者耶。抑謂之寄生於上天下地之間耶。

    기생기생자야。오불지기하소기이생야。이기기생어목이명지이기생자야。억위지기생어상천하지지간야

    觀夫寄生之生也。依於木而生。依於木而長。依於木而蕃。其生而長而蕃也。一於木而有依。則似乎寄生於木。

    관부기생지생야。의어목이생。의어목이장。의어목이번。기생이장이번야。일어목이유의。칙사호기생어목

    而又不知木之於寄生也。能潤之以雨露耶。之以雷霆耶。流二氣而造化之耶。行五行而生成之耶。

    이우불지목지어기생야。능윤지이우로야。고지이뢰정야。류이기이조화지야。행오행이생성지야。 

    抑有所栽而植之培而達之者耶。然則木爲寄生之乾坤。而亦寄生之父母也。其恩其德於寄生。爲如何也。

    억유소재이식지배이달지자야。연칙목위기생지건곤。이역기생지부모야。기은기덕어기생。위여하야

    若是而曰以其寄生於木而名之以其實。吾猶信也。不然而潤之於天地之雨露。之於天地之雷霆。

    약시이왈이기기생어목이명지이기실。오유신야。불연이윤지어천지지우로。고지어천지지뢰정。 

    造化於天地之二氣。生成於天地之五行。爲天地所栽植。爲天地所培達。而其於木也。但依之焉附之焉已也。

    조화어천지지이기。생성어천지지오행。위천지소재식。위천지소배달。이기어목야。단의지언부지언이야。 

    則其生也不以木而以天地。無天地無其生矣。然則寄生之爲名。非謂其寄生於木。

    칙기생야불이목이이천지。무천지무기생의。연칙기생지위명。비위기기생어목

    而乃以其寄生於上天下地之間也歟。嗚呼。或飛焉或走焉或山焉或水焉林林焉葱葱焉。盈滿於兩間者。

    이내이기기생어상천하지지간야여。오호。혹비언혹주언혹산언혹수언림림언총총언。영만어량간자

    何莫非寄其生者也。而獨於寄生以寄生名之者。豈不以人知寄生之寄生於木。而或不知天地之所造化於寄生也。

    하막비기기생자야。이독어기생이기생명지자。기불이인지기생지기생어목。이혹불지천지지소조화어기생야。 

    欲人之知寄生於天地。而特標出以名之也。則人之謂寄生寄生於木者。是不知寄生者也。寄生之自謂寄生於木者。

    욕인지지기생어천지。이특표출이명지야。칙인지위기생기생어목자。시불지기생자야。기생지자위기생어목자

    是不知其生者也。人之不知寄生猶之可也。寄生之不知其生。寧有可也。苟或已自知其所以生也。

    시불지기생자야。인지불지기생유지가야。기생지불지기생。영유가야。구혹이자지기소이생야

    而姑爲稱頌之說。以取悅於木。則非吾之所敢取也。然則木與寄生。同爲寄生於天地之間。而各自爲生。

    이고위칭송지설。이취열어목。칙비오지소감취야。연칙목여기생。동위기생어천지지간。이각자위생

    更無相須之理耶  嗚呼  父母生之  兄弟友之  生之者父母  而友之者兄弟也  則寄生之於木  特兄弟而友之焉爾。

    경무상수지리야  오호  부모생지  형제우지  생지자부모  이우지자형제야  칙기생지어목  특형제이우지언이

    夫友也者  輔之以仁  導之以義  仁爲生物之心  義爲利物之德  以生物之心  輔而益之。以利物之德。導而引之。

    부우야자  보지이인  도지이의  인위생물지심  의위리물지덕  이생물지심  보이익지。이리물지덕。도이인지

    使之成其德而達其材。全其體而大其用。則寄生之友於木。木之友寄生。亦豈不重且大哉。松栢。

    사지성기덕이달기재。전기체이대기용。칙기생지우어목。목지우기생。역기불중차대재。황송백。 

    木之直者也高者也有節操者也。亭亭千尺。強項風雪。雖至老死終無以變易焉。若寄生之友於木也。

    목지직자야고자야유절조자야。정정천척。강항풍설。수지로사종무이변역언。약기생지우어목야

    能與松栢者友之。則其資長之道輔益之德。豈啻如蓬之於麻哉。然則寄生於天地而友於木者寄生也。

    능여송백자우지。칙기자장지도보익지덕。기시여봉지어마재。연칙기생어천지이우어목자기생야

    友於木而毋友不爲松栢者。亦寄生也。嗚呼。仲尼大聖人也。於物無不通知。而乃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우어목이무우불위송백자。역기생야。오호。중니대성인야。어물무불통지。이내왈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則人之知松栢也亦難矣。彼寄生者。天地間一微生也。不識不知。順帝之則。又烏知何者爲松何者爲栢哉。

    칙인지지송백야역난의。피기생자。천지간일미생야。불식불지。순제지칙。우오지하자위송하자위백재

    以非松非栢  爲眞松眞栢而友之  不可也  以眞松眞栢  爲非松非栢而不友之  亦不可也  苟得與眞松眞栢而友之。

    이비송비백  위진송진백이우지  불가야  이진송진백  위비송비백이불우지  역불가야  구득여진송진백이우지

    則雖自謂寄生於松栢而歸天地父母之德以頌之。爲松栢者亦將不肯自受其頌。而抑且目之以善柔。必損之矣。

    칙수자위기생어송백이귀천지부모지덕이송지。위송백자역장불긍자수기송。이억차목지이선유。필손지의

    嗚呼。寄生其可不自愼也哉。寄生與吾同胞爲兄弟也。故吾旣爲寄生辨之。又以辭戒之曰天地化之。寄生生之。

    오호。기생기가불자신야재。기생여오동포위형제야。고오기위기생변지。우이사계지왈천지화지。기생생지

    松栢友之。寄生成之。惟天與地。爾父爾母。惟松與栢。爾擇爾友。

    송백우지。기생성지。유천여지。이부이모。유송여백。이택이우                  

 

 [寄生辨]   기생변    혼자 살 수 없는 동식물이 다른 동식물에 붙어서 사는데 대한 변

 

기생(寄生)이란 것은 다름 동식물에 붙어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디에 붙어서 살아가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이 나무에 붙어서 산다고 하여 기생이란 이름을 붙인 것인가?

아니면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 사이에 붙어산다는 것을 말한 것인가?

대체로 기생의 일생을 관찰하면 나무를 의지하여 번성하니 그의 출생과 성장과 번성이 한결같이

나무에 의지하게 되므로 나무에 붙어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또 나무가 기생에 대해서 모르기는 하지만 비와 이슬을 내려 윤택하게 하며 격열한 우뢰로 고동(敲動)하게 하며,

음양(陰陽)의 두 기운이 유행하여 조화(造化)가 되게 하며 오행(五行)이 제 역할을 하여 생성(生成)하게 해서인가?

아니면 그것을 심어서 가꾸며 뿌리를 북돋아 가지를 트이게 하는 바가 있어서인가?

그렇다면 나무는 기생의 하늘과 땅이 되며 또한 기생의 부모가 되는 샘이니 기생에게 그 은혜와 덕택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이와 같고서야 그것이 나무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그실상을 가지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하여도 나는오히려 그말을 믿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하늘과 땅의 비와 이슬로 윤택하게 하였고 하늘과 땅의 격열한 우뢰로 고동시켰고 하늘과 땅의

두 기운에 의해 조화되었고 하늘과 땅의 오행에 의해 생성되었고 하늘과 땅의 심고 가꾸는 바가 되었고 하늘과 땅의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를 트이게 하는 바가 되었으며 그나무에 있어서는 단지 의지하기만 하고 붙어 있었던 것 뿐이라면

기생이 생겨나는 것은 나무 때문이 아니고 하늘과 땅 때문인 것이니 하늘과 땅이 없었으면 그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생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그가 나무에 기생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 땅 사이에서 기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아!

날아다니거나 기어다니거나 산에 있거나 물에 있거나 떼를 지어 살거나 무성한 모양을 하고서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있는 것으로 어느 것인들 그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 의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유별나게 기생에게만 붙어산다고 이름을 붙인 것은 어찌 사람이 기생이 나무에 붙어서 사는 것만알고

간혹 하늘과 땅의 조화가운데 붙어산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기생이 하늘과 땅 사이에 붙어사는 것을 알고 특별히 드러내어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면 사람이 기생더러 나무에

붙어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붙어산다고 하는것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며 기생이 자신 더러 나무에 붙어산다고 하는것은

그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 붙어사는 것에 대하여 모르는것은 그래도 되겠지만 기생이 그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모른다는 것이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진실로 강혹 이미 기생이 그가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알고서 임시 방편으로 칭송(稱頌)하는 말을 하면서 나무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은 내가 감히 취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무와 기생은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붙어 살면서 각자가 삶을 누리는 것이며 다시 서러를 필요로 기다리는

이치가 없다는 것이다.

아아!

부모(父母)는 낳아 주시고 형제(兄弟)는 우애를 하니 낳아준 이는 부모이고 우애해 주는 이는 형제인 것이니 기생이

나무에게는 특별히 형제와 같은 격으로 벗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벗한다는 것은 인(仁)으로서 도우며 의(義)로서 인도하는 것이니 인은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이 되고

의는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덕이 되니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으로 도와서 보태게 하며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덕으로 유도하여 끌어주어 그로하여금 그 덕을 이루게하고 그 재능을 다하게 하며 그 본체를 온전하게 하고 그작용을

크게 한다면 기생이 나무에게 우애하는 것과 나무가 기생에게 벗하는 것 또한 어찌 중대(重大)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소나무와 잣나무는 나무 가운데서도 곧고,높고 절조(節操)가 있는 나무이다.

천길이나 우뚝솟아 바람과 눈서리에 끄덕도 하지 않으며 비록 늙어서 죽는데 이르러도 끝까지 그절개를 바꾸지 않는다. 

만약 기생이 나무에게 벗하면서 소나무와잣나무 같은 자와 더불어 우애한다면 그 으뢰하여 성장하는 방법과 도와서

유익하게 하는 덕이 어찌 쑥대가 삼[마(麻)] 가운데서 자라는 경우와 같겠는가?

그렇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붙어 살면서 나무에게 우애하는 자는 기생이며 나무에게 벗하면서 소나무와 잣나무같지

않으면 벗하지 않는 자 또한 기생인 것이다.

아아!

공자(孔子)는 큰 성인(聖人)이다.

그래서 만물에 대하여 환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말씀하기를 날씨가 매우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 고  하였으니,

일반 사람들이 소나무와 잣나무에 대하여 안다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이다.

저 기생인 자는 하늘과 땅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미미한 생물이다.

아무 것도 모르며 지혜롭지 못하고 자연의 법칙만 순종하는데,

또한 어떻게 어느 것이 소나무이고 어느 것이 잣나무인 줄 알겠는가?

소나무도 아니고 잣나무도 아닌 것을 진짜 소나무와 진짜 잣나무로 여기고 우애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진짜 소나무와 진짜 잣나무를 소나무도 아니고 잣나무도 아니라고 하면서 우애하지 않는 것도 옳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진짜 소나무와 진짜 잣나무를 얻어 그와 함께 우애를 하면서 자신이 소나무와 잣나무에 붙어 산다고 여겨,

하늘과 땅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은덕을 소나무와 잣나무에게 돌리며 칭송한다면 소나무와 잣나무 또한 스스로

그 칭송받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아니면 또 유순한 듯 하면서 아첨만 잘하고 성실하지 않아 반드시 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지목할 것이다.

아아!

기생이 그것을 스스로 신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생은 나의 동포(同胞)와 형제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미 기생에 대한 분변하는 글을 지었다.

그리고 사(辭)를 지어 다음과 같이 경꼐한다.

 

天地化之   천지화지   하늘과 땅의 조화로

寄生生之   기생생지   기생이 태어나

松柏友之   송백우지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애하여

寄生成之   기생성지   기생이 성장한다.

 

惟天與地   유천여지   하늘과 땅이

爾父爾母   이부이모   너의 아버지이며 너의 어머니이고

惟松與柏   유송여백   소나무와 잣나무가

爾擇爾友   이택이우   네가 가려서 네가 벗할 대상이네.

 

 

                                      치원암중수권방(致遠庵重修勸牓)

  퇴계의 유적이 남아있는 淸凉山 일대를 둘러보고 致遠庵의 중건을 제창하는 격문이다.

 

     原文(원문)

    致遠庵重修勸牓 (치원암중수권방)

     寒岡先生莅安東之四月。乘暇日來登淸凉山。爲訪先師退陶李先生遺迹也。見其峯巒寺刹。寸草片石。

     한강선생리안동지사월。승가일래등청량산。위방선사퇴도이선생유적야。견기봉만사찰。촌초편석

     盖皆先師之所甞遊詠  則其激感追慕之深  固已無所不然  而至於致遠庵壁上  仰觀先師及一時門生十數人姓字。

     개개선사지소상유영  즉기격감추모지심   고이무소불연   이지어치원암벽상   앙관선사급일시문생십수인성자

     知其爲先師手筆  則遂斂袵起敬。仍爲之愴然良久  旣而歎曰我先師之題于此  于今四十四年  歿又三十八年之久。

     지기위선사수필  칙수렴임기경。잉위지창연량구   기이탄왈아선사지제우차   우금사십사년  몰우삼십팔년지구

     而古壁遺墨。尙如日星。凜乎若面承警咳。今來所得。豈復有大於此也。但庵空已久。風雨飄搖。樑椽欲摧。

     이고벽유묵。상여일성。름호약면승경해。금래소득。기부유대어차야。단암공이구。풍우표요。량연욕최

     勢將頹顚  若不及今修復  則深懼先師手迹  亦且隨庵而泯滅  無以起後學之感  而繼我遊此山者  又將何所得焉。

     세장퇴전  약불급금수부  칙심구선사수적  역차수암이민멸  무이기후학지감  이계아유차산자  우장하소득언

     爲吾輩者。盍謀所以重創是庵。爲尊敬無之地耶。從遊五六人。皆再拜謝。因薦可幹僧一勳名者爲化主。

     위오배자。합모소이중창시암。위존경무궁지지야。종유오륙인。개재배사。인천가간승일훈명자위화주

     於是先生命中淸作一文字如僧家勸緣之例。付諸勳師。令乞貨於所題門人後裔及他後生之慕先賢者。以成其事。

     어시선생명중청작일문자여승가권연지례。부제훈사。영걸화어소제문인후예급타후생지모선현자。이성기사

     噫寒岡之於退陶。其尊敬之至。此可見矣。今玆之擧。豈爲區區一僧舍云乎哉。凡我近隣士林。若能見得此意。

     희한강지어퇴도。기존경지지。차가견의。금자지거。기위구구일승사운호재。범아근린사림。약능견득차의

     捐出米布若干。以扶萬一。則亦可謂寒岡之徒也已。

     연출미포약간。이부만일。칙역가위한강지도야이                                     

 

 [致遠庵重修勸牓]    치원암중수권방    치원암을 중수하는데 시주를 권하는 글

 

한강선생(寒岡先生)이 안동(安東)에 부임한 4월에 한가한 날을 틈타 청량산(淸凉山)에 올랐는데,

선사(先師)이신 퇴도 이선생(退陶李先生)의 유적(遺蹟)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의 산봉우리와 절 그리고 조그마한 풀이나 한 조각의돌도 모두 선사께서 일찍이 유람하여 글을 읊으신 대상이였으니

그 감격스럽고 추모하는 깊은 정은 진실로 이미 그렇지 않을 데가 없었다.

그런데 치원암(致遠庵)의 벽 위에 선사 및 당시의 문생(門生) 십수 명의 성(姓)과 자(字)를 우러러 보면 그것이 선사께서

손수 쓰신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르러서는 마침내 옷깃을 여미고 공경을 표하고 그래서 한참 동안 슬퍼하였다.

이윽고 탄식하기를 우리 선사께서 여기다 글을 쓰신 지 이제 44년이 되였고 또 돌아가신 지도 38년이 되였다.

그런데 오래된 벽에 남기신 글씨가 오히려 태양과 별처럼 빛이나 늠름하게 대면하여 음성을 받드는 것 같으니

이번에 와서 얻은 바가 어찌 이보다 큰 것이 있겠는가?

다만 암자를 비워 둔지 이미 오래되어 비바람에 씻기고 흔들려 대들보와 서까래가 부러지려고 하며 형세가 장차

무너질 것 같다 만약 지금 수리하여 예전처럼 복구하지 않는다면 선사께서 손수 쓰신 필적 또한 암자를 따라서 없어져

후학(後學)들에게 감격을 일으키게 할 자료가 없게 될까 매우 두렵고 우리의 뒤를 이어 이 청량산을 유람하는 자가 또한

앞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뜻을 같이하는 우리 무리가 어찌 암자를 중창(重創)하여 선사를 한없이 존경하는 바탕으로 삼기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하므로 종유(從遊)하던 5,6인이 모두 두 번 절을 하며 사례하였다.

그래서 일을 주관할 일훈(一勳)이란 이름의 중을 추천하여 화주(化主)로 삼았다.

이에 선생이 중청(中淸)에 명하여 한 편의 글을 짓되 불가[승가(僧家)]에서 권연(勸緣:보시(布施)하기를 권함)하는

사례와 같이 하여 중 일훈에게 넘겨주어 그로 하여금 벽에 쓰여 있는 문인(門人)들의 후손 및 다른 후생(後生)으로

선현(先賢) 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재물을 구걸하게 하여 그 일을 이루도록 하였다.

아! 한강선생의 스승 퇴도선생에 대한 그 지극한 존경심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이 거사가 어찌 구구한 하나의 암자[승사(僧舍)]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모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의 사림(士林)들이 만약 이 뜻을 잘 이해하여 얼마의 쌀이나 베를 기부하여 만에 하나라도

돕는다면 역시 한강(寒岡)의 제자(弟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주(化主:어떤 일을 맡아서 행하는 주인공.]

 

     의은고종사전설용여작림우고(擬殷高宗賜傅說用汝作霖雨誥)

    현명한 인재의 등용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글이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전설(傅說)을 등용해

    그를 극심한 가뭄을 해갈시켜 주는 장대비로 삼겠다 라고 한

    서경(書經) 설명(說命)편의 구절에 의거해서 지은 글이다.

 

     原文(원문)

    擬殷高宗賜傳說用汝作霖雨誥 (의은고종사전설용여작림우고) 

     國須賢而治  鮮我覯德  君倚相而重  望汝非常  尙明聽之  有切喩者。曰若大旱之歲。所謂恒燠之灾。禾稼卒痒。

     국수현이치  선아구덕  군의상이중  망여비상  상명청지  유절유자。왈약대한지세。소위항욱지재。화가졸양

     哀我赤子之命近。雲漢有倬。奈此蒼昊之膏屯。當是之時。爭歌其雨。油然作沛然下。倘有三日之來。

     애아적자지명근。운한유탁。내차창호지고둔。당시지시。쟁가기우。유연작패연하。당유삼일지래

     蔚乎興藹乎生。忽見萬彙之遂。斯爲利矣。不亦樂乎。若比於人。非汝伊誰。其未得也。台不敢言。云旣置諸。

     울호흥애호생。홀견만휘지수。사위리의。불역악호。약비어인。비여이수。기미득야。태불감언。운기치제

     汝以爲依。故任之以納誨。又望之以作霖  惟汝說  務敏多聞。學古有獲。板築其業。豈無經濟之心。胥靡爲徒。

     여이위의。고임지이납회。우망지이작림  유여설   무민다문。학고유획。판축기업。기무경제지심。서미위도

     空懷致澤之術。惟天降任之有待。於人聞達之何求。適値小子恭默之辰。遂膺上帝簡托之命。夢中利見。

     공회치택지술。유천강임지유대。어인문달지하구。적치소자공묵지진。수응상제간탁지명。몽중이견

     已信予弼之良。天下旁求。果得厥象之肖。爰立一介。俾緫百官。爾交修予。委而責之非一。予今命爾。

     이신여필지량。천하방구。과득궐상지초。원립일개。비총백관。이교수여。위이책지비일。여금명이

     擬諸用者有三。作礪於金。欲其輔己。作川之楫。欲其濟民。輔己者猶恐其或偏。濟民者猶恐其未博。

     의제용자유삼。작려어금。욕기보기。작천지즙。욕기제민。보기자유공기혹편。제민자유공기미박。 

     顧惟德施之普。曷若霖雨之霑。迺亢迺愆。方其爲虐。大甚。旣優旣渥。寧有彼界此疆。肆予之切於資賢。

     고유덕시지보。갈약림우지점。내항내건。방기위학。대심。기우기악。영유피계차강。사여지절어자현

     至此而極其期望。是宜陰陽睽異 戒曰豫之咎徵。雷雨滿盈  以濟屯之大象  啓乃沃朕。吻上下而流通。交地與天。

     지차이극기기망。시의음양규이 계왈예지구징。뢰우만영   이제둔지대상  계내옥짐。 문상하이류통。교지여천

     致時運之亨泰。零時雨而化物。無密雲之自郊。嗚呼。惟時蹇難。則爲大旱。厥民困苦。其亦極無。汝其雨哉。

     치시운지형태。령시우이화물。무밀운지자교。오호。유시건난。칙위대한。궐민곤고。기역극무。여기우재

     汝其備矣。嗚呼。四海仰朕德。時乃之風。萬姓霑朕恩。時乃之雨。毋替朕命。惟克汝諧 。 

     여기비의。오호。사해앙짐덕。시내지풍。만성점짐은。시내지우。무체짐명。유극여해 。 

 

 

 [擬殷高宗賜傳說用汝作霖雨誥]      의은고종사전설용여작림우고

은나라 고종이 부열에게 날이 크게 가물 때는 너를 장마비 역할을 하게

한다는 훈계를 내린 것을 모방하다

 

국가는 현명한 사람을 기다려 다스려지는데 나는 덕이 있는 이를 본 적이 드물고 임금은 재상을 의지하여 정중해지기에

그대에 데한 기대가 범상하지 않으니 분명히 들으라, 비유를 절실하게 하는 자가 이르기를 큰 가뭄이 든 헤에 이른바

오래도록 더운 열기의 재해로 농사가 갑자기 병이 들어 애처로운 우리 백성들의 운명이 주나라 선왕(宣王) 때 가뭄이

극심하여 조야(朝野)가애를 태우던 것과 가까운데도 이렇게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은택을 막이버리는 데야 어쩌랴

이런 때를 당하여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올라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기를 다투어 노래하는데 혹시 이렇게 3일쯤 내리면

시들었던 초목들이 다시 무성하게 생기를 발하게 되며 갑자기 만물이 성취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것이 이로움이

되니 또한 즐겁지 않으랴?  고  하였다.  만약 사람에게 비교한다면 그대가 아니고 누구 이겠는가?

얻지 못하였응 적에는 내가 감히 말을 못하였지만 이미 나의 좌우에 배치하고 그대를 의지하려 한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임무를 맡기고 큰 가뭄에 장마비 구실하기를 바라니 오직 그대 부열[전설(傳說)]은 힘써

민첩하게 하며 들은 것이 많고 옛날의 훈계를 배워 얻은 것이 있으니 미천하게 야인 생활을 하면서 어찌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없었겠는가마는 서로 무리가 되지 못하여공연히 은택이 이르게 하는 술책만 품고 있었다.

하늘이 적임자를 내리는 데는 기다림이 있는데 사람들에게서 명성이 높고 현달하다는 소문을 어찌 구하랴?

마침 소자(小子)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잠자코 도를 생각하는 때를 만나 마침내 상제(上帝)께서 선발하여 맡기게

해주시는 명을 받았으니 꿈속에서 그 대상을 보고 이미 나의 훌륭한 보필임을 믿었으며 천하 사방에 찾게 하여 과연

꿈에서 본 어진 사람을 세워서 모든 관원을 거느리게 하였네 그대와 교유하면서 나 자신을 다듬고 큰 일을 맡기고

책임을지운 것이 한가지가 아니며 내가 지금 그대에게 명하여 활용하고 모방하려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지 내가 만약

쇠 같은 경우 그대가 배나 노의 역할을 하라는 것은 백성을 구제하려고 해서인데 자신을 보필하는데는 오히려 그것이

혹시라도 치우칠까 두렵고 백성을 구제하는데는 오히려 그것을 널리 못할까 두렵네 돌이켜보며 생각하건데 덕(德)을

넓게 베푸는 것이 어찌 장마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것만 같겠는가?

가뭄이 들어 바야흐로 그위세가 대단할 때에 장마비가 이미 흡족하게 적셔준다면 어찌 파차(彼此)의 경계[계강(界疆)]가

따로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진 이에게 의뢰하려는 절실함이 여기에 이르러 극진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기대하기로는 음양(陰陽)이 어긋나는 것을 적절하게 하고 게으름은 천벌(天罰)의 징조임을 경계삼아 말하며

천둥과 비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것은 막힌 것을 구제할 큰 형상이고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내 마음을 기름지게 함은

위와 아래의 뜻이 들어맞아 유통(流通)이 되는 것이다.

땅과 하늘이 교통하여 시운(時運)을 형태(亨泰)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때를 맞추어 떨어지는 비가 만물을 변화시킴에

짙게 낀 구름은 서교(西郊)에서 오지 않도다.

아아!  오직 시절이 험난함은 큰 가뭄이 들어서이며 그 백성들의 고달픔 또한 극도에 이르렀으니 그대가 장마비

구실을 못하겠는가?

그대는 대비할 지어다.

아아!  온 천하가 나의 덕을 우러르는데 이는 그대의 가르침에서이며 모든 백성이 나의 은혜에 젖는데 이는 그대가

장마비 구실을 한데서이니 나의 명을 쇠미하게 하지 말고 그대는 잘 화합하도록 하기 바란다.

 

 

                                       설직설 (舌織說)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직분을 구분하면서 군자의 일을 혀(舌)로

   문장(文章)을 짓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글이다.

   소인의 일이 실로 베를 짜는 것이 일이라면 군자의 일은 경전(經典)과

   성인들 가르침을 재료로 혀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原文(원문)

     舌織說  (설직설)

      儒有衣縫掖之衣。坐一室書史中。憑几而談皇王。揚眉吐舌。日以討論爲事。於是負機杼而過門者曰。

      유유의봉액지의。좌일실서사중。빙궤이담황왕。양미토설。일이토론위사。어시부기저이과문자왈

      我農家者流。請爲子直之。夫織而後衣。乃君子食力之義。子奚爲不自織。徒騁高談大言。厲吾民以自衣也。

      아농가자류。청위자직지。부직이후의。내군자식력지의。자해위불자직。도빙고담대언。려오민이자의야

      縫掖先生莞爾而笑。遂作而曰。爾誠小人也。知小人之事而已。盖蠶焉織焉以衣人之餘。自衣其身者。

      봉액선생완이이소。수작이왈。이성소인야。지소인지사이이。개잠언직언이의인지여。자의기신자

      非小人之事乎。若夫大人之事。固不可織且爲也。堯舜文武之道。具在方策。其文卽詩書禮樂也。幼而學也。

      비소인지사호。약부대인지사。고불가직차위야。요순문무지도。구재방책。기문즉시서례악야。유이학야

      談玆在玆。壯而行也。說玆在玆。腐其唇勞其心。俛焉孶孶。惟日不足者。舍此而何求。以之而黼黻皇猷。

      담자재자。장이행야。설자재자。부기진로기심。면언자자。유일불족자。사차이하구。이지이보불황유

      以之而絲吾民。大矣哉。大人之事也。大人以是道治小人。故小人以其織衣大人。猶農夫以粟易械器也。

      이지이사곡오민。대의재。대인지사야。대인이시도치소인。고소인이기직의대인。유농부이속역계기야

      無大人之治則無小人之織。小人之織。卽大人之織。夫豈厲云乎哉。噫事吾之事而能使織者織。

      무대인지치칙무소인지직。소인지직。즉대인지직。부기려운호재。희사오지사이능사직자직

      修吾之修而常自衣其衣。織於不織。衣無不給。大人之織。其諸異乎人之織歟。

      수오지수이상자의기의。직어불직。의무불급。대인지직。기제이호인지직여

      然則詩書也禮樂也堯舜也文武也其杼也。而經之者惟吾舌也。緯之者亦惟吾舌也。是故吾之於織也。

      연칙시서야예악야요순야문무야기저야。이경지자유오설야。위지자역유오설야。시고오지어직야

      視吾舌尙存而已。吾舌存焉則織成其文。煥乎可觀。可以服堯舜。可以補衮闕。擧天下將囿於不寒之域。

      시오설상존이이。오설존언칙직성기문。환호가관。가이복요순。가이보곤궐。거천하장유어불한지역

      豈特衣縫掖而已哉。嗚呼。舌織之事。實孔孟之所行。而舌織之說。始出於王勃。勃亦大人也耳。言未訖。

      기특의봉액이이재。오호。설직지사。실공맹지소행。이설직지설。시출어왕발。발역대인야이。언미흘

      所謂農家者流。咋舌而悔。拜手而請曰今日利見。衣此德言。願擲機杼而學焉。       

      소위농가자류。사설이회。배수이청왈금일이견。의차덕언。원척기저이학언。  

 

 [舌織說]     설직설     말로서 길쌈을 한다는 설

 

선비가 도포를 입고 서책이 가득한 방 가운데 앉아 안석[궤(几)]에 기대어 옛날의 훌륭한 제왕(帝王)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원기 왕성하게 눈썹을 쳐들고 말을 하며 날마다 토론(討論)하는 것을 일삼고 있었다.

그런데 베틀과 북[기저(機杼)을 짊어지고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선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부류의 사람인데 그대의 잘목을 바로 잡기 바람니다.

대저 길쌈을 한 뒤에야 옷을 입는다는 것이 바로 군자가 열심히 일을하여 먹고산다는 뜻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길쌈은 하지 않고 한갓 고상한 이야기와 큰 소리나 늘어놓고 우리 서민들을 학대하면서 스스로 옷을 입고 있습니까? 

하자, 도포를 입은 선생이 빙긋이 웃더니 마침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소인(小人)이구려 그래서 소인의 일만 알고 있을 뿐이구려. 대체로 누에를 치고 길쌈을 하여

다른 사람을 입히고 남은 것으로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소인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인(大人)의 일이란 진실로 길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요(堯)임금, 순(舜)임금, 그리고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고(道)는 서책[간책(簡策)]에 갖추어져 있으며 그 글은 바로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악기(樂記)인 것이다.

어려서 글을 배울적에는 이를 이야기하고 이를 관찰하며 장성해서 배운것을 행할적에는 이를 설명하고 이를 관찰하면서

그 입술이 문드러지고 그 마음이 괴롭도록 부지런히 힘을 쓰면서도 오직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는데 이것을 버리고

무엇을 구하겠는가?

그렇게 한 경륜(經倫)으로 제왕의 통치(統治)하는 계책을 도와 문체가 나게 하며 그렇게 경륜으로 우리 백성들이

먹고 입게 하니 크도다 대인의 일이여!  대인이 이러한 도(道)를 가지고 소인을 다스리기 때문에 소인이 그가 길쌈한

것으로 대인이 입도록 하니 그것은 농부가 곡식을 가지고 기계(器械)와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대인의 다스림이 없으면 소인의 길쌈이 없게 되니 소인의 길쌈은 바로 대인의 길쌈인 것인데 어찌하여 그들은

학대한다고 하는가?

아!  나의 일을 일삼아 하면서도 길쌈하는 자로 하여금 길쌈을 할 수 있게 하며 내가 수양해야 할 바를 수양하면서도

항상 스스로 그 옷을 입으며 길쌈을 하거나 길쌈을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도 옷을 공급하지 않음이 없게 하니,

대인의 길쌈은 그 보통 사람의 길쌈과는 다르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시경,서경,예기,악기와 요임금,순임금,문왕,무왕은 그 베틀의 북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하겠으며,

그 날줄 역할을 하는 것은 오직 나의 혀[설(舌)]이며 씨줄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나의 혀인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길쌈을 하는데 있어서는 나의 혀가 그대로 보존되었는가를 볼뿐이니 나의 혀가 보존되었다면 길쌈하는

것이 문체를 이루어 볼만하고 빛나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법복(法服)을 입을 수 있으며 제왕(帝王)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어 온 천하가 장차 춥지 않은 지역으로 보호하게 될 터이니 어찌 특별히 도포를 입고 있을 따름이 겠는가?

아아!

혀로 길쌈하는 일은 실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행하던 바이며 혀로 길쌈한다는 말은 당(唐)나라 왕발(王勃)에게서

처음으로 나왔는데 왕발 역시 대인일 뿐이오.  하였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른바 농사짓는 부류의 사람아라고 말한 자가 혀를 깨물며 후회하고 머리를 손이 있는 데까지

숙여 절을 하면서 청하기를,  오늘 대인을 뵙게 되고 이렇게 덕(德)스러운 말씀을 옷을 입혀 주듯 들려주시니 원하건데

베특과 북을 던져 버리고 배우게 해주소서.   하였다.

 

                                 장량청사호서(張良請四皓書)

    상산(啇山)에 은거(隱居)한 사선생(四先生)에게 출사를 부탁하는

    중국(中國) 한(漢)나라 때의 장량(張良)의 편지 내용을 적고 있는 글이다.

 

   原文(원문)

    張良請四皓書 (장량청사호서) 

    月日。留侯張良。謹奉書于商山四老人足下。良遠惟蘭窓蕙幄。鳳儀聯床。長歌紫芝。夢斷風埃。令人景仰。

    월일。유후장량。근봉서우상산사로인족하。양원유란창혜악。봉의연상。장가자지。몽단풍애。영인경앙。 

    良爲韓投漢  係嬰蹙籍  志願幸畢  導引成癖  杜門謝事  五年于玆  不幸今者  樹子將易  我小君使使要不佞。

    위한투한  계영축적   지원행필   도인성벽   두문사사  오년우자   불행금자   수자장역   아소군사사요불녕

    欲與籌畫。夫以御史之期期。太傅之頸血。不能回豁達之聽。有寵之戚姬。類己之如意。已蠱於寬仁之心。

    욕여주화。부이어사지기기。태부지경혈。불능회활달지청。유총지척희。류기지여의。이고어관인지심

    如良輩到此地頭。亦且無如何矣。竊慮以爲與吾君爭。不若輔貳君之德。欲輔其德。又不若來老成之人。

    여량배도차지두。역차무여하의。절려이위여오군쟁。불약보이군지덕。욕보기덕。우불약래로성지인

    方今晦伯夷太公之迹。養伊尹傅說之志。木居鹿遊。若將終身。而如聞善養盍歸乎來者。惟我四先生在。

    방금회백이태공지적。양이윤부설지지。목거녹유。약장종신。이여문선양합귀호래자。유아사선생재。 

    四先生一者之來  豈不九鼎大呂我貳君哉  士之生世  必將有爲  大深山  黃䤋枯項  豈先生所欲  而坑焚禍烈。

    사선생일자지래  기불구정대려아이군재   사지생세   필장유위   대질심산   황욱고항  기선생소욕   이갱분화렬

    風雨霽。雖遭聖明之世。尙堅若之節。此實不得已也。先生試念儲皇仁孝之質。其易得乎。及時補翼。

    풍우제지。수조성명지세。상견약매지절。차실불득이야。선생시념저황인효지질。기역득호。급시보익

    其可緩乎。嫡統之見奪。其忍恝乎。天下之大本。其不定乎。四先生之處乎山也。固非果於忘世。則出而濟世。

    기가완호。적통지견탈。기인괄호。천하지대본。기불정호。사선생지처호산야。고비과어망세。칙출이제세

    此非其時歟  帝以趙王爲類己  其意不過不如如意則無以有己之天下也  苟以儲皇之質  輔之以先生  則其德之成。

    차비기시여  제이조왕위류기  기의불과불여여의칙무이유기지천하야  구이저황지질  보지이선생  칙기덕지성

    將不啻類帝而已。帝之所高。無有如四先生。平生所高而不得見者。一朝在儲皇之側。則帝之視儲皇。

    장불시류제이이。황제지소고。무유여사선생。평생소고이불득견자。일조재저황지측。칙제지시저황。 

    必以爲高於己數等。夫豈曰仁弱也哉。若然則漢之有天下。不待爭而自歸於嫡。漢之家法。不待矯而能得其正。

    필이위고어기수등。부기왈인약야재。약연칙한지유천하。불대쟁이자귀어적。한지가법。불대교이능득기정

    當此之時。時運之盛衰。國家之興亡。實係於四先生一去就之間。先生不起。當如時運何。當如國家何。

    당차지시。시운지성쇠。국가지흥망。실계어사선생일거취지간。선생불기。당여시운하。당여국가하

    方漢之得天下也。不敢煩先生者。誠以馬上之業。掉良等三寸舌。有不足定。而又有如蕭何,韓信左右焉耳。

    방한지득천하야。불감번선생자。성이마상지업。도량등삼촌설。유불족정。이우유여소하,한신좌우언이

    及其旣定。帝之望先生非不久也。而先生之不屑就。非直慢侮之聲有以拒之。而天下國家猶可委之於良輩也已。

    급기기정。제지망선생비불구야。이선생지불설취。비직만모지성유이거지。이천하국가유가위지어량배야이

    今則不然。如良輩百數。固難以容力於其間。天下國家之重。有不得不屬於四先生。而四先生之狂奔盡氣。

    금칙불연。여량배백수。고난이용력어기간。천하국가지중。유부득불속어사선생。이사선생지광분진기。 

    豈特如捄焚拯溺而已。其在于秦。扶以長子見廢。卒使胡亥而亡秦。四先生於是時。雖色擧網外。鴻飛萬丈。

    기특여구분증닉이이。기재우진。부어이장자견폐。졸사호해이망진。사선생어시시。수색거망외。홍비만장

    而其袖手越視之恨。固已不釋於中。相與付之於時勢。而自不覺吁然長歎者。不知其幾歲月耶。先生此日。

    이기수수월시지한。고이불석어중。상여부지어시세。이자불각우연장탄자。불지기기세월야。선생차일。 

    若或終始靳出。不一賁然。則是欲秦我漢也。扶我儲皇也。無秦時勢而又忍秦之。使我元良。未免爲扶之歸。

    약혹종시근출。불일분연。칙시욕진아한야。부어아저황야。무진시세이우인진지。사아원량。미면위부어지귀

    則抑恐四先生將不得以高蹈一節。贖天下後世之深責。先生其思之。良竊見今去呂澤所奉貳君一書。詞氣之卑巽。

    칙억공사선생장부득이고도일절。속천하후세지심책。선생기사지。양절견금거려택소봉이군일서。사기지비손

    語意之懇切。誠有如古聖王者。其蒲輪束帛。亦不下聘莘之盛擧。切願四先生幡然彙征。以慰瞻望。國家幸甚。

    어의지간절。성유여고성왕자。기포륜속백。역불하빙신지성거。절원사선생번연휘정。이위첨망。국가행심

    天下幸甚。

    천하행                                                                               

 

[張良請四皓書]     장량청사호서     장량이 사호에게 청하는 편지

 

월일에 유후(留侯) 장량(張良)은 삼가 상산(商山)의 사로인 족하(四老人足下)에게 편지를 올립니다.

장량이 멀리서 생각하옵건데 난창혜악(蘭窓蕙幄)에서 봉황(鳳凰)과 같은 고고한 자세로 책상을 맞대고

자지곡조(紫芝曲調)를 길게 노래하며 꿈속에서도 속세[풍애(風埃)와의 인연을 끊으려고 생각하시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사모하게 합니다.

장량은 한(韓)나라를 위하여 한(漢)나라에 몸을 던져 진왕(秦王) 자영(子嬰)을 결박 지워 항복하게 하고

초패왕(楚覇王) 항적(項籍)의 세력을 위축시켜 원하고 바라던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러나 몸과 수족을 굴신(屈伸)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이  고질(痼疾)이 되어,

문을 닫고 세상의 일과 관계를 끊은 지 이제 5년이 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요즈음 천자(天子)의 명령으로 태자(太子)를 장차 바꾸려 하자 우라 황후(皇后)가 사자(使者)로

하여금 재능이 없는 장량에게 거기에 대한 계책을 강구하라고 합니다.

대저 어사(御史)가 진지하고 간결하게 간하고 태부(太傅)인 숙손통(叔孫通)이 태자를 바꾼다면 자신은 목을 찔러

그 피로 땅을 더럽히겠다.

고  하면서 간하였지만 도량이 큰 제왕의 마음을 돌릴 수 없는데 총애를 받고 있는 척희(戚姬)와

한고조(漢高祖)와 비슷하다는 척희의 아들 여의(如意)가 이미 너그럽고 인자한 한고조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니,

장량같은 무리로는 이런 입장에 다달아 역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데 우리 임금과 다투기 보다는 태자의 덕(德)을 보필하는 것이 낫겠으며 그 덕을 보필하려는 데는 또

노성(老成)한 분을 오도록 하는 것만 못합니다.

바야흐로 지금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의 자취는 감추고 이윤(伊尹)과 부열(傅說)의 뜻은 길러서 산 속에서 나무와

사슴과 생활하고 노닐며 마치 장차 일생을 마치려고 하겠지만 만일 잘 대우하는 군주가 있다는 소문을 들을 것 같으면

그런 군주에게 어찌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할 분으로는 오직 우리 네 분 선생이 계십니다.

네 분 선생께서 함께 오신다면 어찌 구정(九鼎)과 대려(大呂)가 우리 태자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반드시 해놓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깊은 산 속에서 나이 많도록 누런 얼굴에다 야위어

뼈만 남은 목덜미로 생활하는 것이 어찌 네 분 선생의 하고 싶어하는 바이겠습니까?

하지만 진시황(秦始皇)이 선비들을 생매장하고 경전(經傳)을 불태워 버린 화(禍)가 대단하였고 그 뒤의 혼란이 더디게

안정이 되었습니다.

비록 고명(高明)한 덕이 있는 군주가 다스리는 세상을 만났다 하더라도 오히려 자신의 지조를 더럽힐까 더 굳게 하시니

이는 실로 어쩔 수 없어서입니다.

하오나 선생께서는 시험 삼아 생각해 보소서 태자의 어질고 효성스러운 자질을 쉽게 얻을 수 있겠으며 때에 미쳐서 돕고

보좌하는 것을 늦출 수 있겠으며 적통(嫡統)을 빼았기는데도 그것을 차마 편안한 마음으로 복 수 있겠으며 천하의 큰

근본인 태자가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네 분 선생이 깊은 산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진실로 정말 세상의 일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진출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지금이 그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한고조가 조왕(趙王) 여의를 자기와 비슷하다고 여기는데 그 뜻은 여의같지 않으면 자기가 소유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데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태자의 자질에다 네 분 선생이 보필하신다면 그 덕이 성취되는 것은 장차 한고조와 비슷할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한고조가 존경하는 바로는 네 분 선생 같은 이가 있지 않은데 평생토록 존경하면서도 복 수 없었던 분들이

하루 아침에 태자 곁에 있게 되면 한고조가 태자를 보는데 있어서 반드시 자기 계책의 등급보다 높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인애(仁愛)가 연약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다면 한(漢)나라가 천하를 소유함에 있어 다투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저절로 적자(嫡子)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한나라의 가법(家法)도 바로잡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 올바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를 당하여 시운(時運)의 융성과 쇠퇴와 국가의 흥성과 멸망이 실제로 네 분 선생의 물러나고 진취하는데

사이에 달려 있는데 선생께서 일어나지 않으시면 시운을 어떻게 할 것이며 국가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야흐로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무렵에 감히 선생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전쟁터에서의 일은 장량 등이

세 치(寸)의 혀를 흔들었지만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또한 소하(蕭何)와 한신(韓信)같은 이가 있어 좌우에서

도왔었기 때문에서 입니다.

그러나 이미 안정이된데 이르러서도 고조(高祖)가 선생을 바라본지가 오래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선생이 진취하는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고조가 오만하게 선비를 업신여긴다는 소문이 거절하는 계기가 되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량같은 무리가 백 명이 된다 하여도 진실로 그 상에서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천하 국가의 중대함이 네 분 선생에게 달려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네 분 성생이 매우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기개를 다 발휘한다면 어찌 불 가운데서 구제하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내는 것과 같을 따름이겠습니까?

그 진(秦)나라에 있어서는 부소(扶蘇)가 장자(長子)로서 태자의 지위에서 폐출당하고 마침내 그의 동생인 호해(胡亥)가

왕위에 올라 진나라가 멸망하였는데 네 분 선생은 그 당시 비록 진나라의 영향권 밖에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다가

기러기가 만 길이나 높이 날아가 버리듯 떠나버려 그저 팔짱만 끼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구경만 하였던 한(恨)은

진실로 이미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았을 터이며 서로 시세(時勢)에 떠넘겨 보았지만 아! 하고 길게 탄식하게 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지가 모르기는 하지만 그 세월이 얼마나 되였습니까?

선생이 오늘날에 만약 혹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광스럽게 한번 나오기를 아낀다면 이는 우리 한(漢)나라를

진(秦)나라 처럼 우리 태자를 부소처럼 만드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나라의 시세가 없는데도 또 차마 진나라처럼 만들어 우리 태자로 하여금 부소가 당한 꼴을 모면하지 못하게 한다면

아마도 네 분 선생이 장차 뛰어난 절개를 지니고서도 천하 후세의 대단한 책망을 듣게되지 않을 수 없게 될 터이니

선생은 그것을 생각하소서.

장량이 이번에 그곳을 찾아가는 여택(呂澤)이 받들고 있는 태자의 편지 한 통을 보니 문장의 기세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말의 내용이 간절하여 참으로 옛날의 성왕(聖王)과 같으며 그 예물을 갖추어 정중하게 모시려고 하는 것도

옛날 탕(湯)임금이 이윤(伊尹)을 신야(莘野)에서 맞아온 융성한 일에 밑돌지 않습니다.

간절히 원하건데 네 분 선생이 생각을 바꾸고 함께 나오셔서 우러러보는 마음을 위로하게 하신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이

겠으며 천하에 매우 다행이 겠습니다.

 

[난창혜악(蘭窓蕙幄:향기나는 나무로 만든 창문과 향기나는 풀로 만든 장막. 현자(賢者)가 거처하는 곳.]

[자지곡조(紫芝曲調:상산사노(商山四老)가 지은 보라빛 영지(靈芝)에 대한 노래. 은거(隱居)하는 내용의 노래.]

[백이(伯夷:은(殷)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자 이를 간하였으며 무왕이 천하를 치자 동생 숙제(叔齊)와 주(周)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으로 도망가서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 굶어 죽었음.]

[태공(太公:주문왕(周文王)의 재상. 성(姓)은 처(妻) 이름은 여상(呂尙)임.]

[이윤(伊尹:은(殷)나라 태종(太宗)의 현상(賢相). 이름은 지(摯).농부였으나 탕왕(湯王)이 세 번이나 초빙하여 출사함.]

[부열(傅說: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현상(賢相).]

[구정(九鼎:우왕(禹王) 때 주조(鑄造)한 솥. 하.은.주(夏.殷.周)삼대가 서로 전한 보배임.]

[대려(大呂:옛날 중국의 큰 종(鐘)의 이름. 구정(九鼎)과 더불어 주(周)나라의 보기(寶器). 귀중한 물건을 뜻하기도 함.]

 

                             음유철송판 (飮乳輟訟判)

   형제(兄弟)간의 소송(訴訟) 사건의 처리방법에 대해 논한 글이다

 

   原文(원문)

   飮乳輟訟判  (음유철송판)

    惟訟終凶 其何能  有恥且格  必也使無  况同氣之有爭  豈片言而可折  某等三枝一本  五健二剛。窒惕多年。

    유송종흉 기하능곡   유치차격  필야사무   황동기지유쟁   기편언이가절   모등삼지일본  오건이강。질척다년

    每見大人而求卞。怨讐同室。誰復孺子之慕慈。虞爭芮田。不啻墻鬩。楚視秦敵。有甚弓翩。一家之天理遂堙。

    매견대인이구변。원수동실。수부유자지모자。우쟁예전。불시장혁。초시진적。유심궁편。일가지천리수인

    三刀之風習可耻。聽之吾猶人也。奈咸輔之爲難知。其各有天焉。惟格心之宜急時。用命我厨宰。饋爾嬭漿。

    삼도지풍습가치。청지오유인야。내함보지위난지。기각유천언。유격심지의급시。용명아주재。궤이내장

    曾黃口之所甞。次第試飮。豈丹衷之無感。庶自深思。目下淚之交如。其泣也悔。齒嚙膚而自忸。所思何長。

    증황구지소상。차제시음。기단충지무감。서자심사。목하루지교여。기읍야회。치교부이자뉴。소사하장

    念昔共生  如見乃父乃母  從玆式好  更得爲弟爲兄  爰回忿爭之辭  竟作歸逋之請  於戱  斯可已矣  能自知之。

    념석공생  여견내부내모   종자식호   경득위제위형   원회분쟁지사   경작귀포지청  어희  사가이의   능자지지

    同歸友于。不須明辨其曲直。有如乳耳。盖亦永保其安貞。

    동귀우우。불수명변기곡직。유여유이。개역영보기안정                               

 

 [飮乳輟訟判]  월과로 짓다[과제]    음유철송판    젖을 머금고 소송의 판단을 그만 두다

 

소송은 끝내는 흉(凶)하니 그것이 어찌 훌륭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서 바른 길에 이르게 해야하며 반드시 소송이 없게 해야 한다.

더구나 동기(同氣)간에 다툼이 있는데 어떻게 한마디 말로 절충할 수 있겠는가?

모(某)등은 한 근본에서 세 가지가 나왔는데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강건(剛健)하여 서로의 사이가 막히므로

두렵게 여긴 지가 여러 해 되었으며 매번 대인(大人)을 보면 분변해 주기를 구하였다.

한 집에서 원수처럼 여기는데 누가 어린아이가 자모(慈母)를 그리워하는 점을 회복시키겠는가?

우(虞) 예(芮)두 나라의 임금이 전지(田地)의 소유권을 가지고 다툰 것은 형제(兄弟)가 집안에서 다툰것 뿐만의 일이

아니며 초(楚)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을 적대시하여 화살을 피하는 것보다 심하게 하니 한 집안의 천리(天理)는

드디어 없어졌으며 세 자루의 칼이 들보에 걸려 있는 꿈을 꾸고서 영전(榮轉)한 풍습은 부끄럽게 여길 만 하도다.

소송을 들음에 있어 나두 다른 사람과 같지만 모두 돕고 인도하기를 어렵게 여기는데야 어쩌랴?

그 제각기 천성(天性)이 있음을 알아서 오직 마음을 바로잡는 일을 당연히 서둘러야 한다.

이 때문에 내가 부얶에서 음식을 만드는 자에게 명하여 너희에게 젖을 넣어 끓인 미음을 먹도록 하였다.

일찍이 나이가 어렸을 적에 맛보았던 것을 차례로 시험삼아 마시게 하니 어찌 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에 감동이

없겠는가?

모두 스스로 깊이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뒤범벅이 될 터이니 그 울먹임은 치아(齒牙)가 자기 살점을 깨문 것을

뉘우치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 데서이니 생각하는 바가 어찌 길 수 있겠는가?

옛날 한 핏줄로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마치 너의 부모(父母)를 보는 것 같으며 이로부터 형제간에 서로 화합하면

다시 형제를 얻은 것이 될 터이니 분(忿)이 나서 소송하는 글을 돌려 끝내 물러나서 피하겠다는 청원의 글을 지으라.

아아!

이 일은 그만 두는 것이 좋으니 스스로 그것을 잘 알아서 형제가 함께 우애(友愛)하는 데로 돌아갈 것이다.

그 잘 잘못을 명백하게 분변할 필요가 없으며 젖을 감키는 것과 같게 할 뿐이다.

그렇게 하면 대체로 그 안정되고 올바름을 영원히 보존할 것이다..

 

                 사최수일문효우제(賜崔倕一門孝友制)

   최수(崔倕) 집안의 효성과 우애를 포상하는 제문(制文)이다.

 

     原文(원문)

    賜崔倕一門孝友制  (사최수일문효우제)

     六行之首孝友。德莫大焉。三代以下澆漓。民鮮久矣。盖有之而未見。幸於是乎得聞。盍示寵嘉。俾有矜式。

     육행지수효우。덕막대언。삼대이하요리。민선구의。개유지이미견。행어시호득문。합시총가。비유긍식。 

     某京兆望族。博陵世家。念枝葉之同根。分異爲耻。守門戶也有法。敦睦相期。慈愛盡於父兄。恪恭著於子弟。

     모경조망족。박릉세가。염지엽지동근。분이위치。수문호야유법。 돈목상기。자애진어부형。각공저어자제

     一室累世。古蔡家之祖子孫。百年同厨。今田氏之伯仲季。明倫序於骨肉。有順無疆。自期功而緦麻。莫遠具爾。

     일실루세。고채가지조자손。백년동주。금전씨지백중계。명륜서어골육。유순무강。자기공이시마。막원구이

     光德之里名斯協。睦親之家道乃肥。况六賢之肯堂。推百源而徇國。宜士夫之是傚。所以旌之。于世道而有裨。

     광덕지리명사협。목친지가도내비。황육현지긍당。추백원이순국。의사부지시효。소이정지。우세도이유비

     將何報也  一門友一門孝  名言在玆  千載後千載前  疇德加此  是用錫以朕命  知不愧于爾心。於戱。孝也友也。

     장하보야  일문우일문효   명언재자   천재후천재전  주덕가차   시용석이짐명   지불괴우이심。어희。효야우야

     民間倘因表宅而有勸。家而國而。天下庶見比屋之可封。不顯其光。勿替而引。

     민간당인표댁이유권。가이국이。천하서견비옥지가봉。불현기광。물체이인     

 

[賜崔倕一門孝友制]     사최수일문효우제    

최수 집안의 효도와 우애에 대하여 임금이 내리는 글을 대신 짓다

 

육행(六行)의 으뜸인 효도와 우애는 그보다 더 큰 덕목(德目)이 없다.

삼대(三代:하(夏),은(殷),주(周)이하로는 인정이 야박하여 백성들 가운데 잘 아는 이가 드물게 된 지 오래이다.

그리고 또 있기는 하되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얻어듣게 되었으니 어찌 은총을 내려 가상하게 여기는 뜻을 보이며 그로 하여금 모범을 삼도록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개는 한성의 명망이 있는 문벌이며 박릉(博陵:박천(博川)의 대대로 벼슬한 집안이다.

가지와 잎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생각하고 나누어지거나 다르게 변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문호(門戶)를 지키는

법도가 있어 화목을 두텁게 하기를 서로 기약하여 부형(父兄)이 자애(慈愛)를 다하니 자제(子弟)에게는

공손함이 드러나한 집안에서 여러 대(代)가 살고 있다.

옛날 채씨(蔡氏) 집안의 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가 1백년 동안 한 집에서 생활하였으며 근세에는 전씨(田氏)의

백씨(伯氏), 중씨(仲氏(, 계씨(季氏)가 인륜을 밝히고 골육지친(骨肉之親)의 차례를 정하여 순종하고 억지로 하는 일이

없었으며 기년복(朞年服)이나 대공(大功),소공(小功)그리고 시마복(緦麻服)을 입는 친족애서부터 먼 친족을 가릴것 없이

모두 그렇게 하였으니 덕을 빛낸다는 광덕(光德)이란 마을 이름이 여기서 들어맞았으며 친족과 화목하는 집안의 도리가

윤택해지게 되였다.

더구나 여섯 분의 현인(賢人)이 선대(先代)의 유업을 잘 계승하고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인 효도를 미루어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으니 사대부(士大夫)들이 이를 본 받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표(旌表)하는 까닭은 세상의 도의에 보탬이 있어서인데 장차 어떻게 보답해 주어야 하겠는가?

한 집안의 우애와 한 집안의 효도에 대하여 칭찬하는 만이 여기에 있으니,

천년 뒤나 천년 앞에 누구의 덕인들 이보다 더하겠는가?

이 때문에 짐(朕)이 명을 내리노니 그대 마음에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줄 안다.

아아!

효도와 우애는 민간(民間)에서 간혹 어느 집안을 정표하는 것으로써 권면이 되니

집안과 국가 그리고 천하의 집집마다 표창받기를 바란다.

쇠퇴하지 말도록 하고 신장되게 하라. 

 

[육행(六行:효(孝:부모에 대한 효도(孝道), 우(友:형제간의 우애(友愛),목(睦:구족(九族)간의 화목(和睦),

          인(姻:인척(姻戚)간의 정분이 두터움),임(任:남을 위하여 힘씀), 휼(恤:없는 자를 구휼(救恤)함)

 

                                   역괘초상구육설(易卦初上九六說)

    주역(周易) 괘(卦)의 첫 효(爻)와 마지막 효(爻)의 이름을 다른 효(爻)들과 달리

    초육(初六)이나 상구(上九)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原文(원문)

    易卦初上九六說 (역괘초상구육설)

    或疑第一爻不曰一。乃曰初。不稱九初六初。如九二六二。而乃稱初九初六何歟。旣以初六爲例。

    혹의제일효불왈일。내왈초。불칭구초육초。여구이육이。이내칭초구초육하여。기이초육위례。 

    則何不曰二九二六三九三六歟。第六爻之稱上。亦何歟。愚意以爲太極動而陰陽生。有陰陽之象。

    칙하불왈이구이육삼구삼륙여。제육효지칭상。역하여。우의이위태극동이음양생。유음양지상。 

    便有天一地二之數。以是象以是數。交變成卦。而德之剛柔。位之高下。事之始終。莫不備具。

    편유천일지이지수。이시상이시수。교변성괘。이덕지강유。위지고하。사지시종。막불비구

    故六十四卦之各卦各爻。以剛柔爲德。以高下爲位。以始終爲事。自然而然。爲開物成務之體用。

    고육십사괘지각괘각효。이강유위덕。이고하위위。이시종위사。자연이연。위개물성무지체용

    聖人之觀象而繫以辭也。擧其事之始處。稱初於第一爻。係之以九六。而數與剛柔在其中。擧其德之剛柔。

    성인지관상이계이사야。거기사지시처。칭초어제일효。계지이구육。이수여강유재기중。거기덕지강유

    稱九稱六於二三四五爻。係之以二三四五而始終與數在其中。擧其位之高者。稱上於第六爻。

    칭구칭육어이삼사오효。계지이이삼사오이시종여수재기중。거기위지고자。칭상어제육효

    係之以九六而始終與剛柔與數在其中。盖初爻則明其事之始也。二三四五爻則明其德之剛柔也。

    계지이구륙이시종여강유여수재기중。개초효칙명기사지시야。이삼사오효칙명기덕지강유야。 

    上爻則明其位之高也。旣明其始於初爻。則終固不言而可知。旣明其高於上爻。則下固不言而可見。

    상효칙명기위지고야。기명기시어초효。칙종고불언이가지。기명기고어상효。칙하고불언이가견。 

    中四爻旣明其辨剛辨柔之規  則初爻與上爻九六字  雖係於初上字之下  不患其不分剛柔矣  然則其曰初九初六。

    중사효기명기변강변유지규  즉초효여상효구륙자   수계어초상자지하   불환기불분강유의   연칙기왈초구초육

    九二六二。九三六三。九四六四。九五六五。上九上六者。就其始終剛柔高下之可明處明之。

    구이육이。구삼육삼。구사육사。구오육오。상구상육자。취기시종강유고하지가명처명지

    而以其初上九六四箇字  該盡位德與事  隨其著明之輕重而上下焉  使陰陽之象數位德與事  暸然於眼着指點之間

    이이기초상구륙사개자  해진위덕여사   수기저명지경중이상하언   사음양지상수위덕여사  료연어안착지점지간  

    有是哉。周公之立言揭義也。或疑陰陽爻雖直稱剛柔。宜無不可。而必以老陽老陰數稱九稱六者何歟。

    유시재。주공지립언게의야。혹의음양효수직칭강유。의무불가。이필이노양노음수칭구칭육자하여。 

    愚以爲交易變易而爲易。則其交與變。只是數之行也。故不得不以陰陽老數稱其剛柔。以明其體立於奇偶之有象。

    우이위교역변역이위역。칙기교여변。지시수지행야。고부득불이음양로수칭기강유。이명기체입어기우지유상

    而用著於變動之以數耳。

    이용저어변동지이수이                                                                    

 

 [易卦初上九六說]   역괘초상구육설  주역의 괘에서 초구,초육,상구, 강육이라고 하는데 대한 설

 

 간혹 주역(周易) 괘(卦)

제1효(효(爻:역(易)의 괘를 나타내는 가로그은 획一을 양효--를 음효 라고함.)를 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초(初)라고 말하며 또 구이(九二)나 육이(六二)처럼 구초(九初), 육초(六初)라고 부르지 않고,

초구(初九:맨 아래의 효, 즉 첫효가 양(一)효임을 말함.), 초육(初六:맴 밑의효,즉 처음 효가 음(--)효를 말함.)으로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미 초육으로 예를 들었다면 어찌하여 구이,육이 구삼,육삼으로 부르고,

이구(二九),이육(二六),삼구(三九),삼육(三六)으로 부르지 않는가?

그리고 제육효를 상(上)으로 부르는 것 또한 무엇 때문인가?

나의 의견으로는 태극(太極)이 공(動)하여 음양(陰陽)이 생겨나고 음양의 상(象)이 있게 되어 문득 천(天)은 일(一)이고

지(地)는 이(二)라는 수(數)가 있게 되었으며 이 상(象)과 이 수(數)가 번갈아 변하여 괘(卦)를 이루게 되였다.

그래서 덕(德)의 강유(剛柔)와 위(位)의 고하(高下)와 일의 시종(始終)이 구비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육십사괘의

각 괘와 각 효가 강유로 덕을 삼고 고하로 위를 삼으며 시종으로 일을 삼아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개물성무(開物成務)하는

본체와 작용으로 삼으며 성인(聖人)이 상(象)을 관찰하고서 괘(卦)를 설명하는 계사를 지었다.

그래서 그 일의 시잣하는 곳을 거론하면서 제1효를 초(初)라고 일컫고 구와 육으로 이었는데 수(數)와 강유(剛柔)는

그 가운데 있게 되고 그 덕의 강유를 거론하면서 2,3,4,5효를 구하라 일컫기도 하고 육이라 일컫기도 하면서 2,3,4,5,로

이었는데 시종과 수는 그 가운데 있게 되며 그 위(位)의 높은 것을 거론하면서 제육효를 상(上)이라 일컫고 구와 육으로

이었는데 시종과 강유와 수가 그 가운데 있게 했다.

대체로 초효(初爻)의 경우는 그 일의 시작을 밝혔고 2,3,4,5효의 경우는 그 덕의 강유를 밝혔으며 상효(上爻)의 경우는

그 위(位)의 높음을 밝혔다.

이미 그 시작에 대해서 초효에서 밝혔다면 그일의 마무리는 진실로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으며 이미 그 위의 높음을

상효(上爻)에서 밝혔다면 그 낮은데 대해서는 진실로 말하지 않더라도 볼 수 있고 가운데 4효에서 이미 그 강(剛)을

분변하고 유(柔)를 분변하는 규칙을 밝혔다면 초효(初爻)와 상효(上爻)의 구육(九六)이 글자는 비록 초자(初字)와

상자(上字)의 아래에 매었다 하더라도 그 강과 유가 나누어지지 않았음을 근심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 말한 초구,초육,구이,육이,구삼,육삼,구사,육사,구오,육오,상구,상육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종과 강유와

고하를 밝힐 만한 곳에 나아가 밝히는 것이니 그 초상 구육(初上九六) 네 개의 글자에 위(位)와 덕(德)과 일이

모두 갖추어져 그 밝게 나타나는 경중(輕重)을 따라 올리고 낮추는 것이다.

그래서 음양의 상(象)과 수(數)와 위(位)와 덕(德)과 일이 시선이 닿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이에 또렸하니

주공(周公)이 후세에 전할 만한 의론을 세우고 뜻을 게시함이 이와 같구려!

그런데 간혹 의심하기를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를 비록 곧장 강(剛)이나 유(柔)로 일컫더라도 의당 불가함은 없을

터인데 반드시 노양(老陽),노음(老陰)이라고 하며 구(數)도 구(九)로 일컫기도 하고 육(六)으로 일컫기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생각하기를 교역(交易)하기도 하고 변역(變易)하기도 하는 것이 주역(周易)이 되니 그 교역과 변역은 단지 이 수가

운행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짤 수 없이 음양의 노수(老數)로 그 강유를 일컬어 그 본체가 기수(奇數)와 우수(偶數)의 상(象)이 있는데서

수립이 되고 작용은 변동(變動)하는 수(數)에서 나타남을 밝힐 뿐이다.

 

[태극(太極:역학(易學)에서 말하는 우주 만물이 생긴 근원(根原)인 본체.하늘과 땅이 나눠지기 전의 게상.원시상테.]

[개물성무(開物成務: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도리를 깨달아 이것을 실재로 시행하여 성공함을 뜻함.]

 

                                                       서묘설(鼠猫說)

   1621년 김중청(金中靑)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의 계양동(桂場洞)에 살 때 지은 것으로

   쥐처럼 하찮은 생물이라도 세력을 얻게 되면 고양이도 이들을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우언적(寓言的)인 글이다.

 

     原文(원문)

      鼠猫說 (서묘설)

      苟全翁罷官歸  賃寡屋 爲屋僻而古  多碩鼠  其咬弄穿嚙之聲  亂走橫突之狀  無少有忌於人  翁實無如之何

      구전옹파관귀  임거촌과옥 위옥벽이고  다석서  기교롱천교니성  난주횡돌지장  무소유기어인  옹실무여지하  

      乃令閤屬借隣猫以去之  猫之至也 投身暗隙  張目甕底  遇一老魁而獲之  以咆哮于中閨  大喫之旣 於是血濺陰途

      내금합속차린묘이거지  묘지지야 투신암극  장목옹저  우일노괴이획지  이포효우중규  대끽지기어시천혈음도 

      威振窮  自初昏抵天亮  無復跳梁 翁得以安寢  乃曰是能去害  若留數日夜  其永無吾虞矣  遂命厚飼而居之

      위진궁두  자초혼저천량  무복도량 옹득이안침  내왈시능거해  약류수일야  기영무오우의  수명후사이거지

      翼夜鼠皆緣壁而走 直上天帳 托迹於棲松之間 乍叫乍止以甞之 猫揚尾狺吼 仰首瞪視 終無以用武 則鼠之憑陵踊躍

      익야서개연벽이주 직상천장 탁적어서송지간 사규사지이상지 묘양미은후 앙수징시 종무이용무 칙서지빙릉용약

      日甚一日  畢竟墜溺流屎於猫之頭上  猫自狼懥裂眦  狂跳盡氣而止  夫鼠乃一卑汚之物  而托得其勢  猫不能去之

      일심일일  필경추익류시어묘지두상  묘자랑치열자  광도진기이지  부서내일비오지물  이탁득기세  묘불능거지

      非徒不能去 反受其侮不少 此習馴長 其害轉熾帳 毁松壞屋 終顚覆而後已 猫焉用哉 翁何以哉咄

      비도불능거 반수기모불소 차습순장 기해전치장 훼송괴옥 종전복이후이 묘언용재 옹하이재돌

      天啓紀元辛酉首春 書于桂塲洞琴書小窩

      천계기원신유수춘 서우계장동금서소와                                                

 

  [鼠猫說]     서묘설     쥐와 고양이에 대한 설

 

구전옹(苟全翁)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시골의 조그마한 집을 세(貰)를 내어 살았다.

그런데 외진 곳이고 낡아서 큰 쥐들이 많아 찍찍거리며 소란을 피우고 물어뜯으며 구멍을 뚫는 소리를 내기도 하며

요란하게 달리기도 하며 느닷없이 충돌하는 모양은 조금도 사람을 꺼리는 눈치가 없었으므로 구전옹도 실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속[합속(閤屬)]에게 이웃집의 고양이를 빌려다 그들을 제거하도록 하였다.

고양이를 빌려오자 고양이가 어두운 틈 사이에 몸을 숨기고 항아리 밑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한 마리의 괴수 쥐를

발견하고는 그를 사로잡아 깊숙한 집 안채에서 으르렁거리며 거세게 그것을 먹어 치우기를 마치니 피는 쥐들이 다니는

침침한 길에 뿌려지고 위세는 쥐들이 다니는 좁은 구멍에가 떨치게 되어 초저녁부터 날이 환하게 샐 때까지 다시는

날뛰는 일이 없게 되어 구전옹이 편안하 잠을 잘 수 있게 되였다.

그제야 말하기를 이 고양이가 피해를 없앨 수 있으니 며칠 밤만 이곳에 머물러 있게 할 것 같으면 나의 근심거리를

영원히 없게 할 것이다.   라고  하고는,

마침내 먹이를 많이 주고 머물게 하도록 명하였다.

그랬더니 이튿날[익야(翼夜)]밤에 쥐들이 모두 벽을 타고 달아나기도 하고 천장(天帳)으로 곧장 올라가기도 하더니

소나무 숲 사이를 집을 삼아 자취를 의탁하고는 잠깐 울부짖었다가 잠깐 멈추기도 하면서 고양이를 시험해 보는데,

고양이가 꼬리를 쳐들고 으르렁거리며 머리를 쳐들고 똑바로 쳐다보기만 하고서 끝내 무용(武勇)을 사용하지 않자,

쥐들이 그들의 세력을 믿고 함부로 날뛰는 일이 날마다 심해져 필경(畢竟)에는 고양이 머리에다 오줌을 떨어트리도 하고

똥을 싸기도 하지만 고양이는 스스로 진퇴양난의 꼴이 되어 찢어질 듯한 눈초리로 미친 것 처럼 날뛰다가 기운이 다하여

멈출 뿐이였다.

대체로 쥐는 바로 하나의 보잘것 없는 더러운 생물이다.

하지만 그들이 의탁하여 세력을 얻개 되면 고양이도 제거 할 수 없게 된다.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풍습이 길들여지고 자라게 되면 그 피해는 매우 심하게 되어 장막을 훼손시키고 소나무를 무너트리다가 끝내는

가옥(家屋)을 허물어지게 한 뒤에야 그만 두게 되는 그 때에는 이 고양이를 어디다 쓰겠으며,

구전옹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아!!

 

천계(天啓:명나라 희종(熹宗)의 연호) 기원원년(紀元) 신유년(辛酉年 1621 광해13)

초봄에 계장동(桂場洞) 금서소와(琴書小窩)에서 구전(苟全)은 쓰다.

 

                                      송두석실권방(松竇石室勸牓)

    (僧) 덕윤(德潤)의 도움으로 송두(松竇)에 석실(石室)을 만들면서 쓴 글이다.

 

    原文(원문)

    松竇石室勸 (송두석실권방)

    松竇之勝  尙無其主   豈非天地慳秘而然耶   余有誅茅托迹之計   其如窮窶何   僧德潤爲我謀營   未知誰其主張

    송두지승  상무기주    기비천지간비이연야     여유주모탁적지계    기여궁구하    승덕윤위아모영    미지수기주장

    而又誰分付耶  旣有主張  又有分付  而地得我我得僧  將有所擧措於千百年一日  則又安知親友之欲成人之美者

    이우수분부야   기유주장  우유분부   이지득아아득승   장유소거조어천백년일일  즉우안지친우지욕성인지미자

    爭自樂爲之扶補也哉  僧乎僧乎  試爲我勸且請焉

    쟁자악위지부보야재   승호승호  시위아권차청언                                            

 

 [松竇石室勸]     송두석실권방     송두석실에 대하여 권하는 패

 

경치 좋은 송두(松竇)에 아직 주인이 없으니 어찌 하늘과 땅이 아끼고 비밀로 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거기에다 띠를 베어내고 의탁했으면 하는 계획은 있었지만 형편이 너무 가난한데야 어떻게 하랴?

그러던 차 덕윤(德潤) 스닌이 나를 위하여 집은 지어 주려고 도모하는데 누가 그렇게 하도록 주청했는지

또한 누가 분부를 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주청항 이가 있고 또 분부가 있어 땅은 나를 얻었고 나는 중을 얻어 장차 천백년에 하루쯤은 활동할 곳이

있게 되었으니 또 어떻게 친구 가운데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려고 하는 자가 다투어 스스로 기꺼이

도와 줄런지 알겠는가?

스님!   스님!   시험삼아 나를 위해 권면하고 청원해주오.

 

 

                    제신인공책서(題贐人空冊書)

 1616년 누군가의 방문을 받고 보낼 때 전별금을 주지 못하고

 백지 책 한 질을 대신 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原文(원문)

    題贐人空冊書 (제신인공책서) 

     別君經一年  君以新恩來  余所慰也  見君僅三日  君向達城去  余所惜也  慰惜交介於中  而又未免添一愧字

     별군경일년  군이신은래  여소위야  견군근삼일  군향달성거  여소석야  위석교개어중  이우미면첨일괴자

     愛莫贐之也已  敢以素藤編一空帙  衣黃而付君  以爲受采之資  噫我以白傳君  君以虛受我  豈非吾黨一好事

     애막신지야이  감이소등편일공질  의황이부군  이위수채지자  희아이백전군  군이허수아  기비오당일호사

     而題却好文字   以爲時習之資   仍體黃中之道    他日相聚   示我所就   其在于君  嗚呼  窮達榮苦  離合悲懽

     이제각호문자   이위시습지자   잉체황중지도    타일상취   시아소취   기재우군  오호  궁달영고  이합비

     吾知空乎空矣  欲言無言  不勉有勉  君勿空吾贈焉  萬曆丙辰冬孟  書于晩竹軒

     오지공호공의  욕언무언  불면유면  군물공오증언  만력병진동맹  서우만죽헌   

 

 [題贐人空冊書]     제신인공책서     길 떠나는 사람에게 공책을 주면서 써준 글

 

그대와 이별한 지가 1년이 지났는데 그대가 새로 과거에 급제하여 왔으니 내가 위로해야 할 바이다.

하지만 그대를 본지 겨우 3일 만에 그대가 달성(達城)을 향하여 떠나니 내가 애석하게 여겨야 할 바이다.

위로와 애석함이 마음에 번갈아 남아 읶는데 거기에다 부끄럽다는 괴자(愧字)까지 보태게 됨을 면할 길이 없다.

그대를 아끼면서도 길 떠나는데 노자로 줄 것이 없어 감히 흰 종이로 엮은 한 질의 공책을 누른 색의 책가위를 해서

그대에게 주어 좋은 글로 채우는 바탕이 되게 하련다.

아!  나는 빈 것을 그대에게 전하였고 그대는 빈 것을 나에게 받았으니 어찌 우리 무리에게 있어 하나의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문득 좋은 문자(文字)를 적어 때때로 익히는 자료로 삼도록 하고 그래서 심중(心中)의 덕(德)에 대한 도(道)를 체득하여

뒷날 서로 만났을 때에 나에게 성취된 바를 보여주는 일은 그대에게 있다.

아아!

곤궁과 통달, 영화와 괴로움,그리고 이별과 상봉,슬픔과 즐거움이 나는 허망됨을 알았기에 말을 하려고 하면 할말이

없어지고 힘쓰지 않아도 힘쓰게 되니 그대는 내가 준 것을 헛되지 말게 하라.

 

만력(萬曆 병진(丙辰 1616 광해8년) 초겨울에 만죽헌(晩竹軒)에서 구전(苟全)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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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로송씨족보서冶爐宋氏族譜序)

    야성군(冶城君)의 십구대손송대진(十九代孫 宋大振)의 부탁을 받고 쓴

    야로송씨족보(冶爐宋氏族譜)의 서문(序文)이다.

 

    原文(원문)

     冶爐宋氏族譜書 (야로송씨족보서)

      冶城君之十九代孫大振氏。丁父憂。哀號悲慕之餘。追念其先之所本源。幷推究後派之相聯引。上自冶城。

      야성군지십구대손대진씨。정부우。애호비모지여。추념기선지소본원。병추구후파지상련인。상자야성 

      下至渠子女  凡二十世之旁支直緖內外遠近  莫不審悉  仍爲箚譜  及其成也  持而示余曰  子知我宋之爲族乎。

      하지거자녀   범이십세지방지직서내외원근  막불심실   잉위차보   급기성야   지이시여왈  자지아송지위족호

      宋之爲望族於陜之冶也尙矣。金海君邦英礪山伯季英。實冶城之弟。而自有封邑。分而爲異。不知先代譜牒。

      송지위망족어합지야야상의。김해군방영려산백계영。실야성지제。이자유봉읍。분이위이。부지선대보첩。 

      其能保存於某地某子孫否也。冶城後七世皆顯職。八世至璟。以平理錄二等勳。侈有土田臧獲之錫。

      기능보존어모지모자손부야。야성후칠세개현직。팔세지경。이평리록이등훈。치유토전장획지석

      以扈從恭愍福州也。其子綺爲平章事。平章子搆爲我朝嘉靖大夫京畿方伯。及卒葬星州檜洞地。子孫因家焉。

      이호종공민복주야。기자기위평장사。평장자구위아조가정대부경기방백。급졸장성주회동지。자손인가언

      方伯生吉昌  復襲冶城封  其實職則府尹也  府尹生通政大夫長興府使千祐  聘判司僕李衍生女  生縣監諱守謙。

      방백생길창  부습야성봉   기실직칙부윤야   부윤생통정대부장흥부사천우   빙판사복이연생녀  생현감휘수겸

      配以權氏。文景公軫其舅也。於是生直長紹,上護軍緝,縣令綸,宣傳官繪。直長卽正郞光廷六代祖也。

      배이권씨。문경공진기구야。어시생직장소,상호군집,현령륜,선전관회。직장즉정랑광정육대조야

      縣令卽孤之六代祖也。自玆以前。本支之譜。盖未必不詳且明。而今旣失於兵火。雖有我高祖所著世系錄。

      현령즉고지육대조야。자자이전。본지지보。개미필불상차명。이금기실어병화。수유아고조소저세계록

      而欠於旁通歷考。此孤所常慨歎也。適光廷爲郡守。使其弟光啓及孤。收錄江左右所居世代支派。

      이흠어방통력고。차고소상개탄야。적광정위군수。사기제광계급고。수록강좌우소거세대지파

      是固成譜入梓之計。而未久遞郡。又有陜人河渾以上護軍外玄孫。刊出本氏族譜。因欲鋟及宋譜。亦莫之訖。

      시고성보입재지계。이미구체군。우유합인하혼이상호군외현손。간출본씨족보。인욕침급송보。역막지흘

      厥後光廷通判蔚州。旋沒于官。更有何力可得成此功也。孤爲此傷惕。姑以孤前日與光啓聞見起草者。

      궐후광정통판울주。선몰우관。경유하력가득성차공야。고위차상척。고이고전일여광계문견기초자。 

      更爲詢覈修正  用成冊子  雖未得廣布一門  庶可以傳吾子孫矣  子亦吾祖外裔  盍爲我其顚末。余未敢固辭。

      경위순핵수정  용성책자  수미득광포일문  서가이전오자손의  자역오조외예  합위아기전말。여미감고사

      顧其文拙何。玆用大振氏所言。以識其萬一。所謂述而不作也。嗚呼。譜之自上而下。則一本之所以萬殊也。

      고기문졸하。자용대진씨소언。이식기만일。소위술이불작야。오호。보지자상이하。즉일본지소이만수야

      自下而上。則萬殊之所以一本也。人皆知有其身而不知其本於祖先。知有其族而不知其分於一人。不知其所本。

      자하이상。칙만수지소이일본야。인개지유기신이불지기본어조선。지유기족이불지기분어일인。부지기소본。 

      故處其身也輕。甘爲汙賤而不恥。不知其所分。故待其族也薄。至相殘賊而莫恤。幾何其不胥而爲夷狄禽獸也。

      고처기신야경。감위오천이불치。부지기소분。고대기족야박。지상잔적이막휼。기하기불서이위이적금수야。 

      今吾與大振氏之身。固出於冶城君氣脉也。則其可以此身視此身。而不思所以繼所繼乎。彼聯行滿帙千萬箇人。

      금오여대진씨지신。고출어야성군기맥야。칙기가이차신시차신。이불사소이계소계호。피련행만질천만개인

      亦只是冶城君一身也。則其可謂千萬爲千萬。而不思所以親其親乎。噫斯譜之作。豈偶然哉

      역지시야성군일신야。칙기가위천만위천만。이불사소이친기친호。희사보지작。기우연재

                                                                                                           

 

 [冶爐宋氏族譜書]     야로송씨족보서    야로송씨 족보서문 

 

야성군(冶城君)의 19대손 대진씨(大振氏)가 그의 아버지 상(喪)을 당하여 슬퍼하며 사모한 나머지,

그 선대의 근원을 추념(追念)하고 아울러 후대의 파계(派系)가 서로 연관된 것을 추구(推究)하여 위로는 야성군애서부터

아래로 그의 자녀(子女)에 이르기까지 무릇 20세(世) 방계(傍系)와 지계(支系), 직계(直系)와 서계(緖系), 그리고 안과 밖,

멀고 가까움을 모두 상세히 살피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보첩(譜牒)을 만들었는데 완성이 되자 그것을

가지고 나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자네가 우리 송가 일족에 대하여 아는가?

송가가 합천의 야로에서 명망이 있는 문벌이 된 것은 오래이다.

김해군(金海君) 방영(邦英)과 여산백(礪山伯) 계영(季英)은 실상 야성군의 동생이다.

그런데 저절로 봉(封)해진 고을이 있어서 나누어져 다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선대(先代)의 보첩을 모르면 어느 지역의 어느 자손임을 보존(保存) 할 수 있겠는가?

야성군 뒤로 7세(世)는 모두 드러난 관직을 역임하였고 8세인 경(璟)에 이르러서는 평리(平理)로 2등 공훈(功勳)에

기록되고 전토(田土)와 노비[장획(臧獲)]을 내려준 것이 많았으니 그것은 공민왕(恭愍王)을 복주(福州:안동(安東))로

호종(扈從)하였기 때문이였다.

그의 아들 기(綺)는 평장사(平章事)가 되었으며 평장사의 아들 구(搆)는 가정대부(嘉靖大夫)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를

지냈는데 졸(卒)함에 이르러 성주(星州)의 회동(檜洞) 지역에 장사 지내었으며 자손들이 그로인해 그곳에 살게되었다.

관찰사가 길창(吉昌)을 낳았는데 다시 세습(世襲)으로 야성군(冶城君)에 봉(封)하여졌고 그의 실제 관직은 부윤이였다.

부윤(府尹)이 통정대부(通政大夫) 장흥부사(長興府使) 천우(千祐)를 낳았는데 판사복(判司僕) 이연생(李衍生)의 따님

에게 장가들었다.

현감(縣監)휘(諱)수겸(守謙)을낳아 권씨(權氏)를 배필(配匹)로 맞게하였는데 문경공(文景公)권진(權軫)이장인(丈人)이다

현감이 직장(直長) 소(紹)와 상호군(上護軍) 집(緝)과 현령(縣令) 윤(綸)과선전관(宣傳官) 회(繪)를 낳으셨는데,

직장은 바로 정랑(正郞) 광정(光廷)의 6대조(代祖)이시고 현령은 바로 고(孤:자신을 가리킴)의 6대 조이다.

이로부터 이전의 종파(宗派)와 지파(支派)의 보계(譜系)가 대체로 상세하고 분명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지금은 이미

전쟁으로 인한 화재(火災)로 잃어버렸으며 비록 우리 고조부(高祖父)께서 저술하신 세계록(世系錄)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리가 분명한 점과 낱낱이 상고할 수 있는 점에는 부족함이 있었으니 이것이 고(孤)가 늘 개탄(慨歎)했던 바이다.

그런데 마침 광정이 군수(郡守)가 되어 그의 아우 광계(光啓)및 고(孤)로 하여금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도(左道)와

우도(右道)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지파(支派)를 수록(收錄)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보첩을 만들어 간행할

계획이였는데 오래 되지 않아 군수가 갈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합천 사람인 하혼(河渾)이 상호군의 외현손(外玄孫)으로 하씨의 족보를 출간하고 그래서 송씨의 족보까지

출간하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끝을 내지 못했었다.

그 뒤에 광정이 울주판관(蔚州判官)으로 부임하였다가 얼마 않되어 관아(官衙)에서 세상을 떠나 버렸으니 다시 무슨

재력(財力)이 있어서 이렇게 공들인 일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고(孤)가 이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우선 고(孤)가 지난날 필계와 보고듣고 기초(起草)한 것을 가지고 다시 묻고

조사하고 수정(修正)하여 책자(冊子)를 만들었다.

비록 온 문중에 널리 반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거의 우리 자손에게는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또한 우리 할아버지의 외손으로 어찌 나를 위하여 그 전말(顚末:시종(始終)을 서술(敍述)해 주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내가 감히 굳이 사양은 못하였으나 돌아보건데 문장 솜씨가 졸렬한데야 어쩌겠는가?

이에 대진씨가  말한 내용을 가지고 그 만분의 하나 정도를 기록하니 이른바 그 말을 받아 전하기만 하고 새로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아!

족보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따져보면 한 근본에서 일만 가닥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이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따져보면

일만 가닥으로 달라진 것에서 하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모두 그 자신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 근본이 조상에게 있음을 알지 못하며 그 겨래붙이가 있다는 것만

알고 그 겨래가 한 분에게서 나뉘어졌음을 알지 못한다.

그 근본으로 여겨야 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몸가짐을 경솔하게 하여 더럽고 천한 행동을 달갑게 여기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 나뉘어진 바를 알지못하기 때문에 그 족인(族人)을 대우하는 것이 야박하여 심지어 서로

해롭게 하면서도 가엾게 여기지 않으니 오랑캐나 짐승처럼 여기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 내가 대진씨의 몸은 진실로 야성군의 기맥(氣脈)에서 나왔으니 이 몸으로 이 몸을 보면서 계승해야 할 바를

계승하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족보에 줄줄이 이어지고 책장을 가득 채운 많은 자손 개개인 또한 바로 야성군의 분신(分身)이니 그 많은 자손을

많다고만 말하면서 그 가까운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하는 까닭을 샌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이 족보를 완성한 것이 어찌 우연에서이겠는가?

 

                             나주박씨족회서(羅州朴氏族會序)

   친족 모임을 갖고 그 경위와 감회를 기록한 서문(序文)이다.

   30여년 동안 왕래가 없던 나주박씨평도공(羅州 朴氏 平度公)의 후손

   70여인이 박동선(朴東善)의 노력으로 친족의 우의를 다지는 모임을 가졌다.

   김중청(金中淸)도 외손(外孫)이기 때문에 참가하여 이 글을 지었다.

 

   原文(원문)

   羅州朴氏族會序 (나주박씨족회서)

    朴氏之自潘而嶺。居安榮豊醴之間者。亦旣累世矣。其宗源之大小。外派之遠近。不知其幾聯綿。而近代以來。

    박씨지자반이령。거안영풍예지간자。역기루세의。기종원지대소。외파지원근。불지기기연면。이근대이래

    未免淪胥以衰。無一顯揚於世。凡厥族人。各自衣食之不暇。其於講會脩睦之擧。孰倡而孰和之哉。

    미면윤서이쇠。무일현양어세。범궐족인。각자의식지불가。기어강회수목지거。숙창이숙화지재

    以故生長隣比之地。而不識其面目。雖或相接。不知其爲一源。不啻若路人之遇路人。是何不戚其戚至於此甚也。

    이고생장린비지지。이불식기면목。수혹상접。부지기위일원。불시약로인지우로인。시하불척기척지어차심야。 

    噫彼此內外雲仍  雖千百其形  實我平度公一人之分也  一人在天之靈  洋洋陟降於千百人之庭  其肯曰余有後乎。

    희피차내외운잉  수천백기형   실아평도공일인지분야   일인재천지령   양양척강어천백인지정  기긍왈여유후호

    今者朴令公東善。以甲寅十一月下車于安東。乙卯正月而出文。二月十三日而會族。噫府伯之於是府。

    금자박영공동선。이갑인십일월하차우안동。을묘정월이출문。이월십삼일이회족。희부백지어시부

    寅申酬應之務  非不至煩且劇  而發政爰初  必以是擧爲先  汲汲然如有所不及者  其仁心仁聞  足以感動於人矣。

    인신수응지무   비불지번차극  이발정원초   필이시거위선   급급연여유소불급자  기인심인문   족이감동어인의

    於是老者少者尊者卑者。自西自東無邇無遐。非喪病忌故之嬰其身。則莫不踊躍而來。凡七十餘人。隘府廨難容。

    어시노자소자존자비자。자서자동무이무하。비상병기고지영기신。칙막불용약이래。범칠십여인。애부해난용

    幕外地爲筵。相與拜揖而立。各道其源流曰某也叔某也姪。某也兄某也弟。不問官爵之有無。不論毛髮之黔素。

    막외지위연。상여배읍이립。각도기원류왈모야숙모야질。모야형모야제。불문관작지유무。불론모발지검소

    惟以族秩爲序。坐旣定。琴瑟鍾。以聲其和。盃尊案卓。以侈其陳。一酌二酌三酌而輸其情悃。

    유이족질위서。좌기정。금슬종일。이성기화。배존안탁。이치기진。일작이작삼작이수기정곤

    酬之酢之又酬而歸於爛。白日已黑。團月繼皎。或歌或舞。或狂戱或頹顚。夜分焉猶不敢散去。盖府伯之意。

    수지초지우수이귀어란。백일이흑。단월계교。혹가혹무。혹광희혹퇴전。야분언유불감산거。개부백지의。 

    殊不厭窮歡極樂故也。中淸於朴氏亦外裔。忝坐生員仲胤之次。拱而進言于伯曰。少時屢參此會於榮之鄕堂。

    수불염궁환극악고야。중청어박씨역외예。첨좌생원중윤지차。공이진언우백왈。소시루참차회어영지향당

    皆我從叔祖忍齋嘯兩先生倡也。三十年之後。今又獲覩於吾令公宰府之日。追感慰幸之情。有不覺藹鬱於中。

    개아종숙조인재소고양선생창야。삼십년지후。금우획도어오령공재부지일。추감위행지정。유불각애울어중

    伯曰若然則君須記之。從叔朴都事漉氏又從而督之。余不敢辭以拙。聊識其梗槩。噫自吾雲仍而視之。

    백왈약연칙군수기지。종숙박도사록씨우종이독지。여불감사이졸。료식기경개。희자오운잉이시지。 

    則七十人爲七十人。自吾平度公視之則只是一箇骨肉耳。竊願座上諸親。毋自七十其心。終始一骨肉以之。

    칙칠십인위칠십인。자오평도공시지칙지시일개골육이。절원좌상제친。무자칠십기심。종시일골육이지。 

    俾我平度公怡悅於冥冥中曰。今而後吾子孫式相好矣。無相猶矣云。則令公以下疇非孝乎。吁亦幸矣。

    비아평도공이열어명명중왈。금이후오자손식상호의。무상유의운。칙영공이하주비효호。우역행의。 

                                                                                                                 

 

 [羅州朴氏族會序]     나주박씨족회서 

 

박씨(朴氏)들이 반남(潘南)에서 영남(嶺南) 지방으로 옮겨와 안동(安東), 영주(榮州), 풍기(豊基), 예천(醴泉)사이에

살게 된 지도 벌써 여거 대가 되었다.

그 근원[종원(宗源)]의 크고 작음과 외파(外派)의 멀고가 까움에 대해서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근대(近代)로 오면서 서로가 함께 쇠퇴하여 한 사람도 세상에서 드러나게 드날리는 이가 없게 되었음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릇 그들 족인(族人)들도 각기 스스로 먹도 입는 일에 바쁜데 모여서 강론하며 친목을 다듬는 일을 누가

앞장서서 하며 누가 화답하며 따르겠는가?

그러므로 해서 가까운 이웃 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하지만 그 얼굴조차 몰라서 길가는 사람이 길가는 사람을 만난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니 이런 상황을 어찌 서글프다고 아니하랴?

그 서글픔이 여기에 이르도록 심각하다.

아! 저쪽이나 이쪽 안이나 바깥의 자손이 비록 그 얼굴 형태는 갖가지로 제각기 이겠지만 실제로는 우리 평도공(平度公)

한 사람의 분신(分身)인 것이다.

그러니 한 분 하늘에 계신 신령(神靈)이 양양(洋洋)하게 천백인의 ㅁ밚은 자손들의 가정에 오르내리며 기꺼이 나에게도

후손이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박영공 동선(朴令公東善)이 갑인년(甲寅年 1614년 광해군 6) 10월 1일에 안동(安東)으로 부임하는 수레에서

내려 이듬해인 을묘년(乙卯年) 정월에 통문(通文)을 내보내고 2월 13일에 일가들을 모이게 하였다.

아!  안동 도호부사가 관할지역을 맡아 오전 4시부터 호후 5시까지 응답[주응(酬應))] 하는 업무가 매우 번거롭고 바쁘지

않음이 없는데 행정(行政)을 펴는 초기에 기필코 이 일을 우선으로 삼아 서두르기를 마치 미쳐하지 못한 것처럼 하였으니

그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리하여 늙은이며 젊은이 그리고 존귀(尊貴)한 자와 비천(卑賤)한 자가 서쪽과 동쪽에서 멀고 가까운 것을 따지지 않고

상사(喪事)나 병환(病患), 그리고 제사(祭祀)같은 일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 사람이면 기뻐서 뛰먄서 오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모두 70명 이였다.

그러나 안동 도호부의 창고가 좁아 그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기가 어려워 외지(外地)에다 천막을 치고 자리를 마련하여

서로 함께 절하며 읍(揖)하고 서서 각기 그 세계(世系)의 근원과 지류를 말하며 아무개는 아저씨이고 아무개는 조카이며

아무개는 형이고 아무개는 아우라고 하면서 관작(官爵)이 있고 없음을 묻지 않으며 모발(毛髮)이 검고 흰 것은 따지지

않고 일가로서의 항열과 나이로 차례를 삼아 정해진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러자 거문고와 비파 쇠북으로 화합함을 울리게 하고 술잔과 술두루미 소반과 탁자를 넉넉하게 진열하고서,

한 잔 두 잔 세 잔의 술을 마시며 심정을 다 털어놓게 하여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흥취가 무르익게 되였다.

어느덧 해는 지고 둥근 달이 떠올라 환하게 그 곳을 비춰주므로 더러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춤을 추기도 하며,

더러는 미치광이처럼 장난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넘어지기도 하면서 감히 흩어져 떠나지를 못하였는데 그것은 대체로

부사(府使)의 뜻이 한껏 즐기기를 너무나 싫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였다.

중청(中淸)이 박씨(朴氏)에게는 외손(外孫)이므로 이 모임에 참석하여 생원(生員) 중윤(仲胤)의 다음 자리에 앉았다가

두 손을 마주잡고 부사에게 의견을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적에 영주(榮州)향당(鄕黨)에서의 이 모임에 여러 번 참석

하였는데 모두 우리 종숙조(從叔祖)인 인재공(忍齋公)과 소고(嘯皐) 두 분 선생께서 앞장서신 것이였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오늘날에 또 다시 우리 영공(令公)이 안동 도호부사로 부임하는 날에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추모하는 느낌과 위로되고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감정이 가슴에 뿌듯함을 깨닫지 못하겠오?  하였더니, 부사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대가 반드시 그 사실을 기록해 주시오. 하고 외종숙(外從叔)인 박도사(朴都事) 녹씨(漉氏) 또한 따라서

독촉 하므로 내가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졸렬한 글로 애오라지 그 대강을 기록한다.

아!  우리들 자손의 입장에서 본다면 70명이 제각기 70명이 되겠지만 우리 평도공(平度公)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지

한 개의 골육(骨肉)일 뿐이다.

그윽히 원하건데 이 자리에 있는 여러 친족(親族)들은 스스로 70명 제각기의 마음을 가지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골육임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 평도공으로 하여금 저승에서 기뻐하시기를.

이 뒤로는 나의 자손이 서로 좋아하기만 하고 서로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고  한다면, 영공(令公) 이하로 누군들 효도하는 후손이 아니겠는가  아!  그럿도 다행스러운 일이도다.  

 

                                         천곡부서(川谷賦序)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에 대한 흠모의 정을 노래한 부(賦)의 서문(序文)이다.

  신안현에 있는 운곡(雲谷)과 이천(伊川)은 각각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살았던 곳의 지명(地名)을 따온 것이다. 부(賦)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原文(원문)

    川谷賦序 (천곡부서)

     新安縣之西有川焉。名曰伊川。有谷焉。名曰雲谷。夫伊川也雲谷也。乃程朱二先生所居地之名也。

     신안현지서유천언。명왈이천。유곡언。명왈운곡。부이천야운곡야。내정주이선생소거지지명야。 

     豈請海以外嶺之南千萬里之遠。而有是川有是谷。得是名爲名。有若二先生所甞生於斯長於斯老於斯逝於斯。

     기청해이외령지남천만리지원。이유시천유시곡。득시명위명。유약이선생소상생어사장어사노어사서어사

     能有以起後學之遐慕也哉。後學之慕程朱者。旣不得及門而面承。則未甞不欲一遊於伊川雲谷之地。

     능유이기후학지하모야재。후학지모정주자。기부득급문이면승。칙미상불욕일유어이천운곡지지

     以想夫當日之儀形。而其果能得其遊從所欲者。苟非生於閩洛。則雖中國之人。亦將千百萬而無一二矣。

     이상부당일지의형。이기과능득기유종소욕자。구비생어민락。칙수중국지인。역장천백만이무일이의

     而於外國乎。以外國之土而有伊川雲谷之名。以外國之人而得伊川雲谷之地。卽伊川而慕我程。

     어외국호。이외국지토이유이천운곡지명。이외국지인이득이천운곡지지。즉이천이모아정。 

     卽雲谷而慕我朱  亦豈非遠中國後程朱處外國慕程朱者之最至幸耶  幸之至也  思之益深  思之深也。仰之愈切。

     즉운곡이모아주  역기비원중국후정주처외국모정주자지최지행야    행지지야  사지익심  사지심야。앙지유절

     於是乎其廟。於是乎奉以安。以爲二先生千秋寓道之奐輪。則斯川也未必不爲程叔子之川。

     어시호기묘。어시호봉이안。이위이선생천추우도지환륜。칙사천야미필불위정숙자지천

     斯谷也未必不爲朱晦庵之谷  而去川谷六十里之地  後程朱千有餘之歲  又有寒暄堂志程朱學程朱而從享於東隅。

     사곡야미필불위주회암지곡  이거천곡육십리지지   후정주천유여지세   우유한훤당지정주학정주이종향어동우

     惟我後學之慕二先生。夫豈偶然哉。噫程子在玆。伊川卽伊川也。朱子在玆。雲谷卽雲谷也。川焉谷焉。

     유아후학지모이선생。부기우연재。희정자재자。이천즉이천야。주자재자。운곡즉운곡야。천언곡언。 

     寒暄亦一程朱之徒也。噫吾道東。  

     한훤역일정주지도야。희오도동                                                       

 

 [川谷賦序]     천곡부서

 

성주 고을[신안현(新安縣)]의 서쪽에 시내가 있는데 이름을 이천(伊川)이라 하며 골짜기가 있는데

이름을 운곡(雲谷) 이라고 한다.

대저 이천과 운곡은 바로 정자(程子:송(宋)나라 정호(程顥)정이(程頤)와 주자(朱子:송(宋)나라 주희(朱熹) 두 분

선생이 살던 곳의 땅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 바다 바깥 영남(嶺南)의 남쪽 천만리나 되는 먼 곳에 이런 시내와 이런 골짜기가 있어 그 이름을 가지고

이름을 지었을 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마치 두 분 선생이 일찍이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성장하며 여기서 돌아가시어 후학(後學)들이 오래도록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한 것과 같다.

후학으로서 정자와 주자를 사모하는 자들이 이미 두 분 선생의 문하(門下)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니 일찍이

한 번쯤 이천과 운곡에 유람하며 당일(當日)의 거동과 모습을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지만 과연 종유(從遊)하고 싶어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진실로 민중(閩中) 과 낙양(洛陽)에서 살지 않았으면 비록 중국 사람 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천백만 명에서 한두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다른 나라에서의 경우겠는가?

다른 나라인데도 이천과 운곡이라는 이름이 있고 다른 나라 사람인데도 이천과 운곡이란 곳을 얻게 되었으니,

이천에 나아가서는 우라 정자를 사모하고 운곡에 나아가서는 우리 주자를 사모하는 것 또한 어찌 중국과는 거리가 멀고

정자와 주자에게는 후생(後生)이 되니 다른 나라에 살면서 정자와 주자를 사모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극도의

행운이 아니겠는가?

행운이 극도에 이르렀을 때에는 생각을 더깊게하기 마련인며 생각을 깊이하게 되면 우러러보기를 더욱 간절히 하게된다.

그리하여 여기에다 고즈넉히 사당을 지어 신위(神位)를 받들어 안치하여 두 분 선생의 도(道)를 천추(千秋)토록 받드는

건물로 삼는다면 이곳의 시내가 기필코 정숙자(程叔子)의 이천(伊川)이 되지 않는다고 못할 것이며 이곳의 골짜기가

기필코 주회암(朱晦庵)의 운곡(雲谷)이 되지 않다고는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이천 운곡과의 60리 떨어진 지역에 정자 주자의 시대에서 1천 년 뒤에 또 한훤당(寒暄堂)이 태어나 정자와 주자의

학문에 뜻을 두고 정자와 주자의 학문을 배웠기에 묘우(廟宇)의 동쪽 모퉁에다 종향(從享)하게 하였으니,

우리 후학(後學)들이 두 분 선생을 사모하는 일이 어떻게 우연에서 이겠는가?

아!  정자의 위패(位牌)를 이곳에 모셔 정자의 정령(精靈)이 이곳에 계신다면 이 이천은 바로 중국의 이천과 같으며,

주자(朱子)의 위패(位牌)를 이곳에 모셔 주자의 정령이 이곳에 계신다면 이 운곡은 바로 중국의 운곡과 같다.

이천도 있고 운곡도 있으며 한훤당 또한 정자와 주자의 도학(道學)을 계승하는 무리의 한 사람이니 

아! 유교(儒敎)의 연원이 해동(海東)으로 옮겨졌다고 하겠다.

 

                   금생세겸자서(琴生世謙字序)

   금세겸(琴世謙)에게 주역(周易) 겸괘(謙卦)에서 빌어와

   휘길(撝吉)이라는 자(字)를 지어주면서 쓴 글이다.

 

   原文(원문)

   琴生世謙字序 (금생세겸자서)

    琴生世謙之將冠也。其嚴君簡于余請其字。以前昔名世謙者。出於余故也。余旣以戒盈書示。欲其致力於謙德也。

    금생세겸지장관야。기엄군간우여청기자。이전석명세겸자。출어여고야。여기이계영서시。욕기치력어겸덕야

    而及其冠後三日來見也  觀其辭氣動止  殊無自盈之狀  似不必以玆爲戒  故遂改之曰撝吉  盖取易之無不利撝謙。

    이급기관후삼일래견야   관기사기동지  수무자영지상   사불필이자위계  고수개지왈휘길   개취역지무불리휘겸

    而所謂吉者  實謙之卦辭利涉大川吉者也  竊揆文王周公之意  以爲卑以自牧  際接能遜。則雖險難必無艱涉之虞。

    이소위길자  실겸지괘사리섭대천길자야   절규문왕주공지의  이위비이자목   제접능손。즉수험난필무간섭지우

    而撝於是德者。將無所不利也已。苟無所不利。則無論夷險。遇事輒吉。而其所以撝謙者。亦惟敬勝怠者能之。

    이휘어시덕자。장무소불리야이。구무소불리。칙무론이험。우사첩길。이기소이휘겸자。역유경승태자능지

    豈但日用云爲之未嘗不利耶。其人之吉而無愧於古人者。盖可想矣。然或自恃其名與字。不加勝怠之功。

    기단일용운위지미상불리야。기인지길이무괴어고인자。개가상의。연혹자시기명여자。불가승태지공。 

    則又烏足以稱其名而得其吉乎。况以謙請名生之嚴君。必有期望之切。而今且來學於余。若不顧名而思所以副之。

    칙우오족이칭기명이득기길호。황이겸청명생지엄군。필유기망지절。이금차래학어여。약불고명이사소이부지。 

    則其負嚴君與余甚矣。惟撝吉勉之。

    칙기부엄군여여심의。유휘길면                                                     

 

 [琴生世謙字序]     금생세겸자서

 

금생(琴生) 세겸(世謙)에게 장차 성인(成人)이 되는 관례(冠禮)를 행하려고 하면서 그의 아버지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아들의 자(字)를 지어 달라고 청 하였는데 그전에 세겸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기 때문에서였다.

그래서 내가 이미 자신이 가득찼다는 교만심을 경계한다는 뜻의 계영(戒盈)으로 지어서 적어 보냈는데,

그것은 겸손한 덕(德)을 힘써 이룩하도록 하려는 데서 였다.

그런데 그가 관례를 행한 3일 뒤에 나를 찾아왔는데 그의 말씨며 행동거지가 스스로 가득한 체 하는 교만한 모습이 전혀

없으므로 계영이라고 경계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기에 마침내 고쳐서 좋은 일을 발휘하라는 뜻의 휘길(撝吉) 이라고

하도록 하였다.

그것은 데체로 주역(周易) 겸괘(謙卦)의 겸손한 덕을 발휘함이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을 취(取)한 것이며,

이른바 길(吉)하다는 것은 실제로 겸괘 괘사(卦辭)의 큰 시내물을 건너더라도 길하다는 것이다.

만히 헤아려 보면 주역의 괘사를 지은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의 뜻은 자신을 낮추어 사물(事物)과 접촉하는 즈음에

남에게 양보하기를 잘하면 아무리 험난(險難)한 세상이라도 틀림없이 건너기 어려운 근심은 없어질 것이며 이러한

겸손한 덕을 발휘하는지는 앞으로 이롭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다.

진실로 이롭지 않은 바가 없다면 평탄하거나 험난함을 따질 것 없이 만나는 일마다 번번이 길(吉)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겸손한 덕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 역시 공경하는 마음이 나태한 마음을 이기는 자만이 할수있는 성질의 것이니

어찌 단지 날마다 하는 말과 행동이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 뿐이겠는가?

그 사람의 길함이 옛날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대체로 상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헉시라도 스스로 그 이름과 자(字)만 믿고 나태한 마음을 이기려는 공부를 더하지 않는 다면 어떻게 그 이름을

칭송하겠으며 그 길함을 얻겠는가?

더구나 겸손하다는 겸(謙)자(字)를 넣어 이름을 지어 달라고 나에게 청한 생(生)의 아버지에게는 반드시 기대하고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터이며 지금 또 나에게 글을 배우러 왔으니 만약 이름을 돌아보고 부응(副應)해야할 바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군(君)의 아버지와 나를 크게 저 버리게 되는 것이니 휘길(撝吉)은 힘쓸지어다.

 

[겸괘(:지산겸(地山謙) 괘.]

[겸괘(謙卦)의 초육(初六)에 겸겸군자(謙謙君子)니 용섭대천(用涉大川)이라도 길(吉)하리라는 효사(爻辭).]

 

 

<<14세손 김태동 옮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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