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잡저(雜著), 서(序) | ||||||||||||||||
작성자 | 관리자 [2017-12-23 14:17: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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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苟全先生文集卷之五] 구전선생문집권지오
[雜著] 잡저
[題壬辰年倡義兵總錄] 제임진년창의병총록 임진년에 의병을 일으킨 총록을 제목으로
아아! 국가에는 성군(聖君)이 있고 조정에는 길사(吉士)가 많아 당당(堂堂)한 한도(漢道국운)가 반석같은 형세라고 말할 만한데 오늘날 갑자기 섬 오랑캐가 원수처럼 대항해 와서 사람을 죽이는 흉측한 칼날이 향하는 곳에서, 가만히 앉아서 금성탕지(金城湯池)와 같은 요새를 잃었고 백만이나 되는 군사로 길게 몰아치면서 무인지경으로 들어가 듯 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아! 우리 온 나라의 상하 대소 인민(人民)과 부녀자들이 살해되거나 사로잡힌 자가 그 몇천 명이 되는 줄 모르겠으며, 저 한양도 온통 피비린내와 누린내가 진동하여 그 백년동안 수호해온 종묘(宗廟), 사직(社稷)이 의탁할 데가 없게 되고, 임금님께서 피난길의 중도에서 이슬도 맞고 서리도 맞은 걸 생각하니 국토 끝인 한 쪽 모퉁이인 의주로 향한 임금의 수레 그 무슨 재앙인가? 말이 여기에 이르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흐름을 깨닫지 못하겠다. 임금의 신하된 자는 당연히 쓸개를 씹은 심정과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고통을 참고 근심하며 손에다 침을 뱉으며 창을 힘껏 집고서 사졸(士卒)들의 앞잡이가 되여 함께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를 복수하려고 도모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한결같이 깊은 산 속에 숨기만 하고 적을 토벌하는 대의(大義)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목숨을 아껴 구차스럽게 살 계획만 도모한단 말인가? 몇 사람의 서생(書生)은 단지 예절에 관한 것만 배웠고 무예[궁마(弓馬)]에 대한 재능은 없는데 어찌 군사에 대한 일을 알겠는가? 그러나 바람과 서리에도 우뚝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절개를 지키는 것은 그 숭상하는 바이고 살아서는 의사(義士)가 되고 죽어서는 충신(忠臣)의 넋이 되는 것은 그 원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찌 물러나앉아 몸을 온전히하면서 한낱 아무런 힘없이 하늘과땅이 가지런하다는 글귀만 읊조릴 따름이겠는가? 더구나 엤 말에 죽어 가는 뱀이 꼬리를 흔들자 모든 뱀들이 생기가 나고 병든 용(龍)이 머리를 쳐들자 뭇 용이 날뛰었다. 고 하였다. 군사에 관한 재능으로 말한다면 우리 무리는 죽어가는 뱀이나 병든 용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쳐드는 즈음에 생기가 솟고 날뛰는 부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할 말이 있으니 의리가 뛰어난 자는 계책이 세워지고 뜻이 있는 자는 일이 이루어지는 법이니, 진실로 뜻을 지니고서 의리가 뛰어나다면 계책이 세워지고 일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갑옷을 입은 군사들도 모두가 허물어져 도망하여 감히 그 칼날을 당해내지 못하는데, 시(詩)나 서(書)를 익히는 선비들에게는 본래 무용(武勇)이라고는 한 푼이나 한 치도 없는 터에 갑자기 화살과 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로 달려가게 된다면 한갓 죽음만 있을 뿐 아무런 공이 없을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그렇지 않다. 대저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국가를 위하여 방패 역할을 잘하여 허물어져 도망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은 이미 그렇지도 못하다. 무릇 우리나라 안팎의 문무 신하들이 모두가 위태롭게 망하는 꼴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하늘과 태양을 떠받들 듯 하는 정성을 본받으려는 자가 적다면 10년 동안 시와 서를 익히면서 충성과 의리를 강론하고 밝힌 선비들이 자신을 잊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림으로서 한 번의 죽음을 본받게 하지 않겠는가? 그저 덤덤하게 사는 것 보다 의리에 죽는 것만 못하니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다 죽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상하(上下)의 동지(同志)와 함께 부서(部署)와 군사를 나누고 또 규약(規約)과 군령(軍令)을 정하였다. 부서와 군사의 이름과 정원 그리고 군령과 규약의 조목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기록한다.
[寄生辨] 기생변 혼자 살 수 없는 동식물이 다른 동식물에 붙어서 사는데 대한 변
기생(寄生)이란 것은 다름 동식물에 붙어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디에 붙어서 살아가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이 나무에 붙어서 산다고 하여 기생이란 이름을 붙인 것인가? 아니면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 사이에 붙어산다는 것을 말한 것인가? 대체로 기생의 일생을 관찰하면 나무를 의지하여 번성하니 그의 출생과 성장과 번성이 한결같이 나무에 의지하게 되므로 나무에 붙어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또 나무가 기생에 대해서 모르기는 하지만 비와 이슬을 내려 윤택하게 하며 격열한 우뢰로 고동(敲動)하게 하며, 음양(陰陽)의 두 기운이 유행하여 조화(造化)가 되게 하며 오행(五行)이 제 역할을 하여 생성(生成)하게 해서인가? 아니면 그것을 심어서 가꾸며 뿌리를 북돋아 가지를 트이게 하는 바가 있어서인가? 그렇다면 나무는 기생의 하늘과 땅이 되며 또한 기생의 부모가 되는 샘이니 기생에게 그 은혜와 덕택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이와 같고서야 그것이 나무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그실상을 가지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하여도 나는오히려 그말을 믿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하늘과 땅의 비와 이슬로 윤택하게 하였고 하늘과 땅의 격열한 우뢰로 고동시켰고 하늘과 땅의 두 기운에 의해 조화되었고 하늘과 땅의 오행에 의해 생성되었고 하늘과 땅의 심고 가꾸는 바가 되었고 하늘과 땅의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를 트이게 하는 바가 되었으며 그나무에 있어서는 단지 의지하기만 하고 붙어 있었던 것 뿐이라면 기생이 생겨나는 것은 나무 때문이 아니고 하늘과 땅 때문인 것이니 하늘과 땅이 없었으면 그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생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그가 나무에 기생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 땅 사이에서 기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아! 날아다니거나 기어다니거나 산에 있거나 물에 있거나 떼를 지어 살거나 무성한 모양을 하고서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있는 것으로 어느 것인들 그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 의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유별나게 기생에게만 붙어산다고 이름을 붙인 것은 어찌 사람이 기생이 나무에 붙어서 사는 것만알고 간혹 하늘과 땅의 조화가운데 붙어산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기생이 하늘과 땅 사이에 붙어사는 것을 알고 특별히 드러내어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면 사람이 기생더러 나무에 붙어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붙어산다고 하는것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며 기생이 자신 더러 나무에 붙어산다고 하는것은 그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 붙어사는 것에 대하여 모르는것은 그래도 되겠지만 기생이 그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모른다는 것이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진실로 강혹 이미 기생이 그가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알고서 임시 방편으로 칭송(稱頌)하는 말을 하면서 나무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은 내가 감히 취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무와 기생은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붙어 살면서 각자가 삶을 누리는 것이며 다시 서러를 필요로 기다리는 이치가 없다는 것이다. 아아! 부모(父母)는 낳아 주시고 형제(兄弟)는 우애를 하니 낳아준 이는 부모이고 우애해 주는 이는 형제인 것이니 기생이 나무에게는 특별히 형제와 같은 격으로 벗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벗한다는 것은 인(仁)으로서 도우며 의(義)로서 인도하는 것이니 인은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이 되고 의는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덕이 되니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으로 도와서 보태게 하며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덕으로 유도하여 끌어주어 그로하여금 그 덕을 이루게하고 그 재능을 다하게 하며 그 본체를 온전하게 하고 그작용을 크게 한다면 기생이 나무에게 우애하는 것과 나무가 기생에게 벗하는 것 또한 어찌 중대(重大)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소나무와 잣나무는 나무 가운데서도 곧고,높고 절조(節操)가 있는 나무이다. 천길이나 우뚝솟아 바람과 눈서리에 끄덕도 하지 않으며 비록 늙어서 죽는데 이르러도 끝까지 그절개를 바꾸지 않는다.
만약 기생이 나무에게 벗하면서 소나무와잣나무 같은 자와 더불어 우애한다면 그 으뢰하여 성장하는 방법과 도와서 유익하게 하는 덕이 어찌 쑥대가 삼[마(麻)] 가운데서 자라는 경우와 같겠는가? 그렇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붙어 살면서 나무에게 우애하는 자는 기생이며 나무에게 벗하면서 소나무와 잣나무같지 않으면 벗하지 않는 자 또한 기생인 것이다. 아아! 공자(孔子)는 큰 성인(聖人)이다. 그래서 만물에 대하여 환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말씀하기를 날씨가 매우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 고 하였으니, 일반 사람들이 소나무와 잣나무에 대하여 안다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이다. 저 기생인 자는 하늘과 땅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미미한 생물이다. 아무 것도 모르며 지혜롭지 못하고 자연의 법칙만 순종하는데, 또한 어떻게 어느 것이 소나무이고 어느 것이 잣나무인 줄 알겠는가? 소나무도 아니고 잣나무도 아닌 것을 진짜 소나무와 진짜 잣나무로 여기고 우애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진짜 소나무와 진짜 잣나무를 소나무도 아니고 잣나무도 아니라고 하면서 우애하지 않는 것도 옳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진짜 소나무와 진짜 잣나무를 얻어 그와 함께 우애를 하면서 자신이 소나무와 잣나무에 붙어 산다고 여겨, 하늘과 땅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은덕을 소나무와 잣나무에게 돌리며 칭송한다면 소나무와 잣나무 또한 스스로 그 칭송받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아니면 또 유순한 듯 하면서 아첨만 잘하고 성실하지 않아 반드시 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지목할 것이다. 아아! 기생이 그것을 스스로 신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생은 나의 동포(同胞)와 형제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미 기생에 대한 분변하는 글을 지었다. 그리고 사(辭)를 지어 다음과 같이 경꼐한다.
天地化之 천지화지 하늘과 땅의 조화로 寄生生之 기생생지 기생이 태어나 松柏友之 송백우지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애하여 寄生成之 기생성지 기생이 성장한다.
惟天與地 유천여지 하늘과 땅이 爾父爾母 이부이모 너의 아버지이며 너의 어머니이고 惟松與柏 유송여백 소나무와 잣나무가 爾擇爾友 이택이우 네가 가려서 네가 벗할 대상이네.
[致遠庵重修勸牓] 치원암중수권방 치원암을 중수하는데 시주를 권하는 글
한강선생(寒岡先生)이 안동(安東)에 부임한 4월에 한가한 날을 틈타 청량산(淸凉山)에 올랐는데, 선사(先師)이신 퇴도 이선생(退陶李先生)의 유적(遺蹟)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의 산봉우리와 절 그리고 조그마한 풀이나 한 조각의돌도 모두 선사께서 일찍이 유람하여 글을 읊으신 대상이였으니 그 감격스럽고 추모하는 깊은 정은 진실로 이미 그렇지 않을 데가 없었다. 그런데 치원암(致遠庵)의 벽 위에 선사 및 당시의 문생(門生) 십수 명의 성(姓)과 자(字)를 우러러 보면 그것이 선사께서 손수 쓰신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르러서는 마침내 옷깃을 여미고 공경을 표하고 그래서 한참 동안 슬퍼하였다. 이윽고 탄식하기를 우리 선사께서 여기다 글을 쓰신 지 이제 44년이 되였고 또 돌아가신 지도 38년이 되였다. 그런데 오래된 벽에 남기신 글씨가 오히려 태양과 별처럼 빛이나 늠름하게 대면하여 음성을 받드는 것 같으니 이번에 와서 얻은 바가 어찌 이보다 큰 것이 있겠는가? 다만 암자를 비워 둔지 이미 오래되어 비바람에 씻기고 흔들려 대들보와 서까래가 부러지려고 하며 형세가 장차 무너질 것 같다 만약 지금 수리하여 예전처럼 복구하지 않는다면 선사께서 손수 쓰신 필적 또한 암자를 따라서 없어져 후학(後學)들에게 감격을 일으키게 할 자료가 없게 될까 매우 두렵고 우리의 뒤를 이어 이 청량산을 유람하는 자가 또한 앞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뜻을 같이하는 우리 무리가 어찌 암자를 중창(重創)하여 선사를 한없이 존경하는 바탕으로 삼기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하므로 종유(從遊)하던 5,6인이 모두 두 번 절을 하며 사례하였다. 그래서 일을 주관할 일훈(一勳)이란 이름의 중을 추천하여 화주(化主)로 삼았다. 이에 선생이 중청(中淸)에 명하여 한 편의 글을 짓되 불가[승가(僧家)]에서 권연(勸緣:보시(布施)하기를 권함)하는 사례와 같이 하여 중 일훈에게 넘겨주어 그로 하여금 벽에 쓰여 있는 문인(門人)들의 후손 및 다른 후생(後生)으로 선현(先賢) 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재물을 구걸하게 하여 그 일을 이루도록 하였다. 아! 한강선생의 스승 퇴도선생에 대한 그 지극한 존경심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이 거사가 어찌 구구한 하나의 암자[승사(僧舍)]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모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의 사림(士林)들이 만약 이 뜻을 잘 이해하여 얼마의 쌀이나 베를 기부하여 만에 하나라도 돕는다면 역시 한강(寒岡)의 제자(弟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주(化主:어떤 일을 맡아서 행하는 주인공.]
[擬殷高宗賜傳說用汝作霖雨誥] 의은고종사전설용여작림우고 은나라 고종이 부열에게 날이 크게 가물 때는 너를 장마비 역할을 하게 한다는 훈계를 내린 것을 모방하다
국가는 현명한 사람을 기다려 다스려지는데 나는 덕이 있는 이를 본 적이 드물고 임금은 재상을 의지하여 정중해지기에 그대에 데한 기대가 범상하지 않으니 분명히 들으라, 비유를 절실하게 하는 자가 이르기를 큰 가뭄이 든 헤에 이른바 오래도록 더운 열기의 재해로 농사가 갑자기 병이 들어 애처로운 우리 백성들의 운명이 주나라 선왕(宣王) 때 가뭄이 극심하여 조야(朝野)가애를 태우던 것과 가까운데도 이렇게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은택을 막이버리는 데야 어쩌랴 이런 때를 당하여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올라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기를 다투어 노래하는데 혹시 이렇게 3일쯤 내리면 시들었던 초목들이 다시 무성하게 생기를 발하게 되며 갑자기 만물이 성취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것이 이로움이 되니 또한 즐겁지 않으랴? 고 하였다. 만약 사람에게 비교한다면 그대가 아니고 누구 이겠는가? 얻지 못하였응 적에는 내가 감히 말을 못하였지만 이미 나의 좌우에 배치하고 그대를 의지하려 한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임무를 맡기고 큰 가뭄에 장마비 구실하기를 바라니 오직 그대 부열[전설(傳說)]은 힘써 민첩하게 하며 들은 것이 많고 옛날의 훈계를 배워 얻은 것이 있으니 미천하게 야인 생활을 하면서 어찌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없었겠는가마는 서로 무리가 되지 못하여공연히 은택이 이르게 하는 술책만 품고 있었다. 하늘이 적임자를 내리는 데는 기다림이 있는데 사람들에게서 명성이 높고 현달하다는 소문을 어찌 구하랴? 마침 소자(小子)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잠자코 도를 생각하는 때를 만나 마침내 상제(上帝)께서 선발하여 맡기게 해주시는 명을 받았으니 꿈속에서 그 대상을 보고 이미 나의 훌륭한 보필임을 믿었으며 천하 사방에 찾게 하여 과연 꿈에서 본 어진 사람을 세워서 모든 관원을 거느리게 하였네 그대와 교유하면서 나 자신을 다듬고 큰 일을 맡기고 책임을지운 것이 한가지가 아니며 내가 지금 그대에게 명하여 활용하고 모방하려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지 내가 만약 쇠 같은 경우 그대가 배나 노의 역할을 하라는 것은 백성을 구제하려고 해서인데 자신을 보필하는데는 오히려 그것이 혹시라도 치우칠까 두렵고 백성을 구제하는데는 오히려 그것을 널리 못할까 두렵네 돌이켜보며 생각하건데 덕(德)을 넓게 베푸는 것이 어찌 장마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것만 같겠는가? 가뭄이 들어 바야흐로 그위세가 대단할 때에 장마비가 이미 흡족하게 적셔준다면 어찌 파차(彼此)의 경계[계강(界疆)]가 따로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진 이에게 의뢰하려는 절실함이 여기에 이르러 극진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기대하기로는 음양(陰陽)이 어긋나는 것을 적절하게 하고 게으름은 천벌(天罰)의 징조임을 경계삼아 말하며 천둥과 비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것은 막힌 것을 구제할 큰 형상이고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내 마음을 기름지게 함은 위와 아래의 뜻이 들어맞아 유통(流通)이 되는 것이다. 땅과 하늘이 교통하여 시운(時運)을 형태(亨泰)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때를 맞추어 떨어지는 비가 만물을 변화시킴에 짙게 낀 구름은 서교(西郊)에서 오지 않도다. 아아! 오직 시절이 험난함은 큰 가뭄이 들어서이며 그 백성들의 고달픔 또한 극도에 이르렀으니 그대가 장마비 구실을 못하겠는가? 그대는 대비할 지어다.
아아! 온 천하가 나의 덕을 우러르는데 이는 그대의 가르침에서이며 모든 백성이 나의 은혜에 젖는데 이는 그대가 장마비 구실을 한데서이니 나의 명을 쇠미하게 하지 말고 그대는 잘 화합하도록 하기 바란다.
[舌織說] 설직설 말로서 길쌈을 한다는 설
선비가 도포를 입고 서책이 가득한 방 가운데 앉아 안석[궤(几)]에 기대어 옛날의 훌륭한 제왕(帝王)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원기 왕성하게 눈썹을 쳐들고 말을 하며 날마다 토론(討論)하는 것을 일삼고 있었다. 그런데 베틀과 북[기저(機杼)을 짊어지고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선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부류의 사람인데 그대의 잘목을 바로 잡기 바람니다. 대저 길쌈을 한 뒤에야 옷을 입는다는 것이 바로 군자가 열심히 일을하여 먹고산다는 뜻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길쌈은 하지 않고 한갓 고상한 이야기와 큰 소리나 늘어놓고 우리 서민들을 학대하면서 스스로 옷을 입고 있습니까? 하자, 도포를 입은 선생이 빙긋이 웃더니 마침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소인(小人)이구려 그래서 소인의 일만 알고 있을 뿐이구려. 대체로 누에를 치고 길쌈을 하여 다른 사람을 입히고 남은 것으로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소인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인(大人)의 일이란 진실로 길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요(堯)임금, 순(舜)임금, 그리고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고(道)는 서책[간책(簡策)]에 갖추어져 있으며 그 글은 바로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악기(樂記)인 것이다. 어려서 글을 배울적에는 이를 이야기하고 이를 관찰하며 장성해서 배운것을 행할적에는 이를 설명하고 이를 관찰하면서 그 입술이 문드러지고 그 마음이 괴롭도록 부지런히 힘을 쓰면서도 오직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는데 이것을 버리고 무엇을 구하겠는가? 그렇게 한 경륜(經倫)으로 제왕의 통치(統治)하는 계책을 도와 문체가 나게 하며 그렇게 경륜으로 우리 백성들이 먹고 입게 하니 크도다 대인의 일이여! 대인이 이러한 도(道)를 가지고 소인을 다스리기 때문에 소인이 그가 길쌈한 것으로 대인이 입도록 하니 그것은 농부가 곡식을 가지고 기계(器械)와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대인의 다스림이 없으면 소인의 길쌈이 없게 되니 소인의 길쌈은 바로 대인의 길쌈인 것인데 어찌하여 그들은 학대한다고 하는가? 아! 나의 일을 일삼아 하면서도 길쌈하는 자로 하여금 길쌈을 할 수 있게 하며 내가 수양해야 할 바를 수양하면서도 항상 스스로 그 옷을 입으며 길쌈을 하거나 길쌈을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도 옷을 공급하지 않음이 없게 하니, 대인의 길쌈은 그 보통 사람의 길쌈과는 다르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시경,서경,예기,악기와 요임금,순임금,문왕,무왕은 그 베틀의 북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하겠으며, 그 날줄 역할을 하는 것은 오직 나의 혀[설(舌)]이며 씨줄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나의 혀인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길쌈을 하는데 있어서는 나의 혀가 그대로 보존되었는가를 볼뿐이니 나의 혀가 보존되었다면 길쌈하는 것이 문체를 이루어 볼만하고 빛나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법복(法服)을 입을 수 있으며 제왕(帝王)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어 온 천하가 장차 춥지 않은 지역으로 보호하게 될 터이니 어찌 특별히 도포를 입고 있을 따름이 겠는가? 아아! 혀로 길쌈하는 일은 실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행하던 바이며 혀로 길쌈한다는 말은 당(唐)나라 왕발(王勃)에게서 처음으로 나왔는데 왕발 역시 대인일 뿐이오. 하였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른바 농사짓는 부류의 사람아라고 말한 자가 혀를 깨물며 후회하고 머리를 손이 있는 데까지 숙여 절을 하면서 청하기를, 오늘 대인을 뵙게 되고 이렇게 덕(德)스러운 말씀을 옷을 입혀 주듯 들려주시니 원하건데 베특과 북을 던져 버리고 배우게 해주소서. 하였다.
[張良請四皓書] 장량청사호서 장량이 사호에게 청하는 편지
월일에 유후(留侯) 장량(張良)은 삼가 상산(商山)의 사로인 족하(四老人足下)에게 편지를 올립니다. 장량이 멀리서 생각하옵건데 난창혜악(蘭窓蕙幄)에서 봉황(鳳凰)과 같은 고고한 자세로 책상을 맞대고 자지곡조(紫芝曲調)를 길게 노래하며 꿈속에서도 속세[풍애(風埃)와의 인연을 끊으려고 생각하시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사모하게 합니다. 장량은 한(韓)나라를 위하여 한(漢)나라에 몸을 던져 진왕(秦王) 자영(子嬰)을 결박 지워 항복하게 하고 초패왕(楚覇王) 항적(項籍)의 세력을 위축시켜 원하고 바라던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러나 몸과 수족을 굴신(屈伸)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이 고질(痼疾)이 되어, 문을 닫고 세상의 일과 관계를 끊은 지 이제 5년이 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요즈음 천자(天子)의 명령으로 태자(太子)를 장차 바꾸려 하자 우라 황후(皇后)가 사자(使者)로 하여금 재능이 없는 장량에게 거기에 대한 계책을 강구하라고 합니다. 대저 어사(御史)가 진지하고 간결하게 간하고 태부(太傅)인 숙손통(叔孫通)이 태자를 바꾼다면 자신은 목을 찔러 그 피로 땅을 더럽히겠다. 고 하면서 간하였지만 도량이 큰 제왕의 마음을 돌릴 수 없는데 총애를 받고 있는 척희(戚姬)와 한고조(漢高祖)와 비슷하다는 척희의 아들 여의(如意)가 이미 너그럽고 인자한 한고조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니, 장량같은 무리로는 이런 입장에 다달아 역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데 우리 임금과 다투기 보다는 태자의 덕(德)을 보필하는 것이 낫겠으며 그 덕을 보필하려는 데는 또 노성(老成)한 분을 오도록 하는 것만 못합니다. 바야흐로 지금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의 자취는 감추고 이윤(伊尹)과 부열(傅說)의 뜻은 길러서 산 속에서 나무와 사슴과 생활하고 노닐며 마치 장차 일생을 마치려고 하겠지만 만일 잘 대우하는 군주가 있다는 소문을 들을 것 같으면 그런 군주에게 어찌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할 분으로는 오직 우리 네 분 선생이 계십니다. 네 분 선생께서 함께 오신다면 어찌 구정(九鼎)과 대려(大呂)가 우리 태자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반드시 해놓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깊은 산 속에서 나이 많도록 누런 얼굴에다 야위어 뼈만 남은 목덜미로 생활하는 것이 어찌 네 분 선생의 하고 싶어하는 바이겠습니까? 하지만 진시황(秦始皇)이 선비들을 생매장하고 경전(經傳)을 불태워 버린 화(禍)가 대단하였고 그 뒤의 혼란이 더디게 안정이 되었습니다. 비록 고명(高明)한 덕이 있는 군주가 다스리는 세상을 만났다 하더라도 오히려 자신의 지조를 더럽힐까 더 굳게 하시니 이는 실로 어쩔 수 없어서입니다. 하오나 선생께서는 시험 삼아 생각해 보소서 태자의 어질고 효성스러운 자질을 쉽게 얻을 수 있겠으며 때에 미쳐서 돕고 보좌하는 것을 늦출 수 있겠으며 적통(嫡統)을 빼았기는데도 그것을 차마 편안한 마음으로 복 수 있겠으며 천하의 큰 근본인 태자가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네 분 선생이 깊은 산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진실로 정말 세상의 일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진출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지금이 그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한고조가 조왕(趙王) 여의를 자기와 비슷하다고 여기는데 그 뜻은 여의같지 않으면 자기가 소유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데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태자의 자질에다 네 분 선생이 보필하신다면 그 덕이 성취되는 것은 장차 한고조와 비슷할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한고조가 존경하는 바로는 네 분 선생 같은 이가 있지 않은데 평생토록 존경하면서도 복 수 없었던 분들이 하루 아침에 태자 곁에 있게 되면 한고조가 태자를 보는데 있어서 반드시 자기 계책의 등급보다 높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인애(仁愛)가 연약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다면 한(漢)나라가 천하를 소유함에 있어 다투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저절로 적자(嫡子)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한나라의 가법(家法)도 바로잡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 올바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를 당하여 시운(時運)의 융성과 쇠퇴와 국가의 흥성과 멸망이 실제로 네 분 선생의 물러나고 진취하는데 사이에 달려 있는데 선생께서 일어나지 않으시면 시운을 어떻게 할 것이며 국가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야흐로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무렵에 감히 선생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전쟁터에서의 일은 장량 등이 세 치(寸)의 혀를 흔들었지만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또한 소하(蕭何)와 한신(韓信)같은 이가 있어 좌우에서 도왔었기 때문에서 입니다. 그러나 이미 안정이된데 이르러서도 고조(高祖)가 선생을 바라본지가 오래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선생이 진취하는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고조가 오만하게 선비를 업신여긴다는 소문이 거절하는 계기가 되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량같은 무리가 백 명이 된다 하여도 진실로 그 상에서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천하 국가의 중대함이 네 분 선생에게 달려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네 분 성생이 매우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기개를 다 발휘한다면 어찌 불 가운데서 구제하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내는 것과 같을 따름이겠습니까? 그 진(秦)나라에 있어서는 부소(扶蘇)가 장자(長子)로서 태자의 지위에서 폐출당하고 마침내 그의 동생인 호해(胡亥)가 왕위에 올라 진나라가 멸망하였는데 네 분 선생은 그 당시 비록 진나라의 영향권 밖에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다가 기러기가 만 길이나 높이 날아가 버리듯 떠나버려 그저 팔짱만 끼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구경만 하였던 한(恨)은 진실로 이미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았을 터이며 서로 시세(時勢)에 떠넘겨 보았지만 아! 하고 길게 탄식하게 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지가 모르기는 하지만 그 세월이 얼마나 되였습니까? 선생이 오늘날에 만약 혹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광스럽게 한번 나오기를 아낀다면 이는 우리 한(漢)나라를 진(秦)나라 처럼 우리 태자를 부소처럼 만드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나라의 시세가 없는데도 또 차마 진나라처럼 만들어 우리 태자로 하여금 부소가 당한 꼴을 모면하지 못하게 한다면 아마도 네 분 선생이 장차 뛰어난 절개를 지니고서도 천하 후세의 대단한 책망을 듣게되지 않을 수 없게 될 터이니 선생은 그것을 생각하소서. 장량이 이번에 그곳을 찾아가는 여택(呂澤)이 받들고 있는 태자의 편지 한 통을 보니 문장의 기세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말의 내용이 간절하여 참으로 옛날의 성왕(聖王)과 같으며 그 예물을 갖추어 정중하게 모시려고 하는 것도 옛날 탕(湯)임금이 이윤(伊尹)을 신야(莘野)에서 맞아온 융성한 일에 밑돌지 않습니다. 간절히 원하건데 네 분 선생이 생각을 바꾸고 함께 나오셔서 우러러보는 마음을 위로하게 하신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이 겠으며 천하에 매우 다행이 겠습니다.
[난창혜악(蘭窓蕙幄:향기나는 나무로 만든 창문과 향기나는 풀로 만든 장막. 현자(賢者)가 거처하는 곳.] [자지곡조(紫芝曲調:상산사노(商山四老)가 지은 보라빛 영지(靈芝)에 대한 노래. 은거(隱居)하는 내용의 노래.] [백이(伯夷:은(殷)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자 이를 간하였으며 무왕이 천하를 치자 동생 숙제(叔齊)와 주(周)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으로 도망가서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 굶어 죽었음.] [태공(太公:주문왕(周文王)의 재상. 성(姓)은 처(妻) 이름은 여상(呂尙)임.] [이윤(伊尹:은(殷)나라 태종(太宗)의 현상(賢相). 이름은 지(摯).농부였으나 탕왕(湯王)이 세 번이나 초빙하여 출사함.] [부열(傅說: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현상(賢相).] [구정(九鼎:우왕(禹王) 때 주조(鑄造)한 솥. 하.은.주(夏.殷.周)삼대가 서로 전한 보배임.] [대려(大呂:옛날 중국의 큰 종(鐘)의 이름. 구정(九鼎)과 더불어 주(周)나라의 보기(寶器). 귀중한 물건을 뜻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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