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淸休齋文集(揚烈)
淸休齋文集(揚烈)
제목 淸休齋先生文集卷之二,書(서),序(서),記(기),祭文(제문)
작성자 관리자 [2018-01-08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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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休齋先生文集卷之二(청휴재선생문집권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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窩南丈書(여탑와남장서)


 


昨朝鄙覆想已塵覽伏惟夜來靜候益福瞻慕無任下視序語及寄投德皐書備悉顚末寓感實深而第序語中有若以詩豪自處


작조비복상이진람복유야래정후익복첨모무임하시서어급기투덕고서비실전말우감실심이제서어중유약이시호자처


訶斥傍人不有餘力至以吠雪等語加之恐或爲卲德之累也雖以白玉之白不能無微瑕傍觀指而爲瑕則必加磨磷而終至無


가척방인불유여력지이폐설등어가지공혹위소덕지루야수이백옥지백불능무미하방관지이위하칙필가마린이종지무


瑕不以傍觀之說少損溫潤之德高詩體格今也非古則是玉瑕之微耳幸虛受傍說務加磨磷益輝溫潤之德以售當代之價如


하불이방관지설소손온윤지덕고시체격금야비고칙시옥하지미이행허수방설무가마린익휘온윤지덕이수당대지가여


何如何宋賢之詩祖述雅頌固非末學之追躡李杜之作克臻閫奧又非俗士之企武豈可引擬失當而拑脅傍人也韓昌黎以越犬


하여하송현지시조술아송고비말학지추섭이두지작극진곤오우비속사지기무개가인의실당이겸협방인야한창려이월견


嘲時人後之評者不以罪時人而薄昌黎深恐後人又以昌黎之評評今日之詩豪也專恃愛眷言不知裁揆諸長少之分無任竦汗


조시인후지평자불이죄시인이박창려심공후인우이창려지평평금일지시호야전시애권언불지재규제장소지분무임송한


 


와남장서(窩南丈書)


탑와()남형회(南亨會) 어른께 쓴 글


 


어제 아침에 제가 뒤집어 생각해 보니 이미 제 글을 보셨을 것 같아서 삼가 생각하옵건대 밤에 와서 더욱 복되심을 우러러 사모하면서 고요히 안부를 묻습니다. 아래에서 보시는 쓸모없는 서언(序言)과 덕고(德皐=任碻)에게 그 전말(顚末)을 충분히 갖춰서[備悉]글을 부쳤습니다만 구실이란 느낌이 실로 심합니다. 제가 서언(序言)중에 마치 시호(詩豪)처럼 자처한 한 말은 옆의 사람이 여력이 이르지 않음이니 큰 소리로 꾸짖고 물리쳐 주시고[訶斥] 쓸데없는 헛소리[吠雪]의 말을 더하여 혹시 높은 덕()에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비록 백옥(白玉)이 희다 해도 미세한 옥()의 티도 없기는 불가능하니까 방관(傍觀)하면서 옥()의 티를 지적해야 반드시 옥을 반짝반짝하게 갈아야 종내는 옥()의 티가 없게 되는 것처럼 방관(傍觀)하면서 말이 없거나 적으면 온화하고 윤택[溫潤]있는 덕()을 손상하는 것이므로 시체(詩體)의 격()을 높여야하는 요즘입니다. 옛 것이 아닌 즉 미세한 옥()의 티일 뿐입니다. 다행히 선입감(先入感)없이 남의 이야기를 들어[虛受] 곁에서 말하길 힘써서 더 반짝반짝하게 갈면 더욱 온윤(溫潤)의 덕()을 발휘하여 당대(當代)의 가치를 유행시킬 수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어찌해서 송()나라 때 현인(賢人)의 시()는 아송(雅頌:詩經(:정악의 노래)와 송(: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을 이어받아 서술[祖述]했는데, 진실로 말학(末學)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작품만 뒤를 쫒아 밟아 가[追躡]극히 깊숙한 곳에 이르러야함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식견이 낮은 범속한 사람[俗士]이 꾀할 무기도 아닐 것입니다. 어찌 추측과 부당함을 끌어들이고 옆 사람을 위협하며 입 다물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한창려(韓昌黎)를 월견(越犬)이라고 조롱했던 당시 사람들을 후세에 평하는 사람의 죄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창려(昌黎)에게 박()하게 한 죄이며 후인(後人)들을 깊이 두려워해야 할 것이며 또 창려(昌黎)의 평()을 오늘날의 시호(詩豪)라고 평()합니다. 오로지 믿는 것은 사랑하는 친절한 말[眷言]입니다. 모든 길고 짧음을 나눠 재단하고 헤아리질 못하고 맡은 일을 견디지 못하여[無任)주눅이 들어 땀이 납니다.


 


寄至一(기지일)


 


論語讀得幾番也須勿浪度日子這這來講爲好屋役復始耶朴進士今向古里夕間來宿八呑云矣


논어독득기번야수물랑도일자저저래강위호옥역부시야박진사금향고리석간래숙팔탄운의


 


寄至一(기지일)(둘째 아들)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논어(論語)를 읽어서 얻음이 몇 번이더냐? 반드시 함부로 하며 세월 보내지[度日] 말고 너는 와서 좔좔 강()을 잘 하거라. 집의 역사(役事)를 다시 시작했다지? 박진사(朴進士)가 오늘 고리(古里)로 향했으니 저녁 사이에는 와서 잘 것이다. 여덟 번을 삼키며 말한다.


 


寄至道至謙至一(기지도지겸지일)


 


事勢若然則何必苟留也人騎送去而天有雪徵是可慮也然同棲諸友間勿


사세약연칙하필구류야인기송거이천유설징시가려야연동서제우간물


示悻悻底辭色爲可笥一件送來昨書中及之而來人不傳之可怪餘在面破


시행행저사색위가사일건송래작서중급지이래인불전지가괴여재면파


 


寄至道至謙至一(기지도지겸지일)


지도(至道),지겸(至謙),지일(至一)에게 부치는 글


 


일의 되어 가는 형편이 이와 같은데 하필이면 반드시 묵어야 하느냐? 사람과 말을 보냈는데 하늘에는 눈이 올 조짐이 있으니 이는 걱정할 만하구나. 그러니 같이 거처하고 있는 모든 친구들 간에도 속이 좁고 급해서 발끈 성내고 원망함을 보이거나 색()과 같은 저속한 말은 하지 마는 것이 옳으니라. 상자 하나를 보내서 지난번의 책들과 함께 왔는데 보내 가지고 온 사람이 전해주지 않아서 괴상하구나. 나머지는 만났을 때 다하자꾸나.


 


寄一兒覺華做榻(기일아각화주탑)


 


爾來不聞消息未知無事做工耶座首兄主方在慮撓中而京報漠然無聞鬱鬱汝家事姑無大段所患而喜三兒得氣瘧今


이래부문소식미지무사주공야좌수형주방재려요중이경보막연무문울울여가사고무대단소환이희삼아득기학금


至三日未差悶悶然此乃小兒例症有何慮也里社事今將更役爲計忠彦密聰秀英三僧今十八日或卄日起送爲好密憲


지삼일미차민민연차내소아례증유하려야리사사금장갱역위계충언밀총수영삼승금십팔일혹입일기송위호밀헌


來見渠之言內呂泉事姑未決末勢難來役云渠何敢回避汝須更勤右日同送爲好


래견거지언내려천사고미결말세난래역운거하감회피여수경근우일동송위호


 


寄一兒覺華做榻(기일아각화주탑)


첫째 아이에게 부침. 각화사 탑상에서 씀.


 


네가 온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서 알지 못하다가 무사히 글짓기 공부를 힘써 하고[做工] 있느냐? 좌수(座首)형님께서 어지러운 중이어서 걱정이 있고, 서울 소식은 막연(漠然:어렴풋이 종잡을 수 없는 모양.형적(形迹)이 없어 고요한 모양.)히 소식이 없으니 울울(鬱鬱:기분이 언짢아 침울한 모양.울창한 모양.)하다. 네 집안일은 너의 처[]가 우환이 있는바 대단한 일은 없어서 기쁘고, 셋째 아이가 학질 기운이 있어서 지금까지 3일간 차도가 없어서 속이 답답하고[悶悶], 이런데다가 이제 작은 아이까지 비슷한 증세를 보이니 어찌 심려치 않겠느냐? 이사(里社:동네의 사당.)의 일은 지금 다시 공역을 시작할 계획으로,충언(忠彦),밀총(密聰),수영(秀英)세 스님이 18일간 혹은 20일간 와서 일을 하고 갔다. 밀헌(密憲)이 와서 보고는 잘 되었다며 도랑으로 가면서 말하길 졸졸 흐르는 샘 파는 일은 안의 부녀자들이 아직 결정을 못해서 사세가 어려우므로 맨 끝에 와서 일을 하겠단다. 도랑을 어찌 감히 회피한단 말이냐? 네가 반드시 다시 권해서 위의 날에 같이 보내는 것이 좋은 일일 것이다.


 


次兒付(차아부)


 


日來諸病勢加減如何東策七首熟誦來講仍製策問爲可庸學收拾若難幷做則姑


일래제병세가감여하동책칠수숙송래강잉제책문위가용학수습약난병주칙고


停之策問門戶不可不早知須十分着力無或浪遊極可一日以一首爲課程亦好


정지책문문호불가불조지수십분착력무혹랑유극가일일이일수위과정역호


 


次兒付(차아부)둘째 아들[至一]에게 부친 글.


 


그날 왔을 때보다 병세(病勢)의 더하고 덜함[加減]은 어떠하냐? 동책(東策)7()를 능숙히 암송하여 와서 강()을 해보고 책문(策問)을 지어보고 항상 학문을 수습(收拾:모아서 정리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병행하기가 어려우면 네 어미를 머물도록 하여라. 책문(策問)은 가문을 위해서도 일찍부터 반드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부족함이 없이 넉넉히 힘쓰도록 해라. 혹시 허랑하게 번들번들 놀면서 지내[浪遊]지 말고 하루에 한 수() 씩을 과정(課程)으로 하면 또한 좋을 것이다.


寄至一 望姪兼看(기지일망질겸간)


 


凍雨初收禪窓做味安未昨來書得見多慰窮廬無別味木米餠一笥送去以爲群居樂飢


동우초수선창주미안미작래서득견다위궁려무별미목미병일사송거이위군거락기


之資幸以仲之貧謝李友如何佐飯一笥糧米七升送去考納李友前狀甚欠書以此奉謝


지자행이중지빈사이우여하좌반일사량미칠승송거고납이우전장심흠서이차봉사


 


寄至一望姪兼看(기지일망질겸간)


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조카들과 같이 보기 바란다.


 


처음으로 진눈깨비가 그친 선창(禪窓)에서 맛있는 걸 만들어주니 어찌나 미안한지. 어제 와서 책을 얻어 보니 많이 위안이 되는 구나. 시골집엔 별미(別味)가 없지만 목미(木米)떡 한 상자를 보냈으니 여럿이 같이 거처하면서 요기 거리나 되었으면 다행이겠다. 둘째 네가 가난하다니. ()란 벗에게 사례함이 어떠하냐? 자반 한 상자와 쌀 7되를 보낸다. 받도록 하려는 생각에 이()란 벗 앞으로 서장(書狀)을 썼는데 대단히 흠 있는 글이나마 이를 받들어 사례하도록 하여라.


 


寄至一(기지일)


 


好在否四書之講非易做之工以明夏爲期則其可浪遊不篤志乎汝以此曾不留念於辭章而亦不專意


호재부사서지강비역주지공이명하위기칙기가랑유불독지호여이차증불류념어사장이역부전의


於誦讀恐或兩失而無成也治産雖不可疎迂而學業亦不可傍視而不篤汝須十分勉旃以體父意如何


어송독공혹양실이무성야치산수불가소우이학업역불가방시이불독여수십분면전이체부의여하


 


寄至一(기지일)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잘 있느냐? 사서(四書)의 강() 여부는 어떠냐? 내년 여름까지 기한인 공부나 일을 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지? 독실한 뜻 없이 빈들빈들 놀아서야[浪遊] 되겠느냐? 너는 일찍이 이처럼 사장(辭章:文章,詩賦.)을 유념(留念)하지 않고,또 송독(誦讀:경서 암송.)에도 오로지할 뜻이 없다면 혹시 두 가지를 다 잃어 이룸이 없을까 두렵구나. 생업(生業)도 물론 소홀히 하거나 에둘러하여 답답함이[疎迂]있어선 안 되겠지만 학업(學業)또한 곁을 보거나[傍視]독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너는 반드시 부족함이 없도록 힘쓰고,끝으로 몸조심 하여라. 아비의 뜻이 어떠냐?


 


寄至一(기지일)


 


無恙留棲而逐日製述耶朴上舍丈出送六度題而書冊未備是可慮也白戰又退於念日南慶雲氏想心進去伊時帶


무양류서이축일제술야박상사장출송육도제이서책미비시가려야백전우퇴어념일남경운씨상심진거이시대


去耶朴是錦當送簡勸起而彼方留意於策做其肯樂赴耶歷見至道家已向汝邊云而渠亦手生於此工惟以李益爲


거야박시금당송간권기이피방류의어책주기긍락부야력견지도가이향여변운이거역수생어차공유이이익위


接長耶前書中有起送六足之意故留簡以待矣前來疑草冗長處抹去以送考見之


접장야전서중유기송육족지의고류간이대의전래의초용장처말거이송고견지


 


寄至一(기지일)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살면서 몸에 탈은 없고[無恙], 날마다[逐日]제술(製述:詩文을 지음.)은 하고 있느냐? ()진사(進士=上舍)어른께서 육도(六度)란 제목을 내서 보냈는데 서책(書冊)이 미비하여 걱정스럽구나. 백전(白戰)으로 해야 한단다. 20일에 남경운(南慶雲)씨가 물러가면서 상심(想心)이도 나아가고, 이시(伊時)도 데리고 갔다. 박시금(朴是錦)에게 일어나기를 권하는 편지를 보냈으니, 그쪽에서 유의해서 그 대책을 만들어서 수긍하며 들어와 다다를 것이 아니냐? 지나다 보니 지도가(至道家)가 이미 네게로 갔다고 변()이 말하고, 도랑 역시 손이 나야 이 공사를 한다는 구나. 생각해보니 이익(李益)이 접장(接長:선생.接의 우두머리.)을 하지 않느냐? 먼저 번 편지 중에 말과 마부[六足]를 일어서서 보낼[起送]뜻이 있으므로 편지를 기다리고 있어라.전에 왔을 때 의심하던 초안중 쓸데없이 긴[冗長]곳을 뭉개어 버렸다.[抹去] (편지를)보내니 살펴보아라.


 


寄至一(기지일)


 


昨夕校人持去書兩度疑題及論語二冊想已得見耶白戰退定似便於做工良幸製草隨製送見極好


작석교인지거서양도의제급논어이책상이득견야백전퇴정사편어주공량행제초수제송견극호


李生員妙製亦望得見而何敢請也望外兒曾未製一首又未見東人汝須指敎之


이생원묘제역망득견이하감청야망외아증미제일수우미견동인여수지교지


 


寄至一(기지일)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어제 저녁에 교인(校人:소택(沼澤)이나 마정(馬政)을 담당하는 사람.)이 갖고 갔던 책에서 재차[兩度] 의심나는 제목(題目)과 논어(論語) 두 권을 생각했는데 이미 본 것이었다. 백전(白戰)을 마치고 물리니 흡사 힘써 공부한[做工] 편이 되어 좋은 다행이다. 초안(草案)으로 지은 것에 붙여서 지어 보내니 보아라. 매우 좋구나. 이생원(李生員)이 묘하게 지은 것 역시 이미 보았는데 어찌 감히 청하길 바라느냐? 보니까 외아(外兒)도 아직 한 수()도 못 지었고 또 주인[東人] 것도 보지 못했으니 네가 반드시 지도하고 가르쳐 주어라.


 


寄至一(기지일)


 


兩箇日來做況安未疑題昨仍汝翁之歸請出於朴上舍丈而右丈每每謙退不肯其果出送耶前得三首送姑爲製出如何且見


양개일래주황안미의제작잉여옹지귀청출어박상사장이우장매매겸퇴부긍기과출송야전득삼수송고위제출여하차견


南滈氏書未得如約其勢固然可歎奈何本書幷送之考見爲可明日白戰之擧太妨於靜做而退坐不參事體未安明日送驢爲計爾


남호씨서미득여약기세고연가탄내하본서병송지고견위가명일백전지거태방어정주이퇴좌불참사체미안명일송려위계이


 


 


寄至一(기지일)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이틀씩이나 와서 지었으니 하물며 편히 제목의 의심도 없을 터, 어제 너의 늙은이가 돌아가길 청해서 박진사[朴上舍]어른께 갔는데, 우장(右丈)을 매번 매번 겸손한 태도로 사양[謙退]하며 응락하지 않아서[不肯]그 결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냐? 전에 얻은 3()를 어미 편에 보내니 지어 내보냄이 어떠하겠느냐? 또 남호(南滈)씨를 만났는데 글을 얻지를 못했으니 약속함이 이러하니 그 사세(事勢:일의 되어가는 형편)가 참으로 그렇다면 탄식할 만한데 어찌하겠느냐? 이 글을 같이 보내니 살펴보아라. 가능하면 내일 백전(白戰)하러 가는데 가마나 탈것은 고요히 짓는데 방해가 될 것이고, 물러나 앉아있으면서 불참(不參)하면 일의 이치와 체면[事體]이 미안하니 내일 나귀를 너에게 보낼 작정이다.


 


寄至一(기지일)


 


見書多慰父無事還歸而今午後將作井之行矣然方伯之行相値不可說也殘弊


견서다위부무사환귀이금오후장작정지행의연방백지행상치불가설야잔폐


學宮不計苟簡而留棲若或浪度日子則所望安在十分勉旃無貽素餐之誚爲可


학궁불계구간이류서약혹랑도일자칙소망안재십분면전무이소찬지초위가


 


寄至一(기지일)지일(至一)에게 부친 글.


 


너의 편지를 보니 많은 위안이 되는 구나. 아비는 무사히 귀환(歸還)해서 오늘 오후에 약수터에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감사(監司=方伯)의 행차가 있어서 어그러졌으니 말을 할 수 없구나. 학교[學宮]가 쇠잔하여 없어지려는 데도 계획하지 않으니 참으로 편지를 써서 머무를 곳으로 해야겠구나. 만약 혹시라도 떠돌아다닐 정도가 되는 날엔 애들이 바라는 바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 넉넉하게 힘쓰도록 구부려서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먹어[素餐] 끼침이 없더라도 꾸짖어 주는 것이 옳을 것 같다.


 


寄謙一兩兒(기겸일양아)


 


安起男受來書得見至謙有不平之度慮慮數日來差復未科工餘事須百分愼攝無貽父憂至一無恙而課程如


안기남수래서득견지겸유불평지도려려수일래차부미과공여사수백분신섭무이부우지일무양이과정여


意不廢耶名楮今日往見校任送付爲計其果入手耶朴生亦無恙否寬姪老不作輟可尙無楮未各布同此視至


의불폐야명저금일왕견교임송부위계기과입수야박생역무양부관질로불작철가상무저미각포동차시지


 


寄謙一兩兒(기겸일양아)


지겸(至謙)지일(至一)두 아들에게 부친 글.


 


안기남(安起男)이 가지고 온 글을 받아 보니 지겸(至謙)이가 병으로 몸이 편하지 못하다는데[不平]그 정도가 걱정스럽고 걱정스럽구나. 며칠 내에 차도가 회복되어 과거 공부는 여가에 하는 일로는 하지 않겠지? 반드시 최선을 다해 몸을 삼가고 잘 조리해서[愼攝]아비의 걱정 끼침이 없게 하여라. 지일(至一)이도 몸에 탈이 없고[無恙] 부과된 일이나 학과의 정도[課程]가 마음먹은 대로 되어서 그만 두지는 않았겠지? 명저(名楮)를 오늘 가서 보고 교임(校任:향교의 임원)을 송부(送付)할 작정이다. 그 결과는 입수(入手)했느냐? 박생(朴生) 또한 병이나 없는지? 조카 지관(至寬)에게도 안부해라. 늙은이가 일을 하다가 말다가 하지[作輟] 않으니 높이 살만하다[可尙]만 종이로 만든 책도 없고 알리는 글들이 없구나. 이를 같이 보아라.


 


長子副室婚書(장자부실혼서)


 


弊家不造曾遭婦之亡兒棲久空爰卜亞室之蓄幸承嘉命許以側想惟生長儒家敎訓女範養成淑愼德豈是


폐가불조증조부지망아서구공원복아실지축행승가명허이측상유생장유가교훈여범양성숙신덕개시


綠衣之流兼有組才允合皀帷之御玆通兩家分好永結百年情緣雖等位之有差擬契活之同苦大有幸也不亦


록의지류겸유조재윤합급유지어자통양가분호영결백년정연수등위지유차의계활지동고대유행야불역


悅乎養舅姑御獲藏大望所係奉祭祀接賓客不責攸歸記載奔則之文縱闕儀幣之具古有副也之語可無情物之


열호양구고어획장대망소계봉제사접빈객부책유귀기재분칙지문종궐의폐지구고유부야지어가무정물지


遺聊將二端新絹以倣百釧故事遣此信价冀惟莞留旅老有酌定接禮之狀而江左罕用之恐有駭俗之譏姑置而


유료장이단신견이방백천고사견차신개기유완류여로유작정접례지상이강좌한용지공유해속지기고치이


不用且恃分厚敢達情悃下覽後勿落不親人之眼是亦相愛一道耶


불용차시분후감달정곤하람후물락불친인지안시역상애일도야


 


長子副室婚書(장자부실혼서)


큰아들의 재취부인(再娶婦人)혼서(婚書)


 


저희 집에서 이런 일을 만들면 안 되지만, 일찍이 맏며느리의 죽음을 당하여 아들이 빈 방으로 산지 오래 됐습니다. 이에 택일 점을 쳐서, 둘째 집을 들이기로 했었는데 좋은 명()을 내려 허락해 주셔서 아름다운 여자를 곁에 두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유가(儒家)에서 태어나 그 교훈(敎訓)을 받고 성장하여 여자로서의 범절[女範]이 있고, 숙녀로서의 삼가는 덕성을 길렀습니다. 대개 이는 젊은 여자의 고운 자태[綠衣]에다가 베 짜고 길쌈하는 재주까지 겸해서 진실로 향내 나는 휘장의 부인을 사랑하여 합()함입니다. 이에 양가(兩家)가 좋은 일을 나눠서 백년의 정든 연분을 통해서 영원히 맺어지게 됐습니다. 비록 등위(等位)의 차이는 있더라도 굳은 약속[契闊]으로 동고(同苦)동락(同樂)하면서 행복이 크게 있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않겠습니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부인을 사랑함을 얻어 갈무리하고, 큰 바람[大望]은 제사를 받들고 손님 접대에 관계되는 바, 돌아갈 곳에 책망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기재(記載)를 내달려야 하니 문장이 어지럽고 납폐 의례[儀幣]의 구비함이 모자랍니다만 예부터 부실(副室)에게는 정물(情物)보냄이 없어도 된다는 말이 있지만 애오라지 2()의 새 비단을 백 팔찌[百釧]의 고사(故事)를 모방하여 보냅니다. 이에 착하기 바람을 믿사오니 오직 웃으며 받아주십시오. 여행하는 늙은이와 대작함에 있어서 접대 예절의 편지도 정해야하고, 강동(江東)에서는 드물게 쓰이는 것이라서 속()돼 다고 놀라 일어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시어머니의 나무람을 두고 쓰지 않으려다가 또한 후()함 나누기를 믿기에 감히 정()을 보내드리오니 지성스럽게 읽어주십시오. 후에라도 떨어지지 말고, 친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더라도 이 역시 서로 사랑하는 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鈗孫寄書(윤손기서)


 


相離日久戀戀不置無恙做工而所得幾何十七日蓼村葬時出去爲計八日間當還念日馬卒早送下來爲可所讀卷卒業以還大望山


상리일구연연불치무양주공이소득기하십칠일료촌장시출거위계팔일간당환념일마졸조송하래위가소독권졸업이환대망산


陰婚事時用面約而去自此窂不可背矣金業欽兩書前便得見多慰而去奴了未得修答此意傳及極妙來期只隔八箇日姑此不一


음혼사시용면약이거자차로불가배의김업흠양서전편득견다위이거노료미득수답차의전급극묘래기지격팔개일고차불일


 


鈗孫寄書(윤손기서)장손 이윤(爾鈗)에게 부친 글.


 


서로 헤어진 날이 오래되어 연연(戀戀:그리움을 못 이겨 애태우는 모양.)함을 둘 수가 없구나. 몸에 별 탈은 없고[無恙] 공부에 힘써서[做工]얻은 바가 몇 번이냐? 17일 료촌(蓼村)장사 때 나갔다가 8일 간 있다가 돌아올 계획이다. 20일 마부와 나졸[馬卒]을 일찍 내려 보내 오도록 함이 좋을 것이다. 읽던 책을 졸업 한 바 되돌아감이 좋을 것이다. 큰 바람은 산음(山陰) 혼사(婚事) 때 대면하여 약속[面約]함이고, 가서도 스스로 이를 굳게 해서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업(爾金業)과 이흠(爾欽)이의 두 글은 전번 편지보다 얻어 본 바가 많아서 위안이 되며, 갔던 노비 망료()가 답장을 가져오지 못했으니 이 뜻을 전 하고, 극묘(極妙)가 온지 8일밖에 안 됐는데, 할미가 이처럼 하나같지 않구나.


 


鈗兒寄書(윤아기서)


 


關兒持去小紙得見否鶴奴及欽姪相繼來至細聞夜來消息而服藥後不平之症無傷也曾未服藥之人例也何慮然若不堪其苦


관아지거소지득견부학노급흠질상계래지세문야래소식이복약후불평지증무상야증미복약지인례야하려연약불감기고


仍致減食亦可慮也或可觀勢間日服之爲可汝之行止雖曰遭服遠處之喪異於喪次且想本處不卽行成服之禮當待痘淨則姑


잉치감식역가려야혹가관세간일복지위가여지행지수왈조복원처지상이어상차차상본처부즉행성복지례당대두정칙고


留數三日看護汝妻病患無妨耶雖未成服當行四日之素情禮當然亦當易帶白帶爲可汝父明夕當自蓼村還來來後劑藥加送


류수삼일간호여처병환무방야수미성복당행사일지소정례당연역당역대백대위가여부명석당자료촌환래래후제약가송


爲計時用兄弟前亦以心亂無書之意奉告極妙看病之餘勿廢東詩之誦切望


위계시용형제전역이심란무서지의봉고극묘간병지여물폐동시지송절망


 


鈗兒寄書(윤아기서)장손 이윤(爾鈗)에게 부친 글.


 


관아(關兒)가 가지고 간 적 바람을 얻어 보았느냐? 노비 학()과 조카 이흠(爾欽)이 서로 잇달아 와서 자세한 소식을 들었다만 밤에 온 소식에 약을 먹은 뒤에도 몸이 편치 않은 증세라니 상()한데는 없느냐? 일찍이 약을 먹지 않은 사람들의 사례를 보니 우려스럽더구나. 그렇다고 해도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먹는 음식까지 줄였다니 걱정스럽구나. 혹시 그간의 병세를 보아가면서 복용함이 좋을 것 같다. 너의 가는 것은 그만 두어라. 비록 상()을 당해서 복()을 입을 일을 당했더라도 먼 곳의 상()이라 그냥 상()과는 다르고 다음에 또 생각해보면 본 고장[本處]이 아닌 즉 성복(成服)의 예()를 행함에는 당연히 천연두가 나을 때를 기다려서 해야 하므로 네 할미가 수 삼일 간호(看護)하고, 네 처()의 병환(病患)도 방해 받지 않아야 되지 않겠니? 비록 성복(成服)은 하지 않더라도 4일간의 소(:素食,素行)를 하는 마음의 예의[情禮]는 행함이 당연하고,또 띠도 백대(白帶)로 바꿈이 마땅히 옳다. 너의 아비가 내일 저녁에 료촌(蓼村)에서 돌아오면 온 뒤에 탕약을 조제[劑藥]하여 다시 보낼 계획이다. 시용(時用)형제가 앞에 있어서 또한 심란(心亂)하니 편지 없는 뜻을 받들어 알려라.극묘(極妙)가 간병(看病)을 잘 하고 있는지? 동시(東詩)의 암송을 절대로 끊지 말기 바란다.


 


兩孫付(윤복양손부)


 


昨仍溫溪便得悉汝等無擾留棲多慰汝弟婚日迫頭不可不來見故人馬起送今夕來宿汾川仍參明曉聘父主忌祀早早治發歷弔溫溪


작잉온계편득실여등무요류서다위여제혼일박두불가불래견고인마기송금석래숙분천잉삼명효빙부주기사조조치발력조온계


吳棘人廬次爲妙日勢最短若或遲遲則難於得達可慮吳棘人以未疫之人忌見自汾川來人則不可歷弔此意問于汾川然後審其進退爲可


오극인려차위묘일세최단약혹지지칙난어득달가려오극인이미역지인기견자분천래인칙불가력조차의문우분천연후심기진퇴위가


 


兩孫付(윤복양손부)


이윤(爾鈗)과 이복()두 손자에게 부친 글.


 


어제 온계(溫溪)가는 편(便)을 얻은 건 다 너희들 번거롭지 않게 머물러 쉬고 있어서 큰 위안이다. 네 동생 혼인날[婚日]이 박두(迫頭)했으니 불가불 오면 볼 것이다. 그리고 인마(人馬)를 일으켜서 오늘 밤에 와서 자는 분천(汾川)으로 보내다오. 내일 새벽 장인어른의 기제사(忌祭)에 참사하려면 일찍 빨리 출발을 서둘러서 온계(溫溪)의 오극인(吳棘人)의 집에 조문(弔問)한 뒤에 다른 것을 해야 하니 일정을 가장 단축하는 것이 묘()책이다. 혹시 늦어지면 목적한 곳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극인(吳棘人)이 역병을 겪지 않은 사람을 꺼려함을 보일까봐 걱정되는구나. 분천(汾川)에서부터 온 사람이라면 들러서 조문(弔問) 할 수 없을 것이니 이 뜻을 분천(汾川)에서 물어본 뒤에 그 진퇴(進退)를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鈗兒付(윤아부)


 


夜間病候何如每傳一樣而加減與否不細傳示鬱悶可言塔坪之喪不覺泣下吾家病患如此母不可擧哀亦難成服須十分開喩鎭


야간병후하여매전일양이가감여부불세전시울민가언탑평지상부각읍하오가병환여차모불가거애역난성복수십분개유진


定爲可山陽婦觀勢避出耶鑽母病勢加減如何而壬艱向差否我病出來日大蘇多幸若無繼痛則禫祀不可不以時汝則十日差晩直


정위가산양부관세피출야찬모병세가감여하이임간향차부아병출래일대소다행약무계통칙담사불가불이시여칙십일차만직


向山所而作路于三巨里汝弟二人自此治送爲計紫洞無婢子今伊九日朝前送去爲妙朝食後進去午間行事無妨耶自餘未思事除之


향산소이작로우삼거리여제이인자차치송위계자동무비자금이구일조전송거위묘조식후진거오간행사무방야자여미사사제지


 


鈗兒付(윤아부)장손자 이윤(爾鈗)에게 부친 글


 


밤새 병세는 어떠냐? 매번 똑 같다고 전하니 더 한지 덜한지[加減]의 여부를 물어도 자세히 전해주지 않으니 마음이 침울하여 번민[鬱悶]한다는 말이 옳다. 탑평(塔坪)의 상()도 절로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우리 집의 병환(病患)도 이와 같으니.이횡()이 어미도 거애(擧哀:납관(納棺)후 곁에서 곡()을 하는 예()가 안 되어 성복(成服)이 어려우니 반드시 충분히 사리를 잘 알아듣도록 타일러서[開諭]진정시켜야 옳을 것이다. 산양(山陽)며느리도 형세를 관망하여[觀勢]피해 나가는[避出]것이 어떠냐? 이찬(爾鑽)이 어미의 병세(兵勢)도 차도[加減]가 있느냐? 그리고 임간(壬艱?)의 저번 보다 차도 여부는? 내 병도 나와서[出來]크게 소생되어 다행이다, 마치 시도 때도 없이[無繼]통증이 있으므로 담사(禫祀:대상(大祥)을 지낸 그 다음 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때는 불가불 너와 10일 차이인 즉 저녁에 바로 산소(山所)로 가도록 해서 삼거리로 가는 길을 만들어서 네 동생 둘과 같이 여기서부터 행장을 차려 떠나보려 할[治送] 계획이다. 자동(紫洞)에는 여자 종이 없으니 자금이(子今伊) 9일 아침 전까지 보내는 것이 묘책이라서 아침 식사 후 바로 들어가면 낮 행사(行事)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 아니냐? 나머지 생각지 않은 일들은 버린다.


 


鈗兒付(윤아부)


 


脫服依昨示無他慮耶詳及之爲妙若無大拘則不可不及時除之故如是及之汝叔來宿此社仍爲謁廟云矣占辭不可全信而


탈복의작시무타려야상급지위묘약무대구칙불가불급시제지고여시급지여숙래숙차사잉위알묘운의점사불가전신이


病人旣已動心莫如速出命今家以慰病人之心爲可銓兒差歇而無可疑耶處患之道莫如凝然以鎭須勿驚動以觀其勢如何


병인기이동심막여속출명금가이위병인지심위가전아차헐이무가의야처환지도막여응연이진수물경동이관기세여하


 


鈗兒付(윤아부)


맏손자 이윤(爾鈗)에게 부친 글.


 


상복을 벗고[脫服]나서 어제 딴일 보인 것은 없는지 걱정스럽구나? 상서로움이 이르는 것이 묘책일 듯 싶다. 만약에라도 큰 구애가 없어야 하는 즉 부득불 미칠 때면 버리거라. 그러므로 이처럼 이르러 가야지. 너의 아저씨가 이사(里社)에서 와서 자고 사당에 참배[謁廟]하자고 말을 하더구나. 점사(占辭:괘에 드러난 말.)를 전적으로 믿어서[全信]도 안 되지만 병든 사람들이 이미 있으니 마음이 움직여[動心]지더구나. 빨리 나가라고 명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집에서 병자들의 마음을 위로해 줌이 옳을 것 같다. 손자 이전(爾銓)이의 차도도 나아지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 중환(重患)에 대처하는 길은 꼼짝 않고 마음을 집중하여[凝然]진정시키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놀라거나 떠들지[驚動]말고 그 되어가는 형편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서문


 


鄕錄案改修序(향록안개수서)


 


嶺南素稱士大夫淵藪而其中不能無地步之淸濁門閥之高下旣有淸濁高下則珉玉之別在所不已而鄕錄之昉厥惟舊哉自有鄕錄


영남소칭사대부연수이기중불능무지보지청탁문벌지고하기유청탁고하칙민옥지별재소불이이향록지방궐유구재자유향록


以來名分正而綱紀肅禮俗成而民風厚鄕之有錄非獨有關於鄕而抑亦大有補於國乎然則爲是錄者非務爲淸濁高下之卞別也惟


이래명분정이강기숙례속성이민풍후향지유록비독유관어향이억역대유보어국호연칙위시록자비무위청탁고하지변별야유


以正名分肅綱紀爲先而名分之正綱紀之肅亦在於淸濁高下之卞別則烏得不論其地步門閥也哉退陶老先生因鄕之故事恢拓其


이정명분숙강기위선이명분지정강기지숙역재어청탁고하지변별칙오득불론기지보문벌야재퇴도노선생인향지고사회탁기


規模而宣城爲風憲之最故江左右六十餘州取以爲柯則嶺之鄕錄視入路尤嚴謹焉吾鳳之爲縣雖以十室之殘而介處於宣城不百


규모이선성위풍헌지최고강좌우육십여주취이위가칙영지향록시입로우엄근언오봉지위현수이십실지잔이개처어선성불백


之地人文憲章有同齊之鄰魯其所以觀感於老先生風敎者吁亦深矣至於鄕錄一事尤致意焉遵循古制斟酌時宜父母妻三閥俱無


지지인문헌장유동제지린로기소이관감어노선생풍교자우역심의지어향록일사우치의언준순고제짐작시의부모처삼벌구무


瑕玷則謂之三參而直書之間或有未準於三則鄕人齊會而可否之圈準然後書之自玆土移他邑由他邑寓於玆而可合於錄則亦隨


하점칙위지삼삼이직서지간혹유미준어삼칙향인제회이가부지권준연후서지자자토이타읍유타읍우어자이가합어록칙역수


其願而書之如或有心行不善得罪於倫紀則旣錄而旋削使不得厠跡先輩重錄之意夫豈偶然哉舊案數三冊尙傳而不泯鄕子弟開


기원이서지여혹유심행불선득죄어륜기칙기록이선삭사부득측적선배중록지의부개우연재구안수삼책상전이불민향자제개


卷對越起敬起感而相告曰某大夫某之幾代祖也某生進某之幾行親也百歲上古跡昭然若隔晨而未免夫編秩之蠹蝕字畫之塵昏


권대월기경기감이상고왈모대부모지기대조야모생진모지기행친야백세상고적소연약격신이미면부편질지두식자화지진혼


夫孰不慨然於斯也且以嘉靖以後之案言之或有一人之名而疊書兩案或有韻姓名人多不付案是可疑也抑一人之疊書是前案所


부숙불개연어사야차이가정이후지안언지혹유일인지명이첩서양안혹유운성명인다불부안시가의야억일인지첩서시전안소


錄合書後案而幷留兩案耶名人之漏錄似無其理或中間一案缺失無傳耶旣無明徵可據不敢强爲之說而目今見在之案若不及時


록합서후안이병류양안야명인지루록사무기리혹중간일안결실무전야기무명징가거불감강위지설이목금견재지안약불급시


重修則安保其日後之不湮沒乎鄕人有議而遷就者久矣琴君以素甫爲鄕之首有司銳意修正糚成新冊前後舊案合書一部而其中


중수칙안보기일후지불인몰호향인유의이천취자구의금군이소보위향지수유사예의수정장성신책전후구안합서일부이기중


字畫之缺而難記則姑闕而不書先輩姓諱之下分註某科某傍某官爵以見其英賢之出爲世用萃於斯錄又取新進諸人繼書於左然


자화지결이난기칙고궐이불서선배성휘지하분주모과모방모관작이견기영현지출위세용췌어사록우취신진제인계서어좌연


以襲之櫝以藏之擬以爲永久之傳其亦法退陶之遺意而重先輩之所重乎事訖琴君囑余爲誌如余拙於文者何敢當何敢當雖


이습지독이장지의이위영구지전기역법퇴도지유의이중선배지소중호사흘금군촉여위지여여졸어문자하감당하감당수


然非斯誌後之覽者無以詳之且余之五代祖自安東因贅而寓遂欲家焉而請入於錄逮吾兒屈指則已七世矣余於斯囑不勝興感之


연비사지후지람자무이상지차여지오대조자안동인췌이우수욕가언이청입어록체오아굴지칙이칠세의여어사촉불승흥감지


懷忘其僭踰而畧敍顚末噫後之繼是事而錄是錄者如或不公其錄而不謹其藏則實爲先輩之罪人而有愧於琴君勉之哉吾黨後生


회망기참유이략서전말희후지계시사이록시록자여혹불공기록이불근기장칙실위선배지죄인이유괴어금군면지재오당후생


 


鄕錄案改修序(향록안개수서)


향록안(鄕錄案)개수(改修)서문(序文)


 


영남(嶺南)을 평소에 사대부(士大夫)의 연수(淵藪:사물이 모이는 곳.)라고 칭()하고 그 중에 행보의 청탁(淸濁)과 문벌(門閥)의 고하(高下)(높은 곳에서 굽어 볼 때)더 이상 땅이 없어[無地]보이기는 불가능하다. 이미 고하(高下), 청탁(淸濁)이 있다면 그 옥석(玉石)을 구별하기 위해 있을 뿐만 아니라 향록(鄕錄 향반(鄕班)의 명부.)이 비롯된 것은 오직 그 오래됨이다! 향록안(鄕錄案)이 있은 이래로 명분(名分)이 바르게 되고, 기강(紀綱)과 예의 풍속이 숙연하게 이루어지고, 민간의 풍습이 돈후해짐은 향()의 록안(錄案)이 있음이다. 이는 유독 향()에만 관한 것이 아니라, 각설하고 또한 크게는 국가를 돕는데 있지 않은가? 그런 즉 이를 기록하는 사람은 청탁(淸濁)이나 고하(高下)를 조급하게 가릴[卞別]일은 아니다. 오직 명분(名分)을 바르게 하고, 기강(紀綱)을 엄숙히 함이 우선이고 명분(名分)의 바름과 기강(紀綱)의 숙연함 역시 청탁(淸濁) 고하(高下)의 구별에 있으므로 어찌 그 곳에서 문벌(門閥)의 행보를 논()하지 않고 얻을 수 있겠는가? 퇴계(退溪) 노선생(老先生)께서 향()으로 말미암은 고사(故事)에서 열어 넓힌 그 규모(規模)가 선성(宣城=禮安)의 풍헌(風憲)이 최고가 됐었다. 그래서 낙동강 좌우의 60여개 고을이 이를 받아들여 가지가 됐다. 그래서 영남(嶺南)의 향록(鄕錄)을 보면 들어가는 길이 더욱 엄격하고 삼가게 한다. 우리 봉성(鳳城)도 현()이 되어 비록 10여 집의 쇠잔하고 작은 곳이지만 선성(宣城)도 백()명이 안 되는 땅으로 헌장(憲章)의 글들이 같이 갖춰져 있는 곳과 이웃한 까닭에 노둔하지만 퇴계(退溪)노선생(老先生)의 풍교(風敎)를 보고 느꼈던 것이다. 아아! 역시 그 깊음이여! 그래서 향록(鄕錄)한 가지에 이르기까지 더욱 자기의 뜻을 충분히 남에게 밝히[致意]것이다. 옛 제도를 따르고 따라 그때의 사정에 맞게[時宜]짐작(斟酌)하여 부(), (), ()계의 세 문벌(門閥)이 함께 흠결이나 잘못[瑕玷]이 없어야 하는 즉 삼참(三參)이라 부르며 바로 적어 넣었다. 간혹 이 세 가지 기준에 미흡함이 있으면 향인(鄕人)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가부(可否)의 권점(圈點)을 받아 비준을 한 뒤에야 적어 넣었으며,이 땅으로부터 다른 읍()으로 옮겨 가서 다른 읍()에 가서 살더라도 이 향록(鄕錄)과 합()해야 됐다. 또 그 원()에 따라서 써 넣거나 은 마음과 행동이 불선(不善)하여 윤기(倫紀:사람의 도리인 윤리와 기강.)의 죄()를 얻었으면 이미 향록(鄕錄)에 있더라도 돌려서 삭제[旋削]하고 섞이는 자취[厠跡]를 얻지 못하게 하였으니 선배(先輩)들의 향록(鄕錄)의 의미가 무거웠으니 무릇 어찌 우연(偶然)이겠는가? 옛날 향록안[舊案]의 수가 세 권이었는데 일찍부터 전해졌으나 향() 자제(子弟)들의 개권(開卷:책을 펴서 읽음.)이 잦지를 않고, 멀리 대하면서 존경심을 일으키고, 감흥을 일으키면서 서로 가르쳐주길[] 무슨 대부(大夫)누구의 몇 대조(代祖)라거나 어느 생원(生員)진사(進士)누구의 몇 항()친척이라고 백 년 위의 옛 자취까지 소연(昭然:밝은 모양.)하다. 만약 날을 거르면서 무릇 책의 편()과 질()에 좀이 먹어 부식되는[蠹蝕]것을 면치 못하여 자획(字劃)이 먼지로 흐려져서 무릇 어느 누구라도 슬퍼 탄식하며 뜻을 떨쳐 일으키지[慨然] 않을 수 없음이 이것이다. 또 가정(嘉靖:()나라 세종(世宗:1522~1566)의 년호(年號).) 이후의 향안(鄕案)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고,두 향안(鄕案)에 잘못 적어 겹쳐 써있다고[疊書] 말하는데, 혹시 같은 소리의 성명(姓名)을 쓴 사람이 많은 것인지 향안(鄕案)과 맞지를 않으니 의심스럽다. 각설하고 한 사람의 겹쳐 적어 넣은 것은 이는 먼저 번 향안(鄕案)의 기록한 바를 뒤의 향안(鄕案)에 합쳐 써 놓은 것이라면 두 향안(鄕案)을 같이 보관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인명(人名)의 기재 누락[漏錄]이나 마치 그럴 리가 없다면 혹시 중간에 하나의 향안(鄕案)이 결함이 있어서 전()해짐이 없는 것이 아닐까? 기왕 증거를 밝힐 수 없는데 감히 억지로 말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보고 있는 현재의 향안(鄕案)도 만약 중수(重修:개수하여 거듭 편수함.)할 때가 이르지 않았더라도 그 훗날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湮沒] 않도록 안전하게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향인(鄕人)들의 논의가 있었지만 천취(遷就:조화하여 순응 적응함. 이리저리 핑계를 댐.)한지가 오래됐다. 금소(琴素)군이 향()의 우두머리 유사(有司)가 되어 주의를 집중하여 한마음으로 열심히[銳意]수정(修正)해서 새 책 앞에 옛날 향안(鄕案)을 합친 책을 꾸며서 1부를 완성시켰다. 그 중엔 자획(字劃)의 빠짐이나 잡된 기록이 있는 것이나 여자가 빠져서 적어 넣지 않은 선배(先輩)의 성명[姓諱]아래를 나눠서 무슨 과(), 무슨 방목(榜目), 무슨 관작(官爵)의 주()를 달아서 그 영현(英賢)의 세상에서 출세하여 쓰여짐을 이 향록(鄕錄)에다가 모으고 또 신진(新進)의 모든 사람들을 좌측에 이어서 쓰도록 취한 뒤에 보자기에 싸서 상자에 넣어 수장하게 했다. 헤아려보면 영구(永久)히 전()하도록 한 그 법 역시 퇴계(退溪:退陶)선생의 유지(遺志=遺意)로 선배(先輩)들의 소중하게 여겼던 바를 존중함이 아닐까? 일을 마치고 금군(琴君)이 내게 기록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처럼 글이 졸렬한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러나 이 기록이 없으면 후에 보는 사람들이 자세함이 없을 것이고 또 나의 5대조(代祖=世殷)께서 안동에서(이곳에)머물며 붙어 산 인연으로 마침내 집안을 이루고 싶어 하셨고 또 향록(鄕錄)에 들어가길 청()하여 우리 아들까지 손꼽는 즉 이미 7()째가 된다.내 이 부탁에 흥감(興感:흥겹게 느낌.)의 소회를 이기지 못하고 그 분수에 넘침[僭踰]을 잊고 그 전말(顚末)을 간략히 서술한다. 아아! 후에도 기록하는 이 일이 이어질 것이고, 이를 기록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공정(公正)하지 않는 그 기록이라거나 삼가서 갈무리를 하지 않는다면 실로 선배(先輩)의 죄인(罪人)이자 금군(琴君)에게 부끄러워지는 것이니 힘쓸지어다. 우리 무리[]의 후생(後生)들은!


 


名兩姪序(명양질서)


 


學貴近裏不可躐騖於高遠志貴遠大不可姑安於小成然則遠者必自近近者能致遠論近而不論遠吾知非成德


학귀근리불가렵무어고원지귀원대불가고안어소성연칙원자필자근근자능치원론근이불론원오지비성덕


之人語遠而不語近吾知非爲己之學是以名汝兩兒曰至遠曰至近遠吾懼汝之不近思也近吾勉汝之能致遠也


지인어원이불어근오지비위기지학시이명여양아왈지원왈지근원오구여지불근사야근오면여지능치원야


 


名兩姪序(명양질서)두 조카의 이름 서문(序文)


 


학문은 가까운 근()과 깊은 속의 리()를 귀하게 여기며 뛰어넘을[] 수가 없으니 고원(高遠:뜻이 높고 원대함.)한 뜻에 힘쓰고 원대(遠大)함이 귀하다. 잠시 소성(小成:작은 성공.)에 안주하면 안 되는 즉 원()이란 반드시 가까움부터이고, ()이란 먼 곳에 이른[致遠]다는 것이다. ()을 논()하면서 원()을 논()하지 않음은 내 지식이 몸에 덕()을 지닌 사람[成德]이 아니기 때문이요, ()을 말하고 근()을 말하지 않음은 내 앎이 자신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써 너희 두 애들 이름을 지원(至遠), 지근(至近)이라 한다. 지원(至遠)아 나는 네가 근사(近思:가까이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하며, 자기 주변의 일을 반성함.)하지 못할 까 두렵다. 지근(至近)아 나는 네가 치원(致遠:먼 곳에 이름.)할 수 있게 힘쓰길 바란다.


 


()기문


 


烏竹杖記(오죽장기)


 


關東之地多竹有烏碧二種碧者長且大而博於用庸人俗客無不植而養之烏者長不踰仞度大不過圍寸所用漁竿杖子而止耳


관동지지다죽유오벽이종벽자장차대이박어용용인속객무부식이양지오자장부유인도대부과위촌소용어간장자이지이


以是不見愛於人雖在多竹之鄕絶無而僅有烏之品格絶勝於碧而以其用窄見屈於碧豈非知竹者所可慨也越在丙戌歲余自


이시불견애어인수재다죽지향절무이근유오지품격절승어벽이이기용착견굴어벽개비지죽자소가개야월재병술세여자


襄陽轉向仙槎於南氏士人家得見之南亦知竹人愛之最重余請於南環其林而探索只得拔萃者二箇剪去其枝葉而長與身齊


양양전향선차어남씨사인가득견지남역지죽인애지최중여청어남환기림이탐색지득발췌자이개전거기지엽이장여신제


色淨而節促根縮而龍種入手栗然如玉觸瓜鏗然有聲允合於杖材也一則以腰受斧痕見葉一則歸獻於先君先君時年六十有


색정이절촉근축이룡종입수율연여옥촉과갱연유성윤합어장재야일칙이요수부흔견엽일칙귀헌어선군선군시년육십유


三必須杖起居而此地無可杖之物惟以躑躅根爲用而木性堅剛不輕不合於老人之携持及得是竹而優劣判然先君之愛翫不


삼필수장기거이차지무가장지물유이척촉근위용이목성견강불경불합어노인지휴지급득시죽이우열판연선군지애완불


啻若琅玕野榭逍遙之際竹輒隨之而躑躅遂見疎焉丁酉歲先君卽世竹之見愛於先君一十有二年厥後家無可杖之人竹爲閒


시약랑간야사소요지제죽첩수지이척촉수견소언정유세선군즉세죽지견애어선군일십유이년궐후가무가장지인죽위한


物而姪子至寬拾之橫懸於壁以爲掛衣之具今年春余至姪子家出而視之則竹固無恙而先君之手澤猶存不能無追慕之感拂


물이질자지관습지횡현어벽이위괘의지구금년춘여지질자가출이시지칙죽고무양이선군지수택유존불능무추모지감불


滌其塵穢而與歸余年四十有九雖未杖於鄕而可杖於家戶庭出入之間手不暫釋愛敬之念安敢少須臾弛也噫始焉不見知於


척기진예이여귀여년사십유구수미장어향이가장어가호정출입지간수불잠석애경지념안감소수유이야희시언불견지어


庸流而見知於南氏數也中焉見取於余而得入於先君之手數也末焉捨藏而復見用於余數也余死之後余之兒以余之手澤而


용류이견지어남씨수야중언견취어여이득입어선군지수수야말언사장이부견용어여수야여사지후여지아이여지수택이


愛重焉兒之兒又以兒之手澤而愛重焉則竹之用固無盡也數亦存其間而兒與孫之壽未壽未可知也竹不破折而與吾兒齊其


애중언아지아우이아지수택이애중언칙죽지용고무진야수역존기간이아여손지수미수미가지야죽불파절이여오아제기


壽亦未可知也則是亦數也吾於數何其惟盡吾之愛敬而以待乎數乎壬子仲春晦記


수역미가지야칙시역수야오어수하기유진오지애경이이대호수호임자중춘회기


 


烏竹杖記(오죽장기)오죽(烏竹) 지팡이 기문(記文)


 


관동(關東) 땅에는 많은 대나무가 있는데, 검은 오죽(烏竹)과 푸른 벽죽(碧竹)의 두 종류가 있다. 벽죽(碧竹)은 길고 또한 굵어서 널리 쓰여져서 용인(庸人: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이나 속객(俗客)들도 심어서 기르지 않는 사람들이 없는데, 오죽(烏竹)은 길이가 불과 한 길을 넘지 않고, 굵기도 불과 둘레 한 치 정도로 그 쓰임새는 낚싯대나 지팡이로나 쓰여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록 많은 대나무가 있는 고장이라도 사라져 없어지고 겨우 오죽(烏竹)의 품격(品格)만은 벽죽(碧竹)보다 뛰어나지만 그 용도는 좁아서 벽죽(碧竹)에게 굽힘을 보인다. 어찌 대나무를 아는 사람이 개탄치 않을 수 있겠는가? 병술(丙戌;1646(仁祖24),先生23歲時.)년에 집을 떠나 먼 타향에 있으면서[越在]양양(襄陽)에서 돌아와서(지금은)돌아가신[仙槎:신선이 탄다는 뗏목.]남씨(南氏) 선비의 집으로 향해 갔는데, 가서 보니 남()선비 역시 대나무를 가장 소중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남()선비에게 그 대나무 숲 둘러보기를 청()하여 탐색(探索)해서 두 개를 발췌(拔萃)해서 그 지엽(枝葉)은 잘라 내고 한 길 정도로 다듬었는데,()이 맑고, 마디가 뿌리 쪽으로 갈수록 짧아진 뛰어난 대나무[龍種:준마.준재.제왕의 자손. 대나무의 별칭.]를 입수했다. 단단하기[栗然]가 옥()같고, 촉감이 오이 같고, 쨍그렁[鏗然:금석 소리의 형용. 빙판 꺼질 때 나는 소리.] 소리가 나서 지팡이 재료로는 참으로 적합하다. 한 개는 허리 부분에 도끼 맞은 흔적이 있어서 버리고, 나머지 한 개는 돌아와서 선군(先君:돌아가신 아버지.先考.先王.)께 드렸다. 선고(先考)께서는 그 당시 연세가 63이어서 반드시 지팡이가 있어야 기거(起居:생활. 행동거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는 지팡이로 쓸 물건이 없어서 오직 척촉(躑躅:진달래.두견화.뛰어오름.발을 구름.배회함.)뿌리를 사용하는데, 목성(木性)은 굳고 강하지만 가볍지 않아서 노인들이 휴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었는데, 이 대나무 지팡이를 얻었으니 우열(優劣)이 판명되어 선군(先君)의 애완(愛翫)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낭간(琅玕:대나무의 별칭.아름다운 문장.옥처럼 아름다운 돌.)은 들판이나 정자를 소요(逍遙)할 때 죽장(竹杖)은 항상 따라다니고, 진달래 뿌리로 만든 지팡이는 소외됨을 보였다. 정유(丁酉:1657(孝宗8).)에 선군(先君)께서 돌아가시니 대나무 지팡이는 12년 동안 사랑을 받음을 보였다. 돌아가신 후 집에는 지팡이 짚을 사람이 없어서 한물(閒物)이 되었는데,조카인 지관(至寬)이가 수습(收拾)하여 벽에다 가로 매달아 놓고 옷걸이 기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금년[壬子,1672(顯宗13).]봄 내가 조카 아들이 집을 나간다기에 가서 보니 선군(先君)이 쓰시던 손때 묻은 유품[手澤]인 대나무 지팡이가 탈 없이 그대로 있어서 오히려 추모(追慕)의 감정을 씻어낼 수가 없어서 그 먼지로 더러워진 채로 나와 함께 돌아왔다. 내 나이 49세라서 비록 마을에서는 지팡이가 없어도 됐지만 집안의 문과 마당을 출입하는 사이에는 짚을 수 있어서, 애경(愛敬)의 마음에 잠시라도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어찌 감히 작은 찰나의 순간[須臾]이라도 해이해 질 수 있으랴? 아아! 처음에는 견지(見知)가 안 되어 보통으로 흘렸다가 남()씨에게 가서 보고 안[見知] 것도 수()이다. 두 번째로 내가 보고 취해서 선군(先君)이 얻어 들인 것도 수()이다. 마지막으로 내버려두고 감춰졌다가 다시 내게 쓰임을 보인 것도 수()이다. 내 죽은 후 나의 아들이 나의 손때 묻은 유품[手澤]을 애중(愛重)하고, 아들의 아들, 또 아들의 수택(手澤)을 애중(愛重)할 것인 즉 대나무 지팡이의 쓰임은 참으로 다함이 없다. () 또한 그 사이에 있어서 아들과 손자의 수()를 하느냐 수()를 못하느냐를 알 수 있다. 대나무 지팡이가 부러지거나 파손되지 않는다면 내 아들과 더불어 나란히 수()를 할 것인데 이 역시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즉 이 또한 수()이다. ()에 있어서 내가 왜 그 생각을 하는가 하면 곡진히 나의 애경(愛敬)함을 기다림인가? ()인가?


 


임자(壬子:1672)년 음력 2월 그믐날 기(:사실을 적는 문체.)하다.


 


()명문(銘文)木枕銘(목침명)


목침(木枕)에 새긴 글.


 


平直其體 평직기체 그 몸체는 평평하고 곧으며


方正其形 방정기형 그 형태는 네모지고 반듯하다.


須人以動 수인이동 잠깐 사람이 움직여도


安奠無傾 안전무경 어떻게 차려도 기움이 없고


夜分之後 야분지후 밤이 나뉜 뒤에


掩卷之餘 엄권지여 말아 치우는 여유


賴爾以休 뢰이이휴 너에게 의지해 쉬노라.


蝴蝶蘧蘧 호접거거 나비들 많아 날고


周公斯見 주공사견 주공(周公)을 꿈에서 뵙네.


宰予可戒 재여가계 낮잠 잔 재여가 경계할 만하고


夙夜或懈 숙야혹해 조석(朝夕)으로 혹시 게으르다면


於爾有恥 어이유치 너에게 부끄럼 되리라.


 


()猫捕鼠說(묘포서설)


 


余於院齋方夜對客有一猫奴凝蹲於牆壁之下銳耳搖尾張目屛息有若伺候然俄有大鼠出自廡下穴中嘐嘐聱聱不知猫之


여어원재방야대객유일묘노응준어장벽지하예이요미장목병식유약사후연아유대서출자무하혈중교교오오부지묘지


在傍將作緣壁上屋之計猫也奮身肆勇一躍而獲仍咋咋大嚼不遺毫骨余曰快哉客曰見死而不忍惻隱之一端今子之快無


재방장작연벽상옥지계묘야분신사용일약이획잉사사대작불유호골여왈쾌재객왈견사이불인측은지일단금자지쾌무


傷於仁術乎余曰此乃仁術也仁與威幷行而不相悖故天有生物之仁而又有肅殺之威彼鼠也穴處牆廡之下式蕃厥類晝伏


상어인술호여왈차내인술야인여위병행이불상패고천유생물지인이우유숙살지위피서야혈처장무지하식번궐류주복


夜出恣其嚙鑿小而害院藏布穀大而破架揷書籍至如廟中床席安保其不汚也欲燻則慮其燒屋欲灌則恐其牆潰雖使晏子


야출자기교착소이해원장포곡대이파가삽서적지여묘중상석안보기불오야욕훈칙려기소옥욕관칙공기장궤수사안자


復起莫思祛之之策渠負貫盈天不赦暴假威於是猫大行誅夷余之快非天地肅殺之心乎肅殺之中無生物之仁乎客曰然彼


부기막사거지지책거부관영천불사폭가위어시묘대행주이여지쾌비천지숙살지심호숙살지중무생물지인호객왈연피


鼠之暴而猶未天誅況今在位之碩鼠食我之黍而白晝自恣罔有畏忌其可逃天誅乎余尤快客之言遂使童子秉燭而記其說


서지폭이유미천주황금재위지석서식아지서이백주자자망유외기기가도천주호여우쾌객지언수사동자병촉이기기설


 


猫捕鼠說(묘포서설)고양이가 쥐 잡는 논설


 


내가 원재(院齋)에서 바야흐로 밤이 되어 손님과 마주 앉아 있었는데,고양이 한 놈이 담장 벽 밑에서 웅크리고 귀를 쫑긋하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을 부릅뜨고[張目]숨을 죽이며[屛息] 동정을 엿보고[伺候]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쥐가 처마 밑의 구멍 속에서 뛰어 나와 교교(嘐嘐:쥐가 기물을 쏘는 소리.)한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말을 듣지 않고 고양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벽을 타고 지붕위로 올라가려고 할 참에 고양이 녀석이 몸을 흔들며 거리낌 없이 한 번에 뛰어 올라 포획하여 색색 큰 소리[咋咋]내며 한 번에 씹어서 작은 뼈 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내가 말하길“쾌재로다!”했다. 손님이 말하길“죽는 걸 보니 측은(惻隱)함의 일단(一端)을 참을 수가 없는데 지금 그대는 쾌하다니 인술(仁術:()을 행하는 기술.)을 상하는 게 아닌가?”한다. 내가 말하길“이게 바로 인술(仁術: ()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과 위()는 병행(竝行)하여 서로 거스르면[相悖]안 되는 것이므로 하늘에는 만물을 생()하는 인()이 있고, 또 숙살(肅殺:가을의 찬 기운이 초목을 시들게 하는 일.)의 위()가 있습니다. 아까 그 쥐란 놈도 담장이나 처마 밑의 구멍 속에서 번성하는 방식의 종류로서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면 나와서 방자하게 물고 뚫어서 작게는 집에 갈무리해 둔 피륙이나 곡식[布穀:뻐꾸기란 말도 됨.]을 해()함이요, 크게는 서가에 꽂아 둔 서적(書籍)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사당 안의 제상과 돗자리까지 파괴하니 어떻게 하든 그것들이 더럽지 않도록 지켜야지 않겠소? 생각 같아서는 불을 피워 연기를 쐬고 싶어도 불로 집이 탈까 우려되고, 물로 관수를 하려고 해도 그 담장이 무너질 까 두려워서 비록 안자(晏子)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해도 재앙을 떨어 없앨 방책을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 대책이라야 도랑을 메우고 뚫린 데를 막아 가득 채우는 것[貫盈]이니 하늘이 난폭함을 용서치 않으시고 이 고양이의 위()를 빌어서 토벌하여 모조리 살육하여 평정[誅夷]을 하는 훌륭한 행위를 했기에 내가 통쾌하다는 것이지요. 천지(天地)의 숙살지심(肅殺之心)이 아니겠습니까? 숙살(肅殺)속에는 생물(生物)의 인()이 없습니까?”했더니 손님이 대답하길“그래서 그 쥐의 난폭함으로 오히려 도망가지 않아서 하늘이 내리는 벌[天誅]을 받은 것인데 하물며 지금 관직에 있는 큰 쥐[碩鼠: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지칭함.]는 나의 곡식을 먹고, 대낮[白晝]에도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며 두려워하고 꺼림이 없으니[畏忌]그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천벌[天誅]을 받은 것이겠지요?”한다. 내가 더욱 유쾌하여 손님의 말을 따라서 동자(童子)에게 촛불을 밝혀 손에 잡고[秉燭]이 논설(論說)을 적는다.


 


祭文(제문)제문


 


社稷壇祈晴文(사직단기청문)代地主作,丙子


 


惟社曁稷職土及穀爾造爾化功用有迹雨暘以時禾稼以成資我生民莫匪爾靈今也如何極備爲匈陽伯墜權雨師肆兇


유사기직직토급곡이조이화공용유적우양이시화가이성자아생민막비이령금야여하극비위흉양백추권우사사흉


連月不開示災斯酷狂流嚙岸怒濤衝瀆汙邪頹濘溝崩沙田氓束手奈無秋何縣吏如愚固難逃罪惟爾有神亦孔之愧


연월부개시재사혹광류교안노도충독오사퇴녕구붕사전맹속수내무추하현리여우고난도죄유이유신역공지괴


菲誠所竭籲號斯長克相上帝開霽天光


비성소갈유호사장극상상제개제천광


 


社稷壇祈晴文(사직단기청문)代地主作,丙子


사직단(社稷壇)에 맑기를 비는 글.


지주(地主)를 대신하여 지음. 병자(丙子: 1696, 肅宗22)


 


삼가 사(:토지 신.) 및 직(:오곡의 신.)의 땅과 곡식을 맡아 다스리시는 신이시여! 그대의 조()와 그대의 화()한 공()으로 비오고 맑음을 때 맞게 한 업적이 있어서 벼와 곡식이 익어서 우리 백성을 살리는 재물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그대의 신령스러움이 어떠하십니까? 지극히 떠들썩하게 함을 구비해서 양백(陽伯)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비를 맡아 다스리는 신[雨師]이 멋대로 흉하게 달포가 넘도록 개이지 않아 이토록 혹심한 재앙을 보이시나요? 미친 듯이 흘러가는 물은 언덕을 물고 성난 파도는 더럽게[瀆汚] 치솟으며 진흙 봇도랑이 무너지고, 땅이 기울어져서 모래와 밭이 붕괴되어 백성들이 속수무책입니다. 추수할 것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요? 고을의 관리들도 저희처럼 참으로 죄()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가 그대 신()이 있다면 또한 심히 부끄러울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정성을 다해서 길게 부르짖[籲號]사오니 지극히 도와주시는 상제(上帝)께서는 비를 개이게 하셔서 햇빛[天光]을 열어 주소서.


 


烏龍淵祈雨文(오룡연기우문)代地主作,癸丑


 


鱗族之長水國之主靈變不測澤施斯普或潛或飛以暘以雨草大之蕃禾稼之殖民賴以生莫非爾力自我忝牧示災胡頻


인족지장수국지주령변부측택시사보혹잠혹비이양이우초대지번화가지식민뢰이생막비이력자아첨목시재호빈


匪今斯今奧庚伊辛風伯逞威雨師墜權乾坤一爐川澤燒源苗焉而枯穗焉而焦擲耒抛鋤四野寃呼何罪何辜哀我民斯


비금사금오경이신풍백령위우사추권건곤일로천택소원묘언이고수언이초척뢰포서사야원호하죄하고애아민사


連年荐飢從此靡遺豈爾無靈由我非倅字撫失要厥有槐天怒宜赫神澤斯慳於岳無徵反省泚顔齊心惕慮更造于淵


연년천기종차미유개이무령유아비쉬자무실요궐유괴천노의혁신택사간어악무징반성자안제심척려갱조우연


民是天民天何不陞九重分憂非我私祝神其歆格雨我私公竭誠傴僂冀蒙神功


민시천민천하부승구중분우비아사축신기흠격우아사공갈성구루기몽신공


 


烏龍淵祈雨文(오룡연기우문)代地主作,癸丑


오룡연(烏龍淵) 기우(祈雨)제문(祭文)


지주(地主) 대신 지음 계축(癸丑: 1673, 顯宗14)


 


모든 어류(魚類)의 장()이고 수국(水國)의 주인이시며, 헤아릴 수 없는 신령스러운 변화로, 은택을 널리 펴시며 혹은 잠겼다가 혹은 날아올라서 개이기도 하고 비를 오게도 하셔서 초목(草木)이 크게 번성하고, 벼 이삭들의 곡식을 자라게 하셔서 백성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이 보다 더 큰 힘이 없게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가축을 치면서 욕되게 해서 이처럼 악하게 지금처럼 자주 재앙을 보이십니까? 신금(辛金) 경금(庚金)의 숙살(肅殺) 기운으로 바람을 맡은 신()[風伯]께서는 마음대로 위세를 부려서 우사(雨師:비를 맡은 신.]의 권위를 실추시켜서 온 세상이 한 개의 화로 같으며, 강과 못이 타 들어가서 묘목이란 것들은 다 말랐고, 벼 이삭이란 이삭은 다 말라서 (농부들이) 쟁기와 호미를 집어 던지고, 사방의 들판마다 원망을 부르짖습니다. 이게 누구의 죄이고 누구의 허물입니까? 슬픈 우리 백성들이야 해마다 거듭 굶주리게 하여 이대로 가면 쓰러짐을 끼칠 것인데 어찌 그대의 영험이 없으십니까? 저희가 수령은 아니라서 문자로 위무함을 잃더라도 병들어 없어지면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니 하늘이 노하셔서 의당 이글거릴지라도 신께서는 이 인색함에 은택을 내리시어 산악에는 징험이 없더라도 얼굴을 씻고 반성하면서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근심을 물리치도록 다시 연못을 파겠습니다. 백성 역시 하늘의 백성인데 하늘에 어찌 오르시지 않고 하늘[九重:아홉 겹,궁중.천자.임금.]과 근심을 나누니 이는 저의 개인적인 축()원이 아니오니 신()께서는 이에 신명(神明)이 감응하시어[歆格]저희에게 비를 고루 내려 주소서.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고 삼가 엎드려[傴僂]비오니 바라옵건대 신()의 공덕을 입게 하소서.


 


祭柳務安貞立文(제유무안정립문)


 


嗚呼慟哉公之年倏然四十有八而止耶以公之仁而何不壽耶以公之德而何不達耶天之不可諶至此極耶公在桑蓬


오호통재공지년숙연사십유팔이지야이공지인이하부수야이공지덕이하부달야천지부가심지차극야공재상봉


之日來遊於先祖之門已有食牛之志而我不離髫齔不得比肩焉公在弱冠之年我遊於先師李公之門先師之舍適與公


지일래유어선조지문이유식우지지이아불리초친부득비견언공재약관지년아유어선사이공지문선사지사적여공


隣源源納拜心艶其詞華而我尙顓蒙又不得躡武焉公在釋褐之初來過先君之廬留得一晝夜遂與我許托忘年之契噫


인원원납배심염기사화이아상전몽우부득섭무언공재석갈지초래과선군지려류득일주야수여아허탁망년지계희


其交也晩而其分則雅也其進也先而其志則一也以余之孤露寡知所倚於公者爲如何而其死也其痛之也又如何也春


기교야만이기분칙아야기진야선이기지칙일야이여지고로과지소의어공자위여하이기사야기통지야우여하야춘


前文村一樽談笑苽葛之分益厚益親此余之平生大幸而其亦永訣也已矣鳳城之東花山之北新卜一阡此公之永安兆


전문촌일준담소고갈지분익후익친차여지평생대행이기역영결야이의봉성지동화산지북신복일천차공지영안조


宅靈其知否去輿暫住不于我而于野今之待公罔以明而以幽一奠何賴慟哭而已


택령기지부거여잠주불우아이우야금지대공망이명이이유일전하뢰통곡이이


 


祭柳務安貞立文(제유무안정립문)


무안(務案)유정립(柳貞立)제문(祭文)


 


아아! 서럽게 울며 슬퍼합니다. ()의 햇수가 빛 난건[倏倏] 48년 만에 그침인가요? ()은 어진데 어찌 수()를 못하셨는가? ()의 덕()이 이르지 못함인가요? 하늘의 헤아리지 못함이 어찌 이토록 극심한가요? ()이 살아 계실 적에 남자가 큰 뜻을 품고 웅비(雄飛)하려는[桑蓬:고대 중국에서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 활과 쑥대 살로 사방을 쏘아서 성공을 축원한데서 나온 말.]날 선조(先祖)의 문하(門下)에 와서 종유(從遊)하면서 소라도 삼킬 정도의 큰 기백과 뜻[食牛之志]이셨고 나는 이를 갈 나이인 7~8[髫齔]밖에 안 되어 어깨를 나란히[比肩]하지는 못했습니다. ()께서 살아 계실 때, 20세 전후의 약관(弱冠)인 내가 퇴계(退溪) 이선사(李先師)의 문하에 놀러가서 선사(先師)의 집에 들르면 공()과는 이웃하여 아름다운 그 뛰어난 시문[詞華:아름다운 무늬로 수놓은 언어.말의 수사.]에 끊임없이 이어지는[源源] 경배의 마음을 받아들였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어리석고[顓蒙] 또 풍류 따라 올라 감을 얻지 못했었습니다. ()께서 갈의(葛衣)를 벗고 사관(仕官)이 되어 관복(官服)을 입고[釋褐]처음으로 선군(先君)의 집을 지나면서 하루 밤낮을 꼬박 묶으셨을 때 나와 함께 나이도 잊고 계()의 부탁을 허락하셨습니다. 아아! 그 사귐은 늦었었지만 그 정분 나눔은 우아했으니! 그 나아감은 늘 먼저였고, 그 뜻은 하나였었습니다. 나는 지식이 적어서 고독하고 돌보아주는 이가 없어서[孤露] ()에게 의지하였던 바인데 어찌하여 돌아가셨습니까? 그 아픔이야 또 얼마나 하겠습니까? 봄 전에 문촌(文村)에 가서 술 한 동이로 담소(談笑)하면서 인척의 연분[瓜葛:오이와 칡은 서로 얽히는 덩굴에서 인척(姻戚)을 이름.원문에는 오기함.]으로 더욱 두터워지고, 더욱 친해졌었습니다. 이에 나는 평생(平生)크게 다행한 일로 여겼었는데 그 역시도 영원한 이별[永訣]이 되고 말았습니다. 봉성(鳳城)의 동쪽, 안동[花山]의 북쪽에 새로 한 개의 무덤길이 나니 이는 공()이 길이 평안할 묘택(墓宅)입니다. ()이야 모를지라도 상여 갈 때 잠깐 나와 이 들판에 머물 수는 없을까요? 지금 내 공()을 기다리겠습니다. 망극하지만 밝은데서 저승으로 술 한 잔을 올리오니 어디에 힘입을지 몰라서 서럽게 통곡(慟哭)할 뿐입니다.


 


祭外舅李公榮遠文(제외구이공문)


 


軒然氣宇長者風儀少文何傷醇厚天姿肯構肯堂繼述先徽奉祭以誠接賓以敬先賢後昆鄕黨雅望別占江山以娛晩景


헌연기우장자풍의소문하상순후천자긍구긍당계술선휘봉제이성접빈이경선현후곤향당아망별점강산이오만경


壽樂名扁蕭灑茅廬盈庭花卉滿壁圖書有酒若肴野兼魚若將終身其樂優優人稱達尊地有仙儔白屋銀章布衣中樞


수락명편소쇄모려영정화훼만벽도서유주약효야겸어약장종신기락우우인칭달존지유선주백옥은장포의중추


優老恩光榮耀壽域旣云福景又何禍酷慘矣三喪相繼疊出孀婦鰥孫呼號左右理固難諶天實不佑公能自抑德履康裕


우노은광영요수역기운복경우하화혹참의삼상상계첩출상부환손호호좌우리고난심천실부우공능자억덕리강유


龜齡遐算庶幾無疆黃樓鶴遠仙去何戕梅窓無主寒月凄凉顧惟寒生猥贅高族憐我恤我以悃以義雖舅甥恩若骨肉


귀령하산서기무강황루학원선거하장매창무주한월처량고유한생외췌고족련아휼아이곤이의수구생은약골육


地距稍遠未克源源前秋造倏誨我諄諄那知是日永訣之辰隔此幽明謦欬莫接踽踽無親孑孑誰託大聲一哭天地漠漠


지거초원미극원원전추조숙회아순순나지시일영결지진격차유명경해막접우우무친혈혈수탁대성일곡천지막막


日月不居襄禮在明敬奠蒭綿敢竭卑誠靈其顧我歆此一觥


일월불거양례재명경전추면감갈비성령기고아흠차일굉


 


祭外舅李公榮遠文(제외구이공문)


장인(丈人)이영원(李榮遠)공 제문(祭文)


 


껄껄 웃는 모양[軒然]에 기개와 도량[氣宇]은 장자(長者:키 큰 사람.노인.덕이 높은 사람.근후(謹厚)한 사람.부자.신분이 높은 사람.)의 풍의(風儀:행동거지.아름다운 용모.멋스러운 풍채.)를 지니셨으며, 작은 글에도 어찌나 마음 상해하셨던지. 타고난 재능[天姿]은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우[醇厚]셔서 아버지의 사업을 아들이 계승하여 성취하고[肯構=肯堂], 선인들의 아름다움을 이어서 명백히 서술하시며[繼述] 정성으로 제사를 받드시고, 손님 접대를 공경스럽게 하셔서 옛 선현(先賢)들을 존경하여 후손들도 향리(鄕里)에서 깨끗한 인망(人望)으로 여겼습니다. 강산(江山)을 나누어 가지시며 만년을 즐기셨습니다. 장수하며 즐기셔서 이름이 특별했으며, 산뜻하고 깨끗한 초가집엔 온 벽들이 책으로 꽉 찼습니다. 술이 있으면 술안주로는 푸성귀와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만약 장차도 종신토록 그 즐거움이 너그럽고 화평히 즐겨서 사람들이 부르길 달존[達尊:관작,연령, 학덕의 천하를 통하여 존경 받는 것.]이라 했으며, 땅에 사는 신선과 짝 할 만 하다고 했습니다. 서민이 사는 백옥(白屋:흰 띠로 이은 집.)에 은 문장으로 벼슬 안한 사람이 중추부사(中樞府使)가 되어 노인을 우대하는 임금님의 은혜[恩光]를 받아 수()를 하는 지역으로 번창하게 빛났습니다. 이미 복()이 크다고 해 놓고 또 어찌하여 참혹(慘酷)하게 연달아 세 번 겹쳐서 상()을 당하게 하여 청상과부와 홀아비 손자가 좌우에서 울부짖으니 참으로 그 이치를 헤아리기 어렵게 합니다. 하늘이 실로 도우시지 않으셔도 공()께서는 스스로 누를 수 있으셨으니, 편안하고 여유 있는 덕()을 밟아 가면서 장수[龜齡]하셔서 멀리 계산하도록 무궁하시길 바랐습니다. 황루(黃樓)의 학()이 멀리 날아 가듯이 신선처럼 가셔서 어떤 형상입니까? 매창(梅窓)에는 주인 없이 찬 달 빛 만 처량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가난한 선비를 지체 높은 집안에 뒤섞여 붙어살게 하시며 나를 가엽게 여기시며 나를 보살펴 주시길 참되고도 정성스럽게 하셨으니 의()로는 비록 장인과 사위였지만 은혜는 골육(骨肉)보다 깊었고, 사시는 거리도 점점 멀어져서 끊임없이 흐름을 이기지 못했었습니다. 지난 가을 갑자기 만들었을 대 나에게 곡진(曲盡)하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날이 있을 줄 알았습니까? 영원히 이별하는 날을! 이승과 저승[幽明:귀신과 사람.해와 달.어둠과 밝음.천지의 이치와 인간의 일.선과 악..]이 떨어져 있으니 경해(謦欬:기침소리.웃으며 소곤거리는 소리. 인기척 내는 헛기침.)소리도 못 듣겠고, 친척이 없어서 외로운[踽踽: 친근한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모양.] 홀 몸[孑孑]을 누구에게 의탁합니까? 큰 소리로 한번 곡()을 하니 천지(天地)가 막막(漠漠)합니다. 해와 달은 같이 있을 수 없고, 양례(襄禮:장례. 장사지내는 예절)는 밝음에 있으니 공경히 추요지설(蒭蕘之說:꼴과 푸나무 같다는 말인 즉 자기 문장에 대한 겸사.)을 감히 작은 정성을 다해 영()위 전에 올리오니 저를 돌아 보시어 이 한잔 술에 흠향하소서.


 


祭朴以承文(제박이승문)


 


袞袞派源出錦城只歷麗而羅赫簪纓只自龜伊鳳貽厥謨只曰雲曰仍猗歟休只公能稱家無忝厥只克謹且厚稟美質只


곤곤파원출금성지력려이라혁잠영지자귀이봉이궐모지왈운왈잉의여휴지공능칭가무첨궐지극근차후품미질지


言笑寡有是德只喜怒不形稱斯局只斯焉取斯庭有訓只耕斯鑿斯案吾分只富能潤屋喫着優只積而知散窮必周只


언소과유시덕지희노부형칭사국지사언취사정유훈지경사착사안오분지부능윤옥끽착우지적이지산궁필주지


性嗜麴蘖樽疊盈只自酌自飮醉還醒只丘園此樂若將終只窮而在下命不通只風憲之長鄕望屬只鴻罹一厄否運極只


성기국얼준첩영지자작자음취환성지구원차락약장종지궁이재하명부통지풍헌지장향망속지홍리일액부운극지


冶長縲有何辜只路左泣別眼欲枯只達城趨心緖亂只幸而得脫喜可抃只惡痘爲崇又何酷只刀圭蔑效大暮迫只


야장류유하고지로좌읍별안욕고지달성추심서난지행이득탈희가변지악두위숭우하혹지도규멸효대모박지


哀哀卬友隔重冥只森然在目舊典型只顧余龍種分義厚只吹葱騎竹傾赤腑只或癸或甲呼弟兄只以娶以嫁葛苽縈只


애애앙우격중명지삼연재목구전형지고여용종분의후지취총기죽경적부지혹계혹갑호제형지이취이가갈고영지


分華一半咫尺居只頻來頻往懷共攄只吟花醉月春復秋只公喜我喜憂亦憂只公今抱寃行路泣只況我情切寧不怛只


분화일반지척거지빈래빈왕회공터지음화취월춘부추지공희아희우역우지공금포원행로읍지황아정절녕불달지


太白南麓邱壟堀只山明水麗宅兆吉只龍旣駕就窀菲薄奉奠庶歆格只嗚呼痛哉大聲哭只


태백남록구롱굴지산명수려택조길지용기가취둔비박봉전서흠격지오호통재대성곡지


 


祭朴以承文(제박이승문)박이승(朴以承)제문(祭文)


 


연속하여 잇달아 온[袞袞] 연원의 갈래는 금성(錦城=羅州)에서 나왔고, 내력들은 고려와 신라에서 혁혁한 고관[簪纓:관에 꼽는 비녀와 갓끈.]들을 배출한 집안에서 귀성(龜城=榮州)에서 봉성(鳳城)으로 이사 와서 살며 자손들을 위한 계책[貽厥]을 본받아서 후손들이 구름 같다하고 말들 했었지요. 아아! 그쳐서 쉴 뿐인가? ()은 집안을 더럽히거나 숙이게 함은 없었다고 칭송하며 지극히 삼가고 또한 후()한데다가 품성은 뛰어난 바탕의 좋은 성질을 가지고, 말을 해도 웃으면서 과묵()하게 덕()이 있어서 얼굴에는 희로(喜怒)의 감정 표정을 나타내지 않아서 이런 그릇[]이란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취해서 가정에서의 가르침도 넓게는 밭 갈듯이 하고, 깊이로는 뚫듯이 하며 자신을 편안하게 하고 남에게도 나눴습니다. 부자가 되어 집을 잘 꾸미고 치장하고 먹고 입는 것은 우수한 것들로 해서 모으기보다는 쓰는 것만 알아서 궁함을 보면 반드시 주선해 주었습니다. [麴蘖]을 좋아하는 성정이라서 술동이를 넘치도록 쌓아 놓고 혼자 술을 따라서 혼자 마시며 취했다가 깨면 언덕에 있는 화원(花園)에서 즐기셨는데 장차 이런 끝남이 있을 줄 알았으랴? 곤궁함을 보면 아랫사람에게 명령해서 그게 통하지 않도록 했으며, 풍헌(風憲)의 우두머리로서 고을에서는 선망의 대상에 속했는데, 큰 기러기가 한 번의 액운을 만나서 운수가 매우 비색하게 오랏줄에 묶여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서 단련을 받았으니 무슨 허물이 있어서인가요? 길가에는 눈물로 이별하여 눈은 마른 나무가 되려고 했으며, 달성(達城)까지 달아나 위문을 하니 마음속의 회포가 어지러웠다가 다행히도 풀려남을 얻어서 기뻐 박수 칠만 했었습니다. 나쁜 천연두를 숭상하여 또한 어찌나 혹심했는지 의약[刀圭:약 숟가락.국자.의술.]도 효과가 없어서 크게 저물어 감이 임박하자 나와 친구들은 몹시 슬퍼하며 무거운 저승과의 간격을 띄우려고 했지만 눈에는 엄숙하게[森然:수목이 죽 늘어선 모양.] 옛 전형(典型:조상을 닮은 모습.본보기..같은 종류의 같은 모양.]을 보였었습니다. 돌아보면 나와는 용종(龍種:영특한 아이.준마.준재.제왕의 자손.대나무.)을 나눈 의()가 두터워서 좋은 기운을 부르며 말 타고 다니며 진심으로 속내를 기울였습니다. 나이도 아래 위라 하여 형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우라 부르기도 하며, 시집가고 장가보내서 줄 풀과 칡처럼 얽혀진 인척(姻戚)으로 맺어져서 둘로 나눈 한쪽을 화려하게 나눴습니다. 사는 곳도 지척(咫尺)이라 자주 가고 자주 와서 같이 회포를 털어내면서 꽃을 노래하고 달빛에 취해서 봄이 다시 가을이 되고 또다시 계절이 바뀌면서 공()이 기쁘면 나도 기쁘고, ()이 근심스러우면 나도 역시 근심스러워 했었습니다. ()이 지금 원통함을 품음에 길가는 사람들도 눈물 흘리는데, 하물며 내 정()을 끊어내니 정녕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태백산(太白山)남쪽 산록의 불끈 솟은 언덕의 산이 밝고 물이 맑은 길지에 무덤[宅兆]을 만들고 행상 상여를 이미 타고 가서 매장[]함에 이르렀습니다. 못난 제가 검소하게[菲薄] 받들어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아아! 가슴 아픕니다. 큰 소리로 곡()을 할 뿐입니다.


 


窩南公文(제탑와남공문)


 


嗚呼斯老至斯割余半身九帙雖壽弱草輕塵永隔重泉於何更接士林失望吾儕無托鼓篋先門兩世伊三才超群弟名籍


오호사노지사할여반신구질수수약초경진영격중천어하갱접사림실망오제무탁고협선문양세이삼재초군제명적


吾南盡誠社事生三報一纂集遺稿遂成編帙憐我恤我親若骨肉況托婚媾義分益篤詩酒逢場吐露肝膈留意儒學積工


오남진성사사생삼보일찬집유고수성편질련아휼아친약골육황탁혼구의분익독시주봉장토로간격유의유학적공


磨琢攀花玉井是公餘事草澤空老慨此碩器寢郞擬薦未蒙聖恩宜達而窒寔命之屯花山之北川之灣斗屋蕭灑爰得


마탁반화옥정시공여사초택공노개차석기침랑의천미몽성은의달이질식명지둔화산지북천지만두옥소쇄원득


寬閒滿壁圖書盈床卷軸生事雖凉隨意自足天何禍善晩喪卜明有孫穎秀庶慰冥冥不佞年來抱病縮伏筋衰力憊末由


관한만벽도서영상권축생사수량수의자족천하화선만상복명유손영수서위명명불녕년래포병축복근쇠력비말유


匍匐事勢固爾匪情之薄襄奉之期迫在明日大聲一哭長夜漠漠菲薄一奠豈協情素不昧惟靈庶我歆顧


포복사세고이비정지박양봉지기박재명일대성일곡장야막막비박일전개협정소불매유령서아흠고


 


窩南公文(제탑와남공문)


탑와() 남형회(南亨會)() 제문(祭文)


 


아아! 이 늙은이여! 내 반신(半身)을 가르는 것 같습니다. 90(九秩)면 비록 수()를 했다지만 연약한 풀처럼 가벼운 먼지처럼 황천[重泉:깊은 샘.사자(死者)가 있는 곳.]으로 영원한 이별을 했으니 어찌 다시 사림(士林)들이 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실망하여 의탁할 바가 없어 책 상자만 두드립니다. 두 세대에 걸친 선조(先祖)의 문하와 이제의 3세대에 걸쳐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여러 제자들 중에서 뛰어났었습니다. 우리 남공(南公)께서는 재사(齋社:반천정사)의 일에는 지성이어서 살아서는 여러 글들을 하나로 찬집(纂集:자료를 모아 분류하고 순서를 세워 편집함.)하여 유고(遺稿)를 완성해 편질(編帙)을 이루셨습니다. ()께서는 나를 마치 골육(骨肉)처럼 친하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물며 혼인(婚姻)을 하여 의()를 나누며 더욱 돈독해 졌습니다. ()와 술이 있는 자리를 만나면 간담[肝膈]을 토로(吐露)하며 유학(儒學)에 마음을 두고 갈고 쪼아서 공부를 쌓아서 꽃에 매달려서[攀花] 옥정(玉井:아름다운 우물.28수의 하나.)까지 가는 걸 공()은 여사(餘事:여가에 하는 일. 여력으로 하는 일.딴 일.)로 하셨습니다.거친 풀들[雜文] 덕택에 아무 이룬 일 없이 헛되이 늙어가니 개탄스럽습니다. 이 큰 그릇이 능 참봉[寢郞]에 천거하기로 논의했으나 마땅히 이르러야 할 성은(聖恩)을 입지도 못하고 막히셨으니 이것이 운명의 인색함인가? 화산(花山=安東)의 북쪽, 탑천()이 굽이치는 산뜻하고 깨끗한 곳에 썩 작은 집[斗屋]을 짓고 이에서 넓고 한가함을 얻으셨습니다. 벽마다 책들로 꽉 찼고, 서상(書床)에는 시축(詩軸) 두루마리로 넘쳐나서 이 일로 사시고, 비록 가난해도 뜻에 따라 자족(自足)하셨습니다. 하늘은 어찌 잘 늙어 가는 사람에게 화()를 미치게 하여 밝음을 가려서 상()을 당하게 하십니까? 총명하고 빼어난[穎秀] 자손들이 있어서 명명(冥冥) 중에서도 거의 위안이 될 것입니다. [不佞:구변과 재주 없는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는 해가 갈수록 병()을 싸고 있고, 근력도 쇠약해져서 위축되어 엎드리며, 힘을 비축해 보지만 늘그막인 까닭에 땅에 배를 깔고 다니는[匍匐:넘어져 뒹굶. 힘을 다해 서두르는 모양.]형편이라서 참으로 공()에게 인정이 박()하지는 않지만 양례(襄禮)를 봉행하는 기일이 내일로 다가오니 큰 소리로 한 번 곡()을 합니다. 기나 긴 밤이 막막(漠漠)합니다. 비박[菲薄:물건이 적음.가난함.검소한 삶.재주나 덕망이 적음.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라는 자기의 겸칭.]하나마 한 잔 올리오니 어찌 정() 적다고 하겠습니까? 환한[不昧]영령께서는 삼가 나를 돌아보시고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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