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苟全先生文集 續集
苟全先生文集 續集
제목 疏,策,書,雜著,記,表
작성자 관리자 [2018-03-14 18: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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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

 

白雲洞儒生疏 代作(백운동유생소 대작)

 

伏以今日各道各邑書院之多皆出於先正儒臣之一依宋朝大賢遺制經營規畫而 祖宗朝所以賜額頒經有所勵致誠者豈不以敎育人才爲

복이금일각도각읍서원지다개출어선정유신지일의송조대현유제경영규화이 조종조소이사액반경유소려치성자개불이교육인재위

國家風化之第一急務也臣等所居郡古無書院故儒臣周世鵬42)先正臣李滉相繼守郡創設修定凡百制度無非稟關脅聽實我東方首建盛擧

국가풍화지제일급무야신등소거군고무서원고유신주세붕42)선정신이황상계수군창설수정범백제도무비품관협청실아동방수건성거

而院有謄錄可稽矣當初奉安文成公臣裕配以文貞公臣軸文敬公臣輔 明廟朝特賜額紹修43)仍頒經書命依國學之規崇儒右文之化愈遠愈

이원유등록가계의당초봉안문성공신유배이문정공신축문경공신보 명묘조특사액소수43)잉반경서명의국학지규숭유우문지화유원유

深於是而郡守報方伯議爲守護廟宇供饋儒生之計乃以本郡官奴林種同安王孫金景良官婢九月等四人浮取官案移屬院僕而厥後方伯之巡

심어시이군수보방백의위수호묘우공궤유생지계내이본군관노임종동안왕손금경량관비구월등사인부취관안이속원복이궐후방백지순

到本院也其後日或有沮撓之患與郡守商礭定規立案鋟梓揭于壁上又謄別冊曰四戶子孫永爲院僕勿役他處云故雖經倭亂廟尙如舊多士

도본원야기후일혹유저요지환여군수상확정규입안침재게우벽상우등별책왈사호자손영위원복물역타처운고수경왜란묘상여구다사

四集絃誦不繞百年于玆不替聖祖遺命者實四人子之力也而今此號牌時臣等不敢以賜給懸錄者盖以亂離中埋置公文於山谷間經一年春

사집현송부요백년우자불체성조유명자실사인자지력야이금차호패시신등불감이사급현록자개이난이중매치공문어산곡간경일년춘

夏因地濕未免腐敗而無公案可徵故也方今乃以他書院冒屬良丁一樣將爲刷定軍役失此四人子則祠廟誰守樵誰供多士何以托跡香火

하인지습미면부패이무공안가징고야방금내이타서원모속양정일양장위쇄정군역실차사인자칙사묘수수초수공다사하이탁적향화

何以繼辦臣等不勝區區憫迫之切臣等竊見先正臣李滉嘉靖己酉年爲本郡郡守時上方伯述通源書則請依宋朝故事給土田臧獲以贍書院之

하이계판신등불승구구민박지절신등절견선정신이황가정기유년위본군군수시상방백술통원서칙청의송조고사급토전장획이섬서원지

力轉聞于 上云云則鄕中年老人所謂 明廟朝因方伯啓請賜給此四人者未爲不的而不敢據此私書有若公文者然不得已將此曲折來九天

력전문우 상운운칙향중년노인소위 명묘조인방백계청사급차사인자미위부적이불감거차사서유약공문자연부득이장차곡절래구천

之下惶尺無任太槪南宋渡江以後雖當百戰搶攘之日而閩浙湖湘之間斯文蔚興士學日盛轉相慕效處處增置豈宋之亡以其書院之盛建耶雖

지하황척무임태개남송도강이후수당백전창양지일이민절호상지간사문울흥사학일성전상모효처처증치개송지망이기서원지성건야수

以胡元竊據猶知首立太極書院逮我大明中天文化大闡學校之政益以修擧考諸一統志所載天下書院總三百餘所其所未載者想又多也臣等

이호원절거유지수입태극서원체아대명중천문화대천학교지정익이수거고제일통지소재천하서원총삼백여소기소미재자상우다야신등

伏聞朝家近日之議擧皆以書院爲弊患必欲先發院屬而定軍其意實在於憂今之兵籍虛疎欲爲之矯弊歸正也而朝家旣如是方伯亦如是守令

복문조가근일지의거개이서원위폐환필욕선발원속이정군기의실재어우금지병적허소욕위지교폐귀정야이조가기여시방백역여시수령

從而如是則鄕校書院其將不日而鞠爲茂草淪胥於頹廢甚矣目今多士之育成於校院者豈可擬議於古昔萬一而籍令雖止於記誦詞章猶或爲

종이여시칙향교서원기장불일이국위무초륜서어퇴폐심의목금다사지육성어교원자개가의의어고석만일이적령수지어기송사장유혹위

一時之收用況其間不無私淑力學之徒乎且臣等自前遵禮記國有寇敵則大司徒率其徒肆戎之規壬辰年倭變時不期而會倡爲義擧積年防戌

일시지수용황기간불무사숙력학지도호차신등자전준례기국유구적칙대사도솔기도사융지규임진년왜변시불기이회창위의거적년방술

終有斬獲之效及我聖上反正之後适賊之入都城也亦嘗自募作隊年少者則持弓矢荷戈戟老者則隨力出米爲餉軍之資當此之時所謂校屬院

종유참획지효급아성상반정지후괄적지입도성야역상자모작대년소자칙지궁시하과극로자칙수력출미위향군지자당차지시소위교속원

屬又皆奔走陣中或爲兵或爲乃裹糧之卒則此固國家作爲別伍以赴急難之流也豈必打盡於今日使學舍居然顚覆而後已也臣等妄計以爲

속우개분주진중혹위병혹위내과량지졸칙차고국가작위별오이부급난지류야개필타진어금일사학사거연전복이후이야신등망계이위

朝廷似宜隨其章甫聚會之多少定其各邑學宮所屬之數然後 祖宗朝作新士民之意庶幾不墜於 聖明之下矣臣等所達種同等四人本以官屬

조정사의수기장보취회지다소정기각읍학궁소속지수연후 조종조작신사민지의서기불추어 성명지하의신등소달종동등사인본이관속

爲院僕至于子孫世世服役則非如一時有司私自募屬之比而一朝刷出定軍則渠輩之不以書院爲可仗固不足擧論而其如學舍之頹廢有甚於

위원복지우자손세세복역칙비여일시유사사자모속지비이일조쇄출정군칙거배지불이서원위가장고부족거론이기여학사지퇴폐유심어

經亂何哉臣等取考院中謄錄嘉靖二十三年甲辰周世鵬爲郡守翌年乙巳書院告成越二十七年戊申李滉爲郡守則此官僕之移屬出於周手而

경난하재신등취고원중등록가정이십삼년갑진주세붕위군수익년을사서원고성월이십칠년무신이황위군수칙차관복지이속출어주수이

上書方伯定爲勿役他處之規先正臣李滉爲之矣周之移屬也旣有公案而李滉至於上書方伯轉聞于朝明白處置俾成金石之典者其意想已燭

상서방백정위물역타처지규선정신이황위지의주지이속야기유공안이이황지어상서방백전문우조명백처치비성김석지전자기의상이촉

照百年後今日事勢而然也且所謂竹溪誌一冊藏在院中卽周世鵬所著而有曰文成公當麗季國學頹廢斯文墜地之日慨然以興起爲已任旣已

조백년후금일사세이연야차소위죽계지일책장재원중즉주세붕소저이유왈문성공당려계국학퇴폐사문추지지일개연이흥기위이임기이

營建學舍而不惜私財納其藏獲以供學徒云則雖捐此若干官奴婢俾護其廟亦不至於傷惠而且有菁莪化蔚治敎休明之實效則遵而勿改豈非

영건학사이불석사재납기장획이공학도운칙수연차약간관노비비호기묘역부지어상혜이차유청아화울치교휴명지실효칙준이물개개비

今日崇右之一大擧措耶況本以官奴婢移屬於書院則臣等竊恐不可以閑丁視之也又不爲添定軍保而還屬官家則本郡無此數人子而能成

금일숭우지일대거조야황본이관노비이속어서원칙신등절공불가이한정시지야우불위첨정군보이환속관가칙본군무차수인자이능성

公家模樣以過百餘年則實無大益於公家而有損於學官不爲不甚朝家變更之意豈端使若是而已哉且先正臣李滉上方伯書所云依宋朝故事

공가모양이과백여년칙실무대익어공가이유손어학관부위부심조가변경지의개단사약시이이재차선정신이황상방백서소운의송조고사

轉聞于上給田土藏獲者亦必有宋朝置院給屬當時現行規例而臣等俱以末學淺見無以考出若經幄儒臣慱涉書史之賢則其必目閱而心數之

전문우상급전토장획자역필유송조치원급속당시현행규례이신등구이말학천견무이고출약경악유신단섭서사지현칙기필목열이심수지

矣此臣等之所以不敢不陳其情折仰籲於閶闔不能自己者也伏願 殿下上念 祖宗朝崇重之意下念國家敎育之化特命仍舊服役使百年已成

의차신등지소이불감부진기정절앙유어창합불능자기자야복원 전하상념 조종조숭중지의하념국가교육지화특명잉구복역사백년이성

之規無或見毁於 聖代則斯文幸甚國家幸甚臣等無任戰汗屛營之至

지규무혹견훼어 성대칙사문행심국가행심신등무임전한병영지지

 

상소문()

백운동 유생 상소문(白雲洞儒生疏) 대신 지음[代作]

 

엎드려 삼가 생각하니 요즘 각도(各道)각읍(各邑)에 서원(書院)이 많은 것은 대개 선대(先代)의 어진[先正]유신(儒臣)들이 송조(宋朝)대현(大賢)의 유제(遺制)에 하나같이 의거하여 꾀하고 경영하여 선대 임금의 조정[祖宗朝]에서 사액(賜額)을 한 까닭에 경서(經書)를 가르치고[頒經] 정성을 드려서 권하여 힘쓰게[]한 것에서 나왔으니 어찌 인재(人才)를 교육함으로써 국가(國家)가 백성을 교화하는[風化] 제일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신등(臣等)이 사는 고을은 옛날에는 서원(書院)이 없었던 까닭에 돌아가신 유신(儒臣)인 주세붕(周世鵬) 선생과 선대의 어진 신하[先正臣]인 이황(李滉)께서 서로 이어서 군수(郡守)로서 서원을 창설(創設)하고 모든 제도를 틀린 곳을 고쳐 바르게 하여 관백(關白:감사)에게 품의(稟議)하여 다잡아 듣지 않은 바가 없었으니 실로 우리 동방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성대한 거사[盛擧]로 서원에는 등록(謄錄:베껴서 기록함)이 있어서 상고(詳考)할 수 있었습니다.당초에는 문성공(文成公)()안유(安裕)를 봉안(奉安)하다가 문정공(文貞公)()안축(安軸)과 문경공(文敬公)()안보(安輔)를 배향(配享)하여 명종조[明廟朝]에 특별히 소수(昭修)라 사액(賜額)하여 경서(經書)를 가르치고 국학(國學: 성균관)의 규정에 의거하여 유학(儒學)을 숭상하고 학문을 존중하는 교화[右文之化]가 더욱 멀고 더욱 깊게 하라고 명()하시어 이에 군수(郡守)가 감사(監司:방백)께 보고하여 묘우(廟宇)를 수호(守護)하고 유생(儒生)들의 수에 맞춰 음식을 공급하는 문제들을 상의하여 이에 본 군()의 관노(官奴)인 임종동(林種同),안왕손(安王孫),김경량(金景良)과 관비(官婢)인 구월(九月)4명을 관안(官案)에 있었던 것을 떼어버리고[浮取]서원(書院)노복(奴僕)으로 이속(移屬)시켰습니다.그 후 감사(監司:방백)께서 순시하며 본 서원(書院)에 오셔서 그 뒷날 혹시라도 휘어져 막히는 환란을 두려워하여 군수(郡守)와 같이 적확()한 규정(規定)을 입안(立案)하여 판목(板木)에 새겨[鋟梓]서 벽()위에 걸어두게 하고, 또 별책(別冊)에 등록(謄錄)하기를‘4()의 자손은 영구히 서원의 노복으로 다른 곳에 사역시키지 말라.’고 했으므로 비록 왜란(倭亂)을 겪었지만 묘우(廟宇)가 그대로 있고 옛날처럼 많은 선비들이 사방에서 모여 악기를 타며 시가를 노래함[絃誦]이 끊어지지 않고, 백 년 동안 이처럼 성조(聖祖)의 유명(遺命)이 쇠퇴하지 않은 것은 실로 4()자손들의 힘입니다. 그러나 이번 호패(號牌) 때 신등(臣等)은 감히 하사(下賜)하여 장부에 기록한[懸錄]데로 하지 못했으니 아마 난리 중에 산곡(山谷) 사이에 공문(公文)을 묻어둔 지 1년이 지나 봄 여름의 땅이 습()하여 부패(腐敗)됨을 면하지 못하여 공문서[公案]들이 없어진 징조를 경험한 까닭입니다.

방금 다른 서원(書院)처럼 소속된 사람을 일반 양민 장정[良丁]과 마찬가지로 건드려서 장차 군역(軍役)에 정하도록 정돈했습니다. 이 네 사람의 자손들을 잃게 되면 사묘(祠廟)는 누가 수호(守護)하며 땔나무와 불 때어 밥 지어 많은 선비들의 공궤는 누가 하며, 어떻게 선현의 자취에 향화(香火)를 맡기며, 어떻게 힘써 이어가겠습니까? 신등(臣等)은 구구히 절박(切迫)한 근심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신등(臣等)이 가만히 살펴보니 선대의 어진 신하였던 이황(李滉)께서 가정(嘉靖:明 世宗 年號) 기유(己酉:1549)년에 본 군()의 군수(郡守)가 되었을 때 방백(方伯:감사)께 심히 근원에 통하는 글을 올렸은 즉 송조(宋朝) 때의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토전(土田)과 종[臧獲]을 지급하여 서원(書院)의 힘이 넉넉하도록 청원하자 전해 들으신 임금께서 말씀하셨다고 하신 즉 향중(鄕中)의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말하는 바로는 명종조(明宗朝)에 방백(方伯)이 계청(啓請)하여 이 네 사람을 하사(下賜)하여 주었다고 합니다.이 네 사람이 적합하지 않음이 아니라 감히 이 사서(私書)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만약 공문(公文)인데 부득이 장차 이런 곡절(曲折)로 구천(九天)아래에 와서 부르짖으니 쓸모없는 편지로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대개 남송(南宋)이 양자강을 넘어간 뒤에 비록 일당백의 전투로 몹시 어지러운[搶攘]날에도 복건(福建),절강(浙江), 호남성, 호북(湖湘)성 사이에서는 유학(儒學)이 성하게 일어나[蔚興]고 선비들의 학문이 날로 성()하여 서로 사모하는 효과로 바뀌어서 곳곳에 서원을 더 증설해 두었으니,어찌 송()나라가 망한 것이 그 서원(書院)의 성대한 건립 때문이겠습니까? 이렇게 하더라도 오랑캐인 원()나라도 오히려 가만히 이를 근거로 우두머리인 태극서원(太極書院)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우리 명()나라에서도 문화 세상에 학교를 더욱 늘리는 정책으로 학문을 닦아서 문과 급제[大闡] 고시에 오르도록 하니 모두 하나로 뜻이 통일 된 바 온 중국에 서원(書院)이 모두 3백 여 곳이 소재하며, 그 등재(登載)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신등(臣等)이 엎드려 들으니 요즘 조정[朝家]에서는 거의 다 서원(書院)의 폐해와 근심[弊患]을 논의하면서 꼭 먼저 발행한 서원 소속을 군속(軍屬)으로 정하려고 합니다만 그 뜻은 실재로는 요즘의 병적(兵籍)이 허소(虛疎)함을 우려하여 그 폐단을 바로 잡아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조정[朝家]에서 이미 이렇게 하니 방백(方伯:감사) 역시 이렇게 하니 수령(守領)들도 따라서 이와 같이 한 즉 향교나 서원(書院)은 그 장래가 날로 기르고 가르치지 않아서 잡초만 무성하고 퇴폐(頹廢)하게 이끎[潤胥]이 심할 것입니다. 현재 많은 선비들을 향교와 서원에서 육성하고 있는데 어찌 옛날처럼 생각하고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지금처럼 대장에 올린다면 사장(詞章)을 암기하고 읊는 것이 그칠 것이니 오히려 혹시 한 때의 수용으로 한다고 해도 항차 그간 사숙(私淑)하여 학문에 힘쓰는 무리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또 신등(臣等)이 전부터 지켜 온 예기(禮記)에도 나라에 외적[寇賊]이 있으면 대사도(大司徒)가 그 무리를 이끌고 오랑캐를 죽인다는 규정에 따라 임진년(壬辰年:1592) 왜변(倭變) 때도 지체 없이 모여서 의병(義兵)을 창도(倡道)하여 여러 해동안 거사하여 국경을 지켜[防戌]종내는 목을 베고 사로잡은[斬獲]효과가 있었습니다.또 우리 성상(聖上)께서 반정(反正)후에 이괄(李适)적당(賊黨)이 도성(都城)으로 들어 왔을 적에도 역시 스스로 모여서 대오(隊伍)를 만들어 젊은이는 궁시(弓矢)를 잡고 창[戈戟]을 메고 늙은이는 능력에 따라 양미(糧米)를 내어 군량(軍糧)과 군사 물자로 충당하여 이때 소위 향교 소속[校屬]이나 서원 소속[院屬]들 또한 진중(陣中)에서 혹은 병사로, 혹은 식량을 싸는 병졸로 분주했은 즉 이처럼 국가를 지키는 별도의 대오(隊伍)를 만들어서 급난(急難)에 달려갔던 부류입니다.어찌 반드시 요즘처럼 모조리 잡아서 학사(學舍)를 그대로 두면 전복(顚覆)되고 마는데 그 뒤에 시키겠습니까? 신등(臣等)의 망녕된 생각으로는 조정(朝廷)에 하는 바를 마땅히 따른다고 한다면 그 유생(儒生)들의 모임[聚會]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각읍(各邑)의 학궁(學宮)에 소속된 숫자를 정한 뒤에 선대 왕조[祖宗朝]에서 만든 사민(士民)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 밝은 성상[聖明] 아래에서 거의 실추(失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신등(臣等)이 주달(奏達)하는 바는 임종동(林種同)4명은 본래는 관속(官屬)이었다가 서원(書院)의 노복이 되어 자손 대대로 복역(服役)하고 있은 즉 마치 유사(有司)가 일시에 스스로 모집하여 소속시킨 것과 비교해서는 안 될 것이며, 하루아침에 군인으로 정해서 뽑아낸다면 그들이 서원이 아닌 무기를 지키는 것이 부족하다고 거론한다면 마치 그 학사(學舍)의 퇴폐(頹廢)가 심하다는 것을 난()을 겪으셨지 않습니까? 신등(臣等)이 서원(書院) 중의 등록(謄錄) 실태를 조사[取考]해 보니 가정(嘉靖)23년 갑진(甲辰:1544)년에 주세붕(周世鵬)이 군수(郡守)가 되고 그 이듬해인 을사(乙巳:1545)년에 서원(書院)의 낙성을 고유하고 넘어가서 27년 무신(戊申:1548)년에 이황(李滉)이 군수(郡守)가 되었은 즉 이 관복(官僕)의 이속(移屬)은 주세붕(周世鵬)의 손으로 나온 것이고,방백(方伯:監司)에게 글을 올려서 타처(他處)의 역()으로 하자 말라는 규정(規定)은 선정신(先正臣)이황(李滉)이 한 것입니다.주세붕(周世鵬)이 이속(移屬)한다는 공안(公案)이 이미 있었고, 이황(李滉)에 이르러 방백(方伯)에게 상서(上書)하여 조정(朝廷)에서 전해 듣고는 명백히 처치(處置)하여 더하여 금석지전(金石之典)을 이루었습니다.그 생각을 등불로 밝게 비춘지 이미 백년 후인 오늘날의 사세(事勢)가 이렇습니다.또 소위 죽계지(竹溪誌)라는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한 권의 책이 서원(書院)에 있는데, 거기에는 문성공(文成公:安裕)이 고려 말에 국학(國學)이 퇴폐(頹廢)함을 당하여 유학(儒學)이 땅에 떨어지는 날에 개연(慨然)히 흥기(興起)하는 것이 자기의 소임으로 이미 학사(學舍)를 짓는데 사재(私財)를 아끼지 않고 납부하고 종[臧獲]으로 학도(學徒)들을 공궤했다고 했은 즉 비록 이처럼 약간의 관노비(官奴婢)를 주고 더하여 그 묘()를 수호(守護)하는 것 또한 상()함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혜택이 되고 또 인재를 교육함[菁莪]에 있어서 백성을 가르치는 교화가 성하게 일어나서 훌륭하고 명백한 실효(實效)가 있은 즉 지켜서 고치지 않는 것이 어찌 오늘날만 아니라 학문을 숭상하는 일대 거조(擧措)가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본래 관노비(官奴婢)를 서원(書院)으로 이속(移屬)했은 즉 신등(臣等)이 가만히 두려워 국역(國役)에 나가지 않은 장정[閒丁]으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정군(定軍)에 첨가해서 보충하지 않고 관가(官家)로 환속(還屬)한 즉 본군(本郡)은 이 몇 사람의 자손들이 없어도 관가[公家]의 모양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백여 년인 즉 실로 관가[公家]에서는 큰 이익이 없고 학궁(學宮)에는 손해가 있으니 감히 조정[朝家]에 변경의 뜻을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어찌 이와 같이 바르게 할 뿐이 아니겠습니까? 또 선정신(先正臣)이황(李滉)이 방백(方伯:감사)에게 올린 글에 이르길 송조(宋朝)의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임금께서 간접적으로 들으시고 전토(田土)와 종[臧獲]을 지급한 것 역시 반드시 송조(宋朝)에 서원을 두어 소속을 준 당시 현행의 규례(規例)에 있습니다.신등(臣等)이 모두 미숙한 학문[末學]으로 얕은 생각으로 상고함이 없이 나온 것이 마치 유신(儒臣)이 경연[經幄]에서 사서(史書)의 어진 부분을 둥글려 섭렵한 것과 같은 즉 반드시 그 눈으로 열람하고 마음으로 자주한 것입니다.신등(臣等)이 감히 진언(陳言)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사정의 까닭을 엎드려 우러러 궁궐 문[閶闔]에서 부르짖음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없음입니다.엎드려 바라오니 전하(殿下)께서는 위로는 조종조(祖宗朝)의 중요함을 숭상하는 뜻을 생각하시고 아래로는 국가(國家)교육의 치화(治化)를 생각하시어 특명(特命)으로 전례(前例)를 따라 복역(服役)하도록 해서 백 년 전에 이미 이루어진 규정을 성대(聖代)에 훼손함이 없게 하신다면 유학(儒學)의 다행이자 국가(國家)의 다행일 것입니다. 신등(臣等)은 맡은 일 없이[無任]무심코 떨려서 나오는 식은 땀[戰汗]으로 두려운 마음에 갈팡질팡하여 방황[屛營]함에 이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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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錢幣(문전폐)

對臣幸從三十人後稽首咫尺階下猥承親策叨奉淸問所謂錢幣乃中國古今之經用而大東今日欲行而未行者也我殿下裕民足國之念曰篤服

대신행종삼십인후계수지척계하외승친책도봉청문소위전폐내중국고금지경용이대동금일욕행이미행자야아전하유민족국지념왈독복

之初而謀及卿士之餘試我新進之臣噫童觀淺近固非十朋之或益而飛鳥亦獲敢整千慮臣有得伏讀聖策曰自古資民以生止不同何歟臣圭復

지초이모급경사지여시아신진지신희동관천근고비십붕지혹익이비조역획감정천려신유득복독성책왈자고자민이생지부동하여신규부

再三隕越于下臣聞寒然後爲之衣飢然後爲之食衣食之不足而又有錢以爲幣何莫非斯民之所資而因天地自然之利制國家通用之貨視有無

재삼운월우하신문한연후위지의기연후위지식의식지부족이우유전이위폐하막비사민지소자이인천지자연지리제국가통용지화시유무

而懋遷隨豊歉而爲用錢幣之於民固不重且大歟故衣我民者以此食我民者以此權宜之用一設於衣食之外而衣食之原未嘗不出於此焉則始

이무천수풍겸이위용전폐지어민고부중차대여고의아민자이차식아민자이차권의지용일설어의식지외이의식지원미상불출어차언칙시

制於一時而常用於萬世者固不得不爾也雖然錢可用也而必有用錢之本民可足也而亦有足民之道苟知其本而能盡其道則於爲國乎何有曰

제어일시이상용어만세자고부득불이야수연전가용야이필유용전지본민가족야이역유족민지도구지기본이능진기도칙어위국호하유왈

若稽古軒轅採銅於首岳放勳鑄金於歷山創是者尙矣金銀三品夏制尙貢而刀龜異名代各有取則其正供之道利散之義盖可想矣六府孔修於

약계고헌원채동어수악방훈주김어력산창시자상의김은삼품하제상공이도구이명대각유취칙기정공지도리산지의개가상의육부공수어

虞而有地天平成之美九府乃立於周而爲理財足國之法臣不敢知有何優劣也秦之半兩漢卽徵也而楡莢四銖高文之輕重有異六朝因革宋錢

우이유지천평성지미구부내입어주이위리재족국지법신불감지유하우열야진지반양한즉징야이유협사수고문지경중유이육조인혁송전

有千而鵝眼一行商旅之失業太甚其得失可見矣或取乾坤之象而稱兄稱神或惡郭氏之貪而阿堵不名則魯褒王衍之偏於好惡臣何敢爲殿下

유천이아안일행상려지실업태심기득실가견의혹취건곤지상이칭형칭신혹악곽씨지탐이아도부명칙노포왕연지편어호오신하감위전하

區區哉伏惟聖明取捨焉伏讀聖策曰我東方止斷而行之臣圭復再三隕越于下臣竊惟我東方之生久矣有土有財粤自古昔檀立幷堯箕治用夏

구구재복유성명취사언복독성책왈아동방지단이행지신규부재삼운월우하신절유아동방지생구의유토유재월자고석단입병요기치용하

而史牒所載有若一匹帛三十斛羅氏之盛富也發縣倉萬兵麗家之蓄積也則豈無財用之可稱而所謂錢幣之合於古則臣實未知也至于我國

이사첩소재유약일필백삼십곡라씨지성부야발현창만병려가지축적야칙개무재용지가칭이소위전폐지합어고칙신실미지야지우아국

家聖祖貽謀神孫繼述治具畢張無非帝王之遺法制度大備一遵中國之宏規而獨此錢幣尙莫之行雖有通寶之名而竟無大效之收是豈法具之

가성조이모신손계술치구필장무비제왕지유법제도대비일준중국지굉규이독차전폐상막지행수유통보지명이경무대효지수시개법구지

有同異亦豈民情之好姑息耶噫中土之民若彼其殷富而我國之民若是其貧困實由於錢幣之行與不行而竊未知擧行之難果何故耶征賦之有

유동이역개민정지호고식야희중토지민약피기은부이아국지민약시기빈곤실유어전폐지행여불행이절미지거행지난과하고야정부지유

輕重耶經營之有勤慢耶抑理財裕民之失其道而然耶此固臣民之所窃痛國家之所嘗講者也先王末造已有用幣之議發言盈庭未見底行之實

경중야경영지유근만야억리재유민지실기도이연야차고신민지소절통국가지소상강자야선왕말조이유용폐지의발언영정미견저행지실

其在于今聖孝丕承存心無忝銳意將多袞我民斯愛先王之所愛念玆財用講先王之所講格汝卿相備詢便否泉流之用可廣於朝夕而決斷之音

기재우금성효비승존심무첨예의장다곤아민사애선왕지소애념자재용강선왕지소강격여경상비순편부천류지용가광어조석이결단지음

尙靳於渙汙噫殿下之心豈有他哉究所以於先甲慮將然於後庚也嗚呼帝王之用錢也如是上國之見效也如是今我 殿下卽古昔帝王也惟我

상근어환오희전하지심개유타재구소이어선갑려장연어후경야오호제왕지용전야여시상국지견효야여시금아 전하즉고석제왕야유아

下邦亦上國聯壤也殿下用之則今之錢幣豈非古帝王之錢幣下邦行之則今之殷富亦豈非上國之殷富也臣竊以爲用之可也行之便也雖然秦

하방역상국련양야전하용지칙금지전폐개비고제왕지전폐하방행지칙금지은부역개비상국지은부야신절이위용지가야행지편야수연진

皇漢武非불用錢而未免匱耗之患羅代麗朝未嘗用錢而亦有豊裕之蹟則臣又恐愛民爲用錢之本節用爲足民之道也誠願殿下不患錢之不用

황한무비부용전이미면궤모지환라대려조미상용전이역유풍유지적칙신우공애민위용전지본절용위족민지도야성원전하불환전지부용

而患吾愛民之或未至不慮民之不足而濾吾節用之或未盡不徒其言而必盡其心不但其名而必務其實則七年之旱無害於湯后四海之富何讓

이환오애민지혹미지불려민지부족이려오절용지혹미진부도기언이필진기심부단기명이필무기실칙칠년지한무해어탕후사해지부하양

於舜日噫 殿下之於愛民旣無不至 殿下之於節用又無不盡則彼錢幣一事臣抑以爲行之亦可不行亦可也伏惟 殿下監玆焉伏讀聖策曰子

어순일희 전하지어애민기무부지 전하지어절용우무부진칙피전폐일사신억이위행지역가불행역가야복유 전하감자언복독성책왈자

大夫止親覽焉臣圭復再三隕越于下嗚呼臣由科擧以進言不出於有德粗綴陳腐恐不足以有補於聖朝之萬一而申命如此敢不建達噫臣聞爲

대부지친람언신규부재삼운월우하오호신유과거이진언불출어유덕조철진부공부족이유보어성조지만일이신명여차감불건달희신문위

政在於得人夫堯舜禹之爲天下得人者豈偶然哉 殿下雖有仁心仁政而下無奉行之人則理財裕民之道有何所托而責成者乎臣竊不知今之

정재어득인부요순우지위천하득인자개우연재 전하수유인심인정이하무봉행지인칙리재유민지도유하소탁이책성자호신절부지금지

居戶部者何人今之爲守令者何人耶伏惟殿下試嘗簡厥良亦簡其或不良有所徵勸焉臣謹封

거호부자하인금지위수령자하인야복유전하시상간궐량역간기혹불량유소징권언신근봉

 

책문()

전폐(錢幣)에 대해 물은 책문[問錢幣]

 

대책은 신()이 다행히 30명을 따라 뒤에서 지척(咫尺)인 계하(階下)에서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稽首]하면서 외람되게도 친히 책문(策文)을 받들었습니다. 외람되게 청문(淸問)을 받들어 보니 소위 전폐(錢幣)에 대한 물음으로서 중국 고금에 항상 쓰는 비용[經用]으로 대동(大東)에 오늘날 시행하고 싶으나 시행하지 못한다. 고 했습니다.우리 전하(殿下)께서는 백성이 넉넉하면 나라가 족하다는 생각에서 말한 것으로 즉위하신 초()에 도탑게 꾀하여 공경(公卿)과 사대부(士大夫)의 나머지인 저처럼 신진(新進)들에게까지 시험(試驗)을 하십니다.아아! 얕고 천근한 식견에 고루하여 귀중한 보배[十朋]가 아니라 혹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새도 잡지 못하는데 신()이 감히 많은 생각을 정리하여 얻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엎드려 성상(聖上)의 책문(策文)을 읽으니 이르길 옛날부터 백성을 의지하여 생()하고 그침이 같지 않음은 어째 그런가? 하셨습니다.()이 되풀이 읽고[圭復]재삼 마음이 간절하여 마음이 밑으로 철렁 내려 앉아 굴러 떨어[隕越]집니다.()이 듣기로는 추운 뒤에야 옷을 입고, 굶은 뒤에야 먹는다고 했습니다.의식(衣食)이 부족하면 또 돈이 있어야 재물이 되는데 어찌 아닌 게 아니라 이 백성의 소요되는 물자에 기인하지 않겠습니까?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이로운 제도는 국가에서 통용되는 재화(財貨)의 있고 없음을 보고 교역에 힘써서[懋遷]풍년이냐 흉년에 따라서 백성들에게 전폐(錢幣)를 사용하게 하니 참으로 중차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옷도 내 백성으로써 하고, 먹는 것도 내 백성으로써 하니 때와 경우에 따라 알맞게 처리를 하여[權宜] 의식(衣食)외에 하나로 베풀어 사용하니 의식(衣食)의 근원은 미상불 이에서 나오는 것인 즉 일시(一時)에 제도를 시작하여 만세(萬世)까지 상용(常用)토록 하는 것이 참으로 부득불 그렇습니다.그러나 돈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사용할 수 있는 돈의 근본인 백성들에게 풍족해야하고 또 백성을 풍족하게 하는 도()가 있는데 참으로 그 근본을 알아서 그 ()에 다할 수 있는 것인 즉 그것이 바로 나라를 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 상관없는 말[何有]이지만 말하자면 상고해 보니까[稽古]황제 헌원(軒轅)씨가 수악(首岳)에서 동()을 채굴했고,(:放勳)임금이 력산(歷山)에서 쇠를 주조하는 것을 만들어 내신 분들입니다.금은(金銀)구리의 3(三品)은 하()나라 공물(貢物)제도로 도구(刀龜)라는 다른 이름으로 대신 각각 취했은 즉 그 부세(賦稅)의 바른 도()는 이()이나 흩어지는 의의는 어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사토(司土),사목(司木),사수(司水),사초(司草),사기(司器),사화(司貨))6()를 크게 닦은 우(:舜임금)는 땅과 하늘을 고르게 이룸이 아름다웠고,구부(九府:()나라 때 재정을 맡아보던 관부.즉 大,,,,泉府,職內,職金,職幣의 9)를 세운 주()나라는 이재(理財)를 풍족히 하는 나라의 법이었습니다.()이 감히 어떤 우열(優劣)이 있는지는 알지 못 합니다 만 진()의 반냥(半兩)과 두[전한,후한]()나라는 징험할 수 있어서 (전한의) 유협전(楡莢錢)이나 4수반냥전(四銖半兩錢)이나 고문(高文)의 경중(輕重)은 다르며, 6(六朝)의 변천해온 내력[因革]은 송()나라는 철전(鐵錢)이 천 가지가 있어서 아안전(鵝眼錢) 한 가지로 시행하여 도부꾼의 실업(失業)이 매우 심했으니 그 득실(得失)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혹 건곤(乾坤)의 형상을 취하여 형()이라 부르기도 하고 신()이라 부르기도 하며, 혹은 나쁜 곽씨(郭氏:王衍의 妻)의 탐욕으로 아도(阿覩)라고 돈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즉 전신논(錢神論)을 쓴 노포(魯褒)()나라 때 돈이란 말을 쓰지 않은) 왕연(王衍)은 호오(好惡)에 치우쳤는데,()이 어떻게 감히 전하(殿下)께 구구하게 말씀드리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니 성명(聖明)의 취사(取捨)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엎드려 성책(聖策)을 읽으니 그 속에 이르길 우리 동방에 행함이 멈춰 끊어졌다고 하는데 신()이 되풀이 읽고[圭復]재삼 마음이 간절하여 마음이 밑으로 굴러 떨어[隕越]집니다.()이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 동방(東方)의 탄생은 오래입니다.국토가 있고, 재화가 있어서 곰곰이 생각하니 오랜 옛날부터 단군(檀君)이 세워서 요()와 함께 기자(箕子)까지 다스림에 썼음이 하()나라의 사첩(史牒)에 가령 1()의 비단[]30(:10)라고 실려 있습니다.나씨(羅氏)가 큰 부자가 된 것은 현()의 창복()에서 출발하여 만병(萬兵)을 거느리는 화려한 가문으로 축적(蓄積)했은 즉 어찌 재용(財用)이 없이 칭할 수 있었겠습니까? 소위(所謂)옛날의 모든[] 전폐(錢幣)에 대해서는 신()은 실지로 알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르러 성조(聖祖)께서 자손을 위하여 남기신 계책[貽謀]이 있고,신손(神孫)이 이어서 명백히 기술한[繼述] 나라 다스리는데 필요한 법령[治具]이 모두 펼쳐져 있어서 모두 제왕(帝王)의 유법(遺法) 제도를 훌륭히 갖춰서 중국의 큰 계획[宏規]을 하나로 지키고 있고,오히려 독자적으로 이 전폐(錢幣)의 시행을 한 것도 아니며,비록 통보(通寶)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끝내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었습니다.이것이 어찌 법령의 같고 다름이 있으며,또 어찌 민정(民情)이 임시 모면하여 편안함[姑息]을 좋아함이겠습니까? 아아! 중국의 백성들이 마치 풍성하고 번성[殷富]하고 우리나라 백성들이 마치 이처럼 그 빈곤(貧困)한 연유가 실로 전폐(錢幣)의 시행 여부(與否)에 있는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거행(擧行)의 어려움이 과연 무엇입니까? 조세를 징수하는[征賻] 일의 경중(輕重)에 있습니까? 경영(經營)하는 근무의 태만에 있습니까? 아니면 이재(理財)하는 여유(餘裕)있는 백성들이 그 도()를 잃음입니까? 이는 참으로 신민(臣民)들이 몰래 아파하는 바이며,국가(國家)가 일찍이 강구한 바로써 선왕(先王:宣祖) 말기에 이미 저폐(楮幣)를 만들어 사용하자는 논의로 조정(朝廷)에서 발언들이 넘쳐났었지만 어찌하여 현재까지 실행되지 못함을 보이고 있습니다.요즘 성상(聖上)께서 효성을 훌륭하게 이어받아[丕承] 본성을 잃지 않고 길러서[存心]한마음으로 주의를 집중하여[銳意]더럽힘 없이 장차 우리 백성들을 크고 많이 사랑하시고 선왕(先王)께서 하신 바가 사랑의 마음이니 이에 재용(財用)을 강구하심이고 선왕(先王)께서 강구하신 바를 저 대신(大臣:卿相)들이 갖추어 상의하는 한편 조석으로 널리 사용하게 널리 퍼져 미치게[泉流]하도록 결단(決斷)의 윤음(綸音)이 없으니 반드시 가슴걸이 하듯이 단단히 왕명이 한번 내려지면 취소할 수 없을 것[渙汗]입니다.아아! 전하(殿下)의 마음이 어찌 딴 데 있겠습니까? 이처럼 궁구(窮究)하여 먼저 법령을 제정하여 반포하기 전에 백성들에게 그 내용을 알려서[先甲]이것을 고려하여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後庚]함입니다.아아! 제왕(帝王)의 돈을 씀[用錢]이 이와 같고, 중국[上國]의 효과를 봄이 이와 같은데 지금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오랜 옛날의 제왕(帝王)이십니다.오직 우리는 아래의 방국(邦國)이고 또 중국[上國]과 땅이 이어져 있습니다.전하(殿下)께서 지금의 전폐(錢幣)를 쓰시는 즉 어찌 옛 제왕(帝王)의 전폐(錢幣)가 아니겠습니까? 아래의 방국(邦國)에서 사용한 즉 지금의 풍성하고 번성할[殷富]텐데 이 또한 어찌 중국[上國]의 은부(殷富)가 아니겠습니까? ()이 가만히 생각하니 (전폐(錢幣))사용하는 것이 옳으며, 시행하기에 편리합니다.비록 그렇지만 진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武帝)도 돈을 사용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궤짝 속에 감추어 소모되는 것은 면하지 못했습니다.신라(新羅)시대나 고려조(高麗朝)에서는 일찍이 돈을 사용하지 않고도 역시 풍유(豊裕)의 자취를 남겼은 즉 신()이 또한 두려운 바는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애민(愛民)인데, 돈을 사용하는 근본은 절용(節用)하여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길입니다.진실로 전하(殿下)가 원하시는 것은 돈의 사용을 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나의 애민(愛民)이 혹 미치지 못함을 근심해야 하며, 백성을 생각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의 절용(節用)이 혹 미진(未盡)함을 생각해야 하며,그 말을 따르는 자가 없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다해야 하고,다만 그 명칭만이 아니라 반드시 그 실질에 힘쓰신 즉 7년 가뭄에도 탕왕(湯王;殷의 시조)에게는 피해가 없었고 후에 4(四海)의 부()를 가지셨습니다.어찌하여(()임금은 그 부()) ()임금에게 양위(讓位)하셨습니까? 아아! 전하(殿下)께서는 백성을 사랑함이 이미 이르지 않은 바가 없으시며 전하(殿下)께서는 절용(節用)에 있어서도 또한 다하지 않음이 없으시니 저 전폐(錢幣)한 가지 일만은 신()이 생각하건대 시행해도 되고 시행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엎드려 생각하니 전하(殿下)께서는 이를 굽어보고 계십니다.엎드려 성책(聖策)을 읽어보니 이르길 대부(大夫)들께 이미 친람(親覽)을 마쳤다고 하셨으니,()은 되풀이 읽고[圭復] 재삼 마음이 간절하여 마음이 철렁 내려 앉습니다.[隕越]아아! ()은 과거(科擧)를 경유하여 진언(進言)을 올립니다만 덕()이 있어서 뽑힌 것도 아니고 케케묵은 것[陳腐]을 거칠게 꿰어서 만에 하나라도 성조(聖朝)를 돕는데 부족할까 두렵고 명령을 선포함이 이와 같은데 감히 끝까지 진달(進達)하지 못하여 두렵습니다.아아! ()이 듣기에는 정치는 사람을 얻는 데[得人]있다고 했습니다.무릇 요순우(堯舜禹)가 천하(天下)에 사람을 얻은 것이 어찌 우연이었겠습니까? 전하(殿下)께서 비록 어진 마음과 어진 정치가 있다고 해도 아래에서 봉행(奉行)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재(理財)로 백성을 넉넉하게 하는 길이 있더라도 어디에 의탁하여 이룸을 바라겠습니까? ()이 가만히 생각해도 지금 호부(戶部:戶曹)에 근무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도 모르겠고 지금의 수령(守令)이 몇 명인지도 모릅니다.엎드려 생각하니 전하(殿下)께서 시험 삼아 일찍이 정성 없이 간결하지 않은 것을 좋다[]고 하고,또 정성들여 간결한 것을 혹시라도 불량(不良)하다고 시험하시는 바가 있다면 그만두시기를 권합니다.

() 근봉(謹封)

 

()

 

上左監司44)(상좌감사서)

 

夫居下位而謀大事者必有上之人爲之助然後勢可重而事可諧矣不然則雖有其志將安有所爲也哉等痛嘆鑾輿之播越憤憫生靈之魚肉糾合

부거하위이모대사자필유상지인위지조연후세가중이사가해의불연칙수유기지장안유소위야재등통탄란여지파월분민생령지어육규합

同同志召募散亡以正字柳宗介爲大將粗就部伍庶效微悃而不幸擧事未久値關東之寇輕骨難敵之鋒竟至首將被刃同志敗散慘痛嗚咽言

동동지소모산망이정자유종개위대장조취부오서효미곤이불행거사미구치관동지구경골난적지봉경지수장피인동지패산참통오열언

之哽塞然等之志願死而後已不以一敗而沮喪更謀勦捕於萬一而所可悶者惟兵孤勢弱無上之人助之耳頃者金生澈歷詣城門獲拜鈴廂頗承

지경색연등지지원사이후이불이일패이저상갱모초포어만일이소가민자유병고세약무상지인조지이경자김생철력예성문획배령상파승

款接之寵因蒙箭竹之惠以此知閤下尙義之至也一軍欽服常切歎想卽問閤下特除左道監司此乃生等得助之秋吾一陣聲勢必自此大振矣不

관접지총인몽전죽지혜이차지합하상의지지야일군흠복상절탄상즉문합하특제좌도감사차내생등득조지추오일진성세필자차대진의불

勝抃慶之至今者領兵來陣龍宮與縣監約束日赴敵場方措討捕而閫帥之關諸將之使無日不至督推元軍軍情撓奪劫於威令陰爲逃去者亦頗

승변경지지금자령병래진용궁여현감약속일부적장방조토포이곤수지관제장지사무일부지독추원군군정요탈겁어위령음위도거자역파

有之聲勢日縮禦敵無計日夜憂悶未遑寢食閤下聞之必思所以處之矣嗚呼閤下一路之主也兵相以下之官皆聽命於閤下閤下苟能移關閫營

유지성세일축어적무계일야우민미황침식합하문지필사소이처지의오호합하일로지주야병상이하지관개청명어합하합하구능이관곤영

傳令列邑使之勿推振鄙陣則區區志願庶因閤下而得遂大槪兵相之必欲推之者只是公耳國耳固非爲私計也而等之不欲送之者亦只是公

전령열읍사지물추진비진칙구구지원서인합하이득수대개병상지필욕추지자지시공이국이고비위사계야이등지불욕송지자역지시공

耳國耳豈有絲毫移意於其間哉然則彼之欲推此之不送何莫非出於公忠之心而彼則手握一道軍雖非此數箇殘卒固無妨礙於效忠而等則只

이국이개유사호이의어기간재연칙피지욕추차지불송하막비출어공충지심이피칙수악일도군수비차수개잔졸고무방애어효충이등칙지

將數百之旅惟時同死之約苟非此軍無以成殉國之志彼雖效已之忠成已之功而使人不得遂其志性其事亦豈非君子之失德乎古之人以成人

장수백지려유시동사지약구비차군무이성순국지지피수효이지충성이지공이사인부득수기지성기사역개비군자지실덕호고지인이성인

之美爲稱美者良以此也日前牒呈回答之辭曰元軍勿推將移文于兵使云今必業已通開而其推之也不止惟其兵相如是故列邑諸將皆不以義

지미위칭미자량이차야일전첩정회답지사왈원군물추장이문우병사운금필업이통개이기추지야부지유기병상여시고열읍제장개불이의

擧爲重至於慢侮之甚敢瀆至再不知煩妄伏願閤下特許微忱更通關文45)如何如何且元軍被督如蒙合下之一許則無復患也而尤有所切悶

거위중지어만모지심감독지재부지번망복원합하특허미침갱통관문45)여하여하차원군피독여몽합하지일허칙무부환야이우유소절민

焉惟其粮餉而已越自擧事之初各傾家儲斂以升斗艱繼餽餉而今則爲日已久寒産告罄百爾所思未得良策令同志中諸生歷遍閭里曉諭民庶

언유기량향이이월자거사지초각경가저렴이승두간계궤향이금칙위일이구한산고경백이소사미득량책령동지중제생력편려이효유민서

以爲囊橐之收庶資朝夕之餉而三農失業計亦難成才山春陽等縣耗穀及醴泉私債所收米斛伏願題許千萬仰祝伏惟照察

이위낭탁지수서자조석지향이삼농실업계역난성재산춘양등현모곡급예천사채소수미곡복원제허천만앙축복유조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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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감사(左監司: 학봉 김성일) 상서(上書)

 

무릇 하위(下位)에 있으면서 큰일을 도모하려는 자는 반드시 윗사람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세()가 무거워지고 일이 바르게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비록 그 뜻이 있더라도 어찌 편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임금의 수레[鑾輿]가 도성을 떠나 먼 곳으로 피난함[播越]에 매우 한탄하며 슬퍼하고,생령(生靈)들이 어육(魚肉)이 되는 분한 마음에 고민하다가 동지(同志)들을 규합(糾合)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散亡]사람들을 널리 불러 모아[召募]서 정자(正字:문관이나 승문원의 종9품직)인 류종개(柳宗介)공을 대장으로 삼아 대략 군중(軍中)의 대오[部伍]를 이루어 거의 효과는 미약해도 정성껏 거사(擧事)를 준비했는데 불행하게도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관동(關東)의 왜구(倭寇)인 날래고 어려운 적()의 예봉(銳鋒)을 만나 필경에는 수장(首將)이 칼에 맞아 죽고 동지(同志)들은 패하여 뿔뿔이 흩어짐[敗散]에 이르러 참혹한 아픔에 오열(嗚咽)하며 말을 하니 목이 막힙니다.그러나 저희들은 죽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후에는 일패(一敗)에 낙심[沮喪]하지 않고 다시 만에 하나라도 토벌하고 포박하[勦捕]려고 하는데 가히 고민스러운 바는 오직 병사가 고립되고 약세(弱勢)인데다 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요즘에 김생(金生)이 차례차례 맑게 보다가 성문(城門)에 나아가서 영상(鈴廂)을 배알할 기회를 얻어 자못 매우 친절하게 대접받는[款接]사랑을 입고,전죽(箭竹)을 받는 시혜(施惠)를 입어서 이것으로 합하(閤下)께서 의()를 숭상함이 지극함을 알아 일군(一軍)이 공경하고 복종하며[欽服] 항상 간절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최근에 합하(閤下)께서 특별히 경상좌도(慶尙左道)의 감사(監司)로 제수(除授)되었다고 들어서 이로써 저희들은 때의 도움을 얻어 우리 일진(一陣)의 성세(聲勢:명성과 위세)는 반드시 이로부터 크게 진작될 것입니다. 손뼉 치며 경하함을 이기지 못할 지경입니다. 최근에 거느리시는 병사[領兵]들이 용궁(龍宮)에 와서 진()을 치면서 현감(縣監)과 약속한 날 적()이 있는 곳으로 가서 토포(討捕)하려고 막 조처하여 관()의 병사(兵使:閫帥)가 제장(諸將)들에게 시킨 지 며칠이 안 되어 원군(元君)의 독촉하여 밀어줌[督推]이 이르지 않아서 군()의 사정이 어지럽고 위엄 있는 명령[威令]으로 겁에 빠져 몰래 도망하는 자들 또한 자못 성세(聲勢)가 있었지만 날로 적의 침략을 막느라[禦敵]위축되어 계책 없이 밤낮 근심하고 번민[憂悶]하느라 침식(寢食)의 겨를이 없[未遑]아오니 합하(閤下)께서 들으시면 반드시 생각하시는 바를 조처해 주십시오.아아! 합하(閤下)께서는 일로(一路)의 주인이십니다.병상(兵相)이하의 관리들이 모두 합하(閤下)의 명()을 듣고 합하(閤下)는 진실로 병영(兵營:閫營)이나 관문(關門)을 옮길 수 있으며 여러 고을[列邑]에 명령을 전하시는데 저희 진()에는 권하여 진작시켜 밀어주지 않도록 한 즉 변변치 못한 마음으로 거의 합하(閤下)로 인하여 지원(志願)하여 드디어 얻었었습니다.대개 병상(兵相)이 반드시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 단지 이것이 공()뿐이며 나라[]뿐입니까? 참으로 혼자만의 생각이나 계획이 아니라 저희들의 보내지 않으려는 것 역시 단지 이 공()뿐이며 나라일 뿐입니까? 어찌 뜻을 옮김에 있어서 추호[絲毫]라도 그 사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즉 그들의 밀어주기 바라는 이것을 보내주지 않음은 어째서 입니까? 아닌 게 아니라 공()의 충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일도(一道)의 군()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그들인 즉 비록 이 몇 개의 잔졸(殘卒)뿐만이 아니라 참으로 방해와 장애가 없어야 저희들이 충성을 다할[效忠]수 있는 즉 단지 장차 오직 한 시에 같이 죽기로 약속하며 진실로 이 정규 군()이 아니라 이룸은 없어도 순국(殉國)하려는 뜻을 가진 수 백 개의 군여단(軍旅團)이 될 것입니다.저들이 비록 이미 충성을 다하여 충()을 이룬 공()이 있어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 뜻을 이루어 얻지 못하고 그 일을 이루었다면 또한 어찌 군자의 실덕(失德)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좋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일전(日前)에 서면으로 보고[牒呈]드린 회답 말씀에 원군(元軍)은 밀어줄 수 없으니 장차 회람하는 글[移文]은 병사(兵使)에게 하라고 했는데, 지금 반드시 사업이 이미 열어서 통해서 그 밀어줌을 그치지 않았는데,오직 그 병상(兵相)이 이와 같은 고로 여러 고을의 제장(諸將)들이 모두 의거(義擧)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만만히 보아 업신여김[慢侮]이 심함에 이르러 감히 깔봄에 이르러 다시 번거롭고 망령됨을 알지 못하겠습니다.합하(閤下)께 삼가 원하오니 저의 성의[微沈]를 특별히 허락하셔서 다시 관문(關文:하급 관청에 보내는 공문)을 통해 보냄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또 원군(元軍)의 통솔함을 입을 수 있도록 합하(閤下)께서 한번만 허락해 주신다면 근심이 다시는 없을 뿐더러 더욱 고민을 끊는 바가 될 것입니다.오로지 그 군량[糧餉]은 이미 거사(擧事)초부터 이미 (한계를)넘어서 각 가산을 탕진한[傾家]집은 거두어 저축해 둔[儲斂]집에서 되나 말로 어렵게 음식 보내기[餽餉]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인 즉 그런지가 이미 날이 오래됐습니다.가난을 낳아 백물이 다하여 없어져[告罄]버린 바 양책(良策)을 얻지 못한 생각에 지금 동지(同志)들 중에 여러 생도들은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쳐 일러주면서[曉諭] 겨우 자루[囊橐]로 거두어 겨우 조석의 군량[] 물자로 쓰지만 삼농(三農:春耕 夏耘 秋收)을 실업(失業)했으니 계획 또한 이루기 어렵습니다.재산(才山),춘양(春陽)등의 현()은 곡식이 다 소모됐고,예천(醴泉)은 사채(私債)를 주고 미곡(米斛)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삼가 원하오니 이 문제를 허락해 주시면 천만(千萬)번 우러러 축하할 것입니다.삼가 바라옵건대 똑똑히 꿰뚫어 통찰[照察]해 주시기 바랍니다.

 

上巡察46)

 

閤下心存慈恤政尙撫愛凡節制號令於一方者無非字惠之仁嶺之南孑遺殘黎賴閤下殆其蘇矣今者百萬天師朝暮踰嶺供億諸具若不以民難

합하심존자휼정상무애범절제호령어일방자무비자혜지인령지남혈유잔여뢰합하태기소의금자백만천사조모유령공억제구약불이민난

以措置軍糧馬料鹽醬猪羔最所關緊而其他帳幕狀褥凡百器用亦當不廢則紓玆民力之念雖軫於閤下之慈祥無飢我師之忱寧鮮於閤下之忠

이조치군량마료염장저고최소관긴이기타장막장욕범백기용역당부폐칙서자민력지념수진어합하지자상무기아사지침녕선어합하지충

蓋較縣邑之小大酌民物之多寡委鉅府而獨辦竝殘縣而協措科定差員47)督令預備閤下之憂勤極矣閤下之布置至矣竭力奉上是吾民之職

개교현읍지소대작민물지다과위거부이독판병잔현이협조과정차원47)독령예비합하지우근극의합하지포치지의갈력봉상시오민지직

分而簞食往迎實吾民之願欲盡瘁承事死當已也而生等爲一縣諸目監官料量一縣支供之物商度一縣負載之力協倍七八力僅支一殫財罄産

분이단식왕영실오민지원욕진췌승사사당이야이생등위일현제목감관료량일현지공지물상도일현부재지력협배칠팔력근지일탄재경산

雖或辦出人殘馬乏末由輸運以是較計事甚疎遠不於此時深思而善措焉則師臨當日上下顚倒將不成模樣於萬一矣嗚呼僻玆小縣境接江原

수혹판출인잔마핍말유수운이시교계사심소원불어차시심사이선조언칙사임당일상하전도장불성모양어만일의오호벽자소현경접강원

山村斗幕太半流寓若干殘戶盈縮靡常太平前昔尙未堪役而昨年兵禍雖云獲免春陽之賊犯于東境禮安之寇入于南界東南被賊餘地無幾民

산촌두막태반류우약간잔호영축미상태평전석상미감역이작년병화수운획면춘양지적범우동경예안지구입우남계동남피적여지무기민

皆驚遁手釋耒之業田盡草萊家無升斗之儲自冬初以迄于今散而之四方者幾許餓而顚溝壑者幾許一遺於八口之家九空於十室之居方境

개경둔수석뢰지업전진초래가무승두지저자동초이흘우금산이지사방자기허아이전구학자기허일유어팔구지가구공어십실지거방경

內現居品官庶孼公良私賤大小人民誠不得此竝於安東之一任縣耳況其所畜牛隻馬匹或以刷馬或以車牛專數抄入以爲公用若其田賦戶役

내현거품관서얼공량사천대소인민성부득차병어안동지일임현이황기소축우척마필혹이쇄마혹이거우전수초입이위공용약기전부호역

苟不頭戴背負無以輸萬分之一而其可戴之女可負之男亦若是其不庶則多至七八千之卜駄將何而勝運且鳥竹路異賊陣非一唐師作路未知

구불두대배부무이수만분지일이기가대지녀가부지남역약시기불서칙다지칠팔천지복태장하이승운차조죽로이적진비일당사작로미지

何指而支待之所亦未知何地爲的也然而閤下之令姑以竹峴爲期竹峴去本縣十有餘息飢痎道路再渡大江則五六日方至竹峴一月之內往來

하지이지대지소역미지하지위적야연이합하지령고이죽현위기죽현거본현십유여식기해도로재도대강칙오육일방지죽현일월지내왕래

纔三雖前期一月從便豫運亦或有難及之勢而其地乃賊路也上下之賊尙未乏絶預爲輸置恐齎盜粮必臨時轉運運輒捧供然後可也則許多卜

재삼수전기일월종편예운역혹유난급지세이기지내적로야상하지적상미핍절예위수치공재도량필임시전운운첩봉공연후가야칙허다복

物輸盡何計掌司之人雖伏重罪至於身首異處亦將無如之何矣噫以吾縣之民力輸這許之卜物雖曰挾泰山超北海之類誠非過語閤下其寧知

물수진하계장사지인수복중죄지어신수이처역장무여지하의희이오현지민력수저허지복물수왈협태산초북해지류성비과어합하기녕지

之苟或知之必思所以善處矣敝縣磨鍊卜駄大抵七千餘駄而米太爲八百二十四駄假家帳幕釜鼎雜物如無觸減之便必皆取辦於敝縣則惟玆

지구혹지지필사소이선처의폐현마련복태대저칠천여태이미태위팔백이십사태가가장막부정잡물여무촉감지편필개취판어폐현칙유자

米太之數姑減其半及王師旋歸之日運其餘以用之豈不幸甚雜物旣不可觸減米太又不可半運則才山春陽奈城等地皆隣於敝縣右三縣之中

미태지수고감기반급왕사선귀지일운기여이용지개불행심잡물기불가촉감미태우불가반운칙재산춘양내성등지개린어폐현우삼현지중

權撮一縣之人民以補敝縣凡厥賦役俾聽敝縣之今爲之如何如何虞之深籌得兩計而迂愚妄料必不中理元田結及支待卜駄竝昭數錄呈如

권촬일현지인민이보폐현범궐부역비청폐현지금위지여하여하우지심주득량계이우우망료필불중리원전결급지대복태병소수록정여

右惟願閤下特垂詳採深察民情慮其遠而得其良以指揮焉瀆冒嚴威無任戰兢之至

우유원합하특수상채심찰민정려기원이득기량이지휘언독모엄위무임전긍지지

 

순찰사에게 올린 글[上巡察書]

 

합하(閤下)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애휼[慈恤]하는 마음을 가져서 정치를 함에 있어서도 항상 어루만져 사랑하며[撫愛] 범사에 호령(號令)을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모두 절제(節制)하여 어진 혜택을 주셔서 영남(嶺南)의 단 하나 남은[孑遺]살아남은 백성들은 합하(閤下)를 의지해서 그 소생에 가까워졌습니다.요즘 백만 명의 중국군[天師]이 곧[朝暮] 고개[]를 넘어 온다고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여 안심시키려면[供億]여러 가지 도구,가령 백성들 곤란하지 않게 군량(軍糧), 말 먹이[馬料], 소금, (), 돼지, 염소 등 관()에 소요되는 가장 긴요한 것들을 조치(措置)해야 하며, 또 기타의 장막(帳幕)이나 침상[牀褥],범백(凡百)의 기물(器物)들 역시 버릴 수 없는 즉 이를 느슨하게 백성들의 힘으로 풀 생각이시라면 비록 합하(閤下)의 자상(慈祥)한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에 우리 군대의 정성으로 굶주림이 없도록 차라리 합하(閤下)의 충성이 선명해 졌고 아마 현읍(縣邑)의 대소(大小)를 비교하여 백성들 재물[民物]의 다과(多寡)를 참작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부()에 위임하여 잔약한 현()에 독자적으로 판납(辦納)하여 따르도록 조치하여 메기도록 차사원(差使員47)을 정하여 미리 준비한 명령을 독려하니 합하(閤下)의 근심 걱정이 극심하시겠습니다.합하(閤下)의 배치[布置]함은 지당합니다.힘을 다해[竭力]위를 받드는 이것이 우리 백성들의 직분(職分)으로 도시락 밥[簞食]으로 가서 맞이하는 것이 실로 우리 백성들의 바람이자 일을 도와[承事] 몸이 여위도록 힘을 다해 애쓰다가[盡瘁] 죽고 싶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저희들 한 현()에서 해야 할 여러 목록은 곡식 출납하는 감관(監官)의 계량[料量]으로 한 현()에서 음식을 보태주는[支供]물자를 헤아려 생각하니[商度]한 현()에서 부담하여 지우는 힘은 사물의 7~8배의 힘이 들어 겨우 지탱해 나가는 하나의 재물도 생산이 몽땅 비워서 다 없어져서 비록 혹 변통하여 갖추어 낸다[辦出]고 해도 사람은 잔약하고 말도 모자라고 끝으로 물건을 운반하는[輸運]데 있어서도 이것을 견주어 생각하는 일이 매우 탐탁지 않아 멀리함이 아니라 이 때에 깊이 생각하여 좋은 조치를 해야 하는 즉 군대가 임박한 당일에 상하가 전도(顚倒)되어 장차 만일에 모양(模樣)을 이루지 못할까 그럽니다.아아! 벽지인 이 작은 현()은 강원도 산촌(山村)과 접경(接境)에 있는 오두막으로 태반이 유랑 끝에 타향에서 살고[流寓]있는데, 약간의 잔호(殘戶)가 차고 주는[盈縮]것이 옛날 전에 태평했을 적에도 항상 쓰러져서 오히려 노역을 감당하지 못하는데다가 작년의 병화(兵禍)로 비록 죽음은 면했다고 하지만 춘양(春陽)의 왜적()이 동쪽 경계를 침범()하여 예안(禮安)으로 간 왜구()가 남쪽으로 들어가서 동남쪽이 왜적()에게 화를 입었고, 나머지 땅도 거의 백성이 없는데, 모두 놀라서 숨어 손에서 쟁기질 하는 업()을 놓아 밭은 모조리 묵어서 잡초이고 집은 한 말, 한 되의 저축도 없이 겨울 초부터 마침내 지금까지 사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거의 굶주림으로 계곡[溝壑]에 넘어지고, 거의 한 집 8명에 하나만 남고, 10집이 살던 중에 9집이 비었으니 바야흐로 경내(境內)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품계를 가진 벼슬아치[品官], 서자(庶子)나 얼자(孼子),공인(公人),양민(良民), 사가(私家)의 노비나 대소(大小)의 인민들은 참으로 이를 얻지 못하여 안동에 일임(一任)한 현()일 뿐입니다.하물며 그 키우는 소 한 마리나 마필(馬匹)들은 혹 지방에 배치하는 관용 말[刷馬]이나 혹은 소달구지로 오로지 숫자가 기록에 들어가[抄入] 공용(公用)으로 하여 만약 그 토지에 부과하는 조세[田賦]나 집집마다 부과되는 부역[戶役]은 참으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지 않으면 만분의 일이라도 운반할 수 없어서 그 머리에 일수 있는 여자나 등짐 질 수 있는 남자 역시 이와 같이 많지 않은 즉 많게는 7~8천의 마소 짐바리[卜駄]를 장차 어떻게 운반할 수 있으며,또 조령과 죽령의 길은 다른 적진(敵陣)이라서 하나의 중국 군대가 길을 만들지 않으면 어디를 지향하는지 알 수 없으며 원정 나온 군대의 먹을 것과 쓸 것을 이바지 하는[支待]곳이 어디가 적합한지를 알 수 없으므로 합하(閤下)의 명령은 잠시 죽령[竹峴]을 기약하여야 합니다.죽령[竹峴]으로 가자면 본현(本縣)에서는 10여 번을 쉬면되는 이틀거리에 모자라는 도로이며 큰 강을 건넌 즉 5~6일이면 죽령과 마주하는 곳으로 한 달 내에 거의 3번을 왕래(往來)할 수 있어서 비록 전기(前期)의 한 달을 일을 편한 데로 쫓아서[從便] 예비 운반해 보면 역시 또한 어려움이 있거나 사세가 그 곳이 적로(賊路)라면 상하의 적()이 오히려 부족하여 끊어져 버리도록 미리 수송하여 둔다면 군량을 도둑에 준다는 것이 두려우므로 반드시 임시적으로 운반해 옮겨서 운반에 오로지 받들어 공궤한 연후에야 가능한 즉 허다한 짐 보따리를 다 수송하는데 어떻게 장금사(掌禁司:刑獄)의 사람들을 생각하십니까? 비록 중죄(重罪)로 엎드려 있다가 목이 달아날 처지에 있는데 또한 장차 없어지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아! 우리 현()의 민력(民力)으로 허다한 짐 보따리를 수송하게 되는데 비록 말하기를 태산(泰山)을 끼고 북해(北海)를 뛰어 넘는 부류라 하더라도 참으로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합하(閤下)께서 그 것을 어찌 아시겠으며 참으로 혹 아신다고 해도 반드시 이 점을 생각하셔서 선처(善處)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저희 현()은 힘써서 배우고 닦은[磨鍊]짐바리가 대저 7천여 짐이고 쌀과 콩이 824바리가 되며 가설(假設)집인 장막(帳幕),[釜鼎],잡물(雜物)들은 덜어낼 수 없는 형편이라면 반드시 모두 저희 현()에서 꾸거나 빌려서 준비해야 하는 즉 이 쌀과 콩의 숫자는 잠시 그 반으로 줄였다가 임금이 거느리는 군대[王師]가 돌아가는 날 그 나머지를 운반해서 사용한다면 어찌 심히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잡물(雜物)들은 이미 줄일 수 없는 것이고 쌀과 콩도 줄일 수 없다면 반만 운반하는 것이 불가하므로 재산(才山),춘양(春陽),내성(奈城)등지는 모두 저희 현()의 인근이니 위의 3() 중에서 한 현()의 인민(人民)을 직권으로 찍어서 저희 현()을 돕도록 하여 모든 부역(賦役)을 빠지게 하여 저희 현()의 명령을 듣도록 함이 어떻겠습니까고민하고 염려하다가 깊이 헤아려서 두 계책을 얻었으니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은[迂愚] 망령된 생각으로 반드시 이치에 적중하지 않더라도 원래의 논밭의 조세[田結]및 짐바리[卜駄]는 이바지[支待]할 것입니다.아울러 위와 같은 몇 가지를 밝혀 기록하여 올리오니 삼가 합하(閤下)께서 특별히 구부려서 민정(民情)을 깊이 살피셔서 하급 기관에서 상급 기관에 올리는 상신문[詳文]을 채택해서 생각이 그보다 원대하고 얻음이 그보다 좋도록 지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엄한 위엄에 모독(冒瀆)했을까봐 맡은 바 없이 전전긍긍함에 이르렀습니다.

 

呈主倅韓必久文時朝廷以儒生定將習射砲逐日畫紙故有是文

정주쉬한필구문시조정이유생정장습사포축일화지고유시문

 

今此擇儒定將使諸生習射習砲每朔畫紙上送事實出於朝家籌畫之得良而竊有所仰質者焉夫射者六藝48)之一也爲士者所當習而爲藝故

금차택유정장사제생습사습포매삭화지상송사실출어조가주화지득량이절유소앙질자언부사자육예48)지일야위사자소당습이위예고

三代之制必有鄕射之禮而如有拙於發矢者只辭以有疾不敢曰不能者乃是禮記之訓則男子之操弓似若不可廢者而朱夫子之說曰授弓鳴琴

삼대지제필유향사지례이여유졸어발시자지사이유질불감왈불능자내시예기지훈칙남자지조궁사약불가폐자이주부자지설왈수궁명금

固學者一事而有妨於篤志力學不必兮力於此等事可也及其爲武學博士也猶且日講論語使知忠孝未聞有試射試砲之規豈不以知忠知孝爲

고학자일사이유방어독지력학불필혜력어차등사가야급기위무학박사야유차일강론어사지충효미문유시사시포지규개불이지충지효위

大而弓矢則特其末藝也耶今之士子其於篤志力學槪不多見則雖使之致力射砲驅入於戰陣固無不可而以國家敎育多士之義言之則姑舍汝

대이궁시칙특기말예야야금지사자기어독지력학개불다견칙수사지치력사포구입어전진고무불가이이국가교육다사지의언지칙고사여

所學而專務矢石至於定將屬諸閫帥逐朔劃紙有若今之武學生訓鍊無乃有違於祖宗朝菁莪育成之美意耶況所謂放砲六藝之所不該三代之

소학이전무시석지어정장속제곤수축삭획지유약금지무학생훈련무내유위어조종조청아육성지미의야황소위방포육예지소불해삼대지

所未有者乎本縣儒生元額49)最少年老才襄者當癸甲年隨力奮義出粟米補軍糧意外得蒙資級之頒每被侵困常以爲悔恨而若干新進後生

소미유자호본현유생원액49)최소년노재양자당계갑년수력분의출속미보군량의외득몽자급지반매피침곤상이위회한이약간신진후생

或爲父兄所或有自能發憤皆以讀書爲業其志雖不過專在於大小科擧不可謂篤志力學之士而彼其從事擧業者亦不專心致志則雖必其有

혹위부형소혹유자능발분개이독서위업기지수불과전재어대소과거불가위독지력학지사이피기종사거업자역불전심치지칙수필기유

成而抑或孜孜讀書得其趣味則又豈可遽謂力學之必無也哉方其文會學宮絃誦不輟之際責之而射手砲手日月以試無異於遇以武卒則雖或

성이억혹자자독서득기취미칙우개가거위력학지필무야재방기문회학궁현송부철지제책지이사수포수일월이시무이어우이무졸칙수혹

見效於戰陣其忠孝之道親君事長之義又將責諸何等人耶壬辰倭亂及上年賊适之變處處擧義爭死於國者無非章甫之徒豈嘗定將試射試砲

견효어전진기충효지도친군사장지의우장책제하등인야임진왜란급상년적괄지변처처거의쟁사어국자무비장보지도개상정장시사시포

而然耶實由於數百年誘掖多士薰陶成就無不知忠孝之道以遺君後親爲恥而已矣竊見禮記有曰執披論力出鄕則不得與士齒而國有寇敵則

이연야실유어수백년유액다사훈도성취무부지충효지도이유군후친위치이이의절견예기유왈집피론력출향칙부득여사치이국유구적칙

大司徒率其徒隸戎此固抑之於無事之日而用之於有事之時也聖人勉我後學之意其亦至矣近聞額外各邑儒士之見此行移擧皆聚首相

대사도솔기도예융차고억지어무사지일이용지어유사지시야성인면아후학지의기역지의근문액외각읍유사지견차행이거개취수상

欲痛哭者居多未久必有闔擧措而民等亦不無所聞於先賢所見於方策敢因下帖而先自仰籲焉伏願明府勿以小縣下士爲無所知識枚擧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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稟于方伯相公俾有啓達之擧如何如何

품우방백상공비유계달지거여하여하

 

한필구 원님께 드리는 글(呈主倅韓必久文)


이때 조정에서 유생(儒生)들에게 장차 활쏘기 연습과 포 쏘는 연습을 하도록 해서 날마다 종이에 그린다고 하므로 이 글이 있다.이번에 이처럼 선비를 골라서 장차 제생(諸生)들에게 활쏘기 연습과 포() 쏘는 연습을 매삭() 기록하여 위로 보는 일을 시키도록 한 것이 실로 조정[朝家]에서 이리 저리 타산한 끝에 좋은 계책이라고 생각해 낸 꾀[籌畫]라고 얻어서 나온 것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따라야 할 성질입니다.무릇 활쏘기[]6(六藝)의 하나로 선비[]가 되려면 마땅히 익혀야 하는 기예(技藝)3(三代)에는 반드시 향사(鄕射)의 예()라는 제도가 있어서 마치 서투른 솜씨로 발시(發矢)를 하면 다만 병이 있다고 말을 하지 감히 불능자(不能者)라고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예기(禮記)의 가르침인 즉 남자(男子)의 활 훈련은 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주자(朱子)도 말하길 활을 가르치고[授弓]거문고를 타는 것[鳴琴]은 진실로 학자(學者)의 큰일이지만 뜻을 돈독히 하는데[篤志]방해가 되거나 학문을 배우는데 힘쓰면서 이런 일의 등에 힘을 나누어도 괜찮지만 무학박사(武學博士)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오히려 또 매일 논어(論語)를 강론(講論)하면서 충효(忠孝)를 알도록 시키는데 그런 걸 듣지도 못한 채 활쏘기를 시험하거나 포 쏘기를 시도한다는 규정은 어찌 충()을 알고 효()를 아는 것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궁시(弓矢)인 즉 특히 그 말예(末藝)가 아닙니까? 요즘의 선비들은 충()을 돈독히 하고 학문에 힘쓰는 사람들을 거의 많이 볼 수 없는 즉 비록 힘을 다해 활을 쏘고 포를 쏘게 하여 적진(敵陣)에 뛰어 들어가도록 하기에는 참으로 되지 않음이 없으므로 국가에서 많은 선비들의 의()를 교육하여 말하는 즉 잠시 저 학문하는 바를 버리고 시석(矢石)에 오로지 힘써서 심지어 여러 수사(水使)나 병사(兵使)의 장수들에 소속시켜서 달마다[逐朔] 종이에 그리고 있어서 마치 지금의 무예(武藝)를 학생(學生)들에게 훈련(訓練)시키고 있어서 조종조(祖宗朝)의 많은 인재[菁莪]를 육성(育成)시키는 아름다운 뜻을 오히려 위반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하물며 소위 방포(放砲)6(六藝47)에 갖춰져 있지를 않은 바이고, 3(三代)에서도 있지 않는 바가 아닙니까? 본현(本縣)의 유생(儒生)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옮겨 가서 액내생(額內生48)에서도 가장 어린 자입니다. 갑년(甲年)을 헤아리는 사람은 당연히 힘에 맞게 의()에 분발하여 미속(米粟)을 군량(軍糧)으로 내 놓았는데, 의외로 자급(資級)을 나누어 주게 됨을 입어서 매번 침략을 당해 곤란하면 항상 회한(悔恨)이 되며,약간 신진(新進)후생(後生)들이 혹 부형(父兄)이 힘쓰는 바가 되거나 혹은 스스로 발분(發奮)할 수 있어서 모두 독서(讀書)를 업()으로 하고 있는데,그 뜻이 비록 오로지 대소(大小) 과거(科擧)에 있는데 불과하다면 가위 독지(篤志)역학(力學)의 선비가 아니며, 그가 그 과거 업()에 종사하는 자 역시 전심(專心)으로 마음이 이르지 않은 즉 반드시 그 이룸이 있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러나 혹 부지런히 독서에 힘쓰는 그 취미를 얻는다면 또 어찌 옳으며 어찌 역학(力學)함이 반드시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야흐로 그 학교[學宮]의 문회(文會)에서 현송(絃誦)함이 그치지 않을 때 사수(射手),포수(砲手)의 책임을 맡아 일월(日月)로 시험하면 무졸(武卒)과 맞먹음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비록 전진(戰陣)에서는 혹 효과를 보이겠지만 그 충효(忠孝)의 도()와 친군(親君) 사장(事長)하는 의()는 또한 장차 어떤 사람들에게서 바랄 수 있겠습니까? 임진왜란(壬辰倭亂) 및 지난 해 이괄(李适)의 적변(賊變) 때 곳곳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나 나라를 위해 서로 다투어 죽기를 한 사람들에는 모두 유생[章甫]의 무리들이었었는데 어찌 일찍 정하여 활쏘기 시험과 포 쏘기 시험을 하려고 하십니까? 실은 수 백 년에 걸쳐서 많은 선비들을 훈도(薰陶)하여 성취시키도록 인도하여 도우는 데[誘掖]에는 충효(忠孝)의 도()를 알게 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여 임금을 버려두고 어버이를 뒷전으로 하는 것[遺君後親]을 부끄럽게 여길 뿐이었습니다.예기(禮記)에 있는 말을 가만히 보니 논리를 열어 잡는데 힘쓰다가 고향을 떠나서는 학사(學士)를 얻지 못하며,적어 놓기를 나라에 구적(寇賊)이 있으면 대사도(大司徒)가 그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싸운다고 했으니 이는 참으로 무사(無事)한 때에는 억제를 하고 유사시(有事時)에는 썼던 것입니다.성인(聖人)께서 내게 권하신바 후학(後學)들의 뜻이 그 역시 지극합니다.요즘에 들으니 액외생(額外生)인 각 읍()의 유생[儒士]들의 견해는 이 움직여 들여 올려[移擧] 행함 모두 수상(首相)이 모은다니 참으로 통곡하며 조상(弔喪)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서 머지않아 반드시 행동거지[擧措]를 규합()함이 있을 것이며, 저희들 역시 선현(先賢)에게서 들은 바가 없지 않은 바 방책(方策)에서 보이는 바로 감히 원님이 첩문을 내림[下帖]에 먼저 우러러 부르짖게 됐습니다. 엎드려 현감[明府]께 바라오니 작은 현()의 지식 없는바 초야의 선비[下士]라 하지 마시고 낱낱이 들어서 말하는[枚擧]것을 방백(方伯:감사)께 보고하고 품신하여 상공(相公)이 쫓아서 임금께 계달(啓達)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與義兵大將任屹書(여의병대장임흘서)

 

某拜竊念掌書之任非但操毫弄墨記姓名修簿籍而已列於參謀之亞坐乎大將之前謀議之有得有失聞而卞難焉節制之或當或否隨而糾檢焉

모배절념장서지임비단조호농묵기성명수부적이이열어참모지아좌호대장지전모의지유득유실문이변난언절제지혹당혹부수이규검언

使一陣凡百擧措無或謬誤之差而終不失萬全之良者亦其責也則其所負荷不其重乎生輕底人也妄了人也初因謬擧猥忝是任于今經歲尙未

사일진범백거조무혹류오지차이종부실만전지량자역기책야칙기소부하불기중호생경저인야망료인야초인류거외첨시임우금경세상미

退成曁不成參謀之謨謀幾何良或不良吾將之制令幾何而生無所卞難而糾檢焉只有輕妄之論或致同志之譴是可謂盡其責乎是可以居其

성기불성참모지모모기하량혹불량오장지제령기하이생무소변난이규검언지유경망지론혹치동지지견시가위진기책호시가이거기

任乎願速論罰移付他任千萬仰望將若不許微懇仍舊無改則生何敢終爲嘿嘿不卽卞難而糾檢徒區區於刀筆之事而已乎夫待人必以實接下

임호원속론벌이부타임천만앙망장약불허미간잉구무개칙생하감종위묵묵불즉변난이규검도구구어도필지사이이호부대인필이실접하

須用恕待人不以實則人之待我必有形接下不用恕則下之承上必有碍人我有形上下有碍則群居而孤竝立而獨其將誰與之爲將亦何事之成

수용서대인불이실칙인지대아필유형접하불용서칙하지승상필유애인아유형상하유애칙군거이고병입이독기장수여지위장역하사지성

今讒譖副將之說多入於吾將之耳而吾將旣皆信之遂有疑訝當起廬莅戎之日遂發因讒之怒目以他過欲杖其奴吾將之信讒極矣吾將之持律

금참참부장지설다입어오장지이이오장기개신지수유의아당기여리융지일수발인참지노목이타과욕장기노오장지신참극의오장지지율

嚴矣然而陳情一達將惑旋解赦厥奴而罔治溫其語而協謀此則雖非於信讒之昨而卒是於解惑之今雖謬於欲杖之初而乃良於肆赦之後執事

엄의연이진정일달장혹선해사궐노이망치온기어이협모차칙수비어신참지작이졸시어해혹지금수류어욕장지초이내양어사사지후집사

幸甚軍卒幸甚爲副將處其身亦當渙然釋然無有芥蔕不思纖毫之忿益勤措捕之事而托於傷冷久不視軍及我執事進而强之則曰大將之於我

행심군졸행심위부장처기신역당환연석연무유개체불사섬호지분익근조포지사이탁어상냉구불시군급아집사진이강지칙왈대장지어아

無些少阻碍執事之於我無毫絲抵梧而第以不德冒居將位自謂無汚穢之事而人已加汚穢之名至於惑大將之明而間素交之密諸執事必摘其

무사소조애집사지어아무호사저오이제이부덕모거장위자위무오예지사이인이가오예지명지어혹대장지명이간소교지밀제집사필적기

人卞其說我果然也則明正我罪我不然也則明正彼罪然後我可以協心於同志我可以終始乎視陣願毋迫我惟其察焉此則事嫌於相角而情的

인변기설아과연야칙명정아죄아부연야칙명정피죄연후아가이협심어동지아가이종시호시진원무박아유기찰언차칙사혐어상각이정적

於自處執事遂嘿嘿而退齊坐而議之約於吾將還陣之後拜首於庭道達其情實必聞某人爲某說某人爲某說然後退而讞其罪若出於浮浪底輔

어자처집사수묵묵이퇴제좌이의지약어오장환진지후배수어정도달기정실필문모인위모설모인위모설연후퇴이언기죄약출어부랑저보

頰則不須重論而果將反側之心故成謀毁之計則今日毁副將明日毁執事又明日將毁大將此而不治其禍漸大上告大將下諭諸僚鳴鼓而攻之

협칙부수중론이과장반측지심고성모훼지계칙금일훼부장명일훼집사우명일장훼대장차이불치기화점대상고대장하유제료명고이공지

使其迹不復接於吾陣而於是乎勉副將出陣更與協心同力以期成大事豈不善哉僉議旣諧陣約已成而言語瀆告恐貽煩漫之失敢回筆舌悉其

사기적불복접어오진이어시호면부장출진갱여협심동력이기성대사개불선재첨의기해진약이성이언어독고공이번만지실감회필설실기

首末而陳之伏願吾將公其心正其語以摘發焉如以訑訑之色終拒切切之諍而只曰我已解感而彼猶懷忿彼亦妄人也已而不爲虛心傾膽吐露

수말이진지복원오장공기심정기어이적발언여이이이지색종거절절지쟁이지왈아이해감이피유회분피역망인야이이불위허심경담토로

肝膈旣不以實又不用恕則將爲何卒之將以成何許之事耶讒譖之人不過一卒而愛一卒使一陣失一將豈可使聞於他陣哉況吾將已信副將之

간격기불이실우불용서칙장위하졸지장이성하허지사야참참지인불과일졸이애일졸사일진실일장개가사문어타진재황오장이신부장지

受毁於求全灼知其言之搆造於詭誕則旣爲憎玆之士寧有克愛之心於其人苟或有愛於副將亦尙有疑然則副將其不欲釋盡其疑乎更乞吾將

수훼어구전작지기언지구조어궤탄칙기위증자지사녕유극애지심어기인구혹유애어부장역상유의연칙부장기불욕석진기의호갱걸오장

毋或有疑毋或有愛嗚呼賊尙熾勢謀討爲急以言辨詰甚非關緊而大將副將不可廢一將必協心事可效成則先正讒譖之罪以和兩將之心夫豈

무혹유의무혹유애오호적상치세모토위급이언변힐심비관긴이대장부장부가폐일장필협심사가효성칙선정참참지죄이화양장지심부개

非陣中之大事乎不諱淺見辭極僭妄實自主臣而已伏惟照亮

비진중지대사호불휘천견사극참망실자주신이이복유조량

 

의병대장(義兵大將) 임흘(任屹)에게 준 글

 

(:구전선생)는 절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장서(掌書)라는 임무로 비단 붓을 잡고 먹을 희롱하며 명부를 닦아 이름을 문서에 적을 뿐 늘어선 참모(參謀)의 다음 자리에 앉아 있지 않습니까? 대장(大將)께서 전에 모의해서 얻은 바도 있었으나 잃음도 있어서 들으니 분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절제(節制)도 혹 합당하다고도 하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도 해서 따라서 합쳐서 검토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 진()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행동거지[擧措]가 혹 오류(誤謬)의 차이가 없이 끝내 만전(萬全)을 잃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고 또한 그럴 책임이 있습니다.그런 즉 그 부하(負荷)하는 바가 중()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가벼운 아래 사람입니다.총명이 헛된 사람입니다.첫 번에 외람되게 잘못 등용되어[謬擧]덧붙어서 이 임무에 지금까지 세월을 경과하면서 오히려 물러나 떠나지 못하여 함께 참모들의 계책[謨謀]을 이뤄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되며,좋다고 혹은 불량하다고 우리 장수의 제도와 명령[制令]을 한 것이 얼마인지 저는 어려움을 분별하는 바가 없어 모아서 검토했습니다.단지 경망(輕妄)한 논쟁이 있으면 혹은 동지(同志)들의 꾸지람에 이르렀으니 이는 가위 그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 옳은 게 아닐까요? 속히 벌()을 논하여 다른 임무로 옮겨 주시기를 천만(千萬)번 앙망(仰望)합니다.만약 진심으로 징계함을 불허(不許)하시면 옛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즉 제가 어찌 감히 끝끝내 묵묵히 있을 수는 없는 즉 어려움을 분별하여 모아서 검토하는 부류라서 구구하게 문서[刀筆]의 일 뿐이겠습니까? 무릇 사람을 대접함[待人]에는 반드시 진실해야하고 아랫사람을 대접함에는 반드시 용서[]함을 사용해야 하는데, 사람을 대접함에 진실이 없는 즉 남이 나를 대함도 반드시 형식적으로 대할 것이고, 아랫사람을 대접함에 용서를 쓰지 않은 즉 아래에서 위를 받드는데 반드시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남이 나를 형식적으로 대하고 상하(上下)에 장애가 있은 즉 모여 살면서[群居] 고립(孤立)되고 또 외톨이가 되어 장차 누구와 더불어 하며 또 장차 무슨 일을 성취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참소하여 헐뜯는[讒譖]부장(副將)의 얘기는 우리 장수[吾將]의 귀에 많이 들어와서 우리 장수도 의심스럽고 괴이쩍음[疑訝]이 있어도 이미 모두 믿고 따랐습니다.

당연히 집에서 일어나 전투하는 날이 다다르자 드디어 참소로 인한 노여운 눈을 나타내며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게 그 노비를 매질하려고 하니 우리 장수의 참소 믿음이 극에 달했습니다.우리 장수의 규율을 지킴은 엄합니다.그러나 사정을 자세히 말하여[陳情]하나로 진달하면 장차 의혹을 되돌려서 그 노비를 풀어서 사면하고 그 말로 온정으로 덮어 다스려서 협모(協謀)를 한 즉 비록 어제의 참소를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졸(士卒)들도 이에 의혹을 풀고 지금 비록 처음엔 오류로 매질을 하려고 했으나 죄인을 용서하여 놓아주는[肆赦]것이 양책(良策)이고 다음으로 집사(執事)의 다행이자 군졸들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부장(副將)의 그 처신(處身)역시 당연히 깨끗이 녹아[渙然]개운하게 의심이 풀려[釋然]가슴 답답함[芥蔕]도 없고 털끝만큼의 분한 생각도 없이 더욱 부지런히 적을 잡아 무찌르는 일을 해야 되는데 업신여김의 상함에 밀려서 오래도록 군()을 돌보지 않고,또 집사(執事)가 나서서 내게 억지로 하는 즉 대장(大將)이 내게는 사소한 장애나 멀어짐이 없어야하고, 집사(執事)도 나에게 털끝만큼의 서로 어긋나거나 모순됨[抵梧]이 없어야 합니다.만일 부덕(不德)을 무릅쓰고 대장(大將)의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말하길 더러운[汚穢] 일이 없다고 해도 남들이 이미 더러운 이름을 붙이게 되어 대장(大將)의 총명에 의혹이 생기고 여러 집사(執事)들과 긴밀하던 교제가 소원(疎遠)해 진다면 반드시 그 사람을 적발하여 그 말을 변별해야 합니다.제가 과연 그렇다면 내 죄()를 분명하게 밝혀야지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죄가 분명하게 밝혀진[明正] 연후에 내가 동지(同志)로 협심(協心)할 수 있고 내가 시종(始終) 같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중(陣中)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오직 관찰하는데 재촉하지 말기를 바라니 이는 즉 일이 서로 각이 짐을 싫어하여 정의적(情宜的)으로 자처(自處)하는데, 집사(執事)는 묵묵히 물러나 나란히 앉아서 논의하기를 우리 대장(大將)이 진()으로 돌아온 뒤에 마당과 길에서 절하고 그 실정(實情)을 진달(進達)하면 반드시 누가 어떤 말을 하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듣고 그 후에 물러나서 그 죄를 논의하기로 약속했습니다.만약 뺨[頰輔]을 붙이는 부랑배(浮浪輩)로 나가면 반드시 무거운 논의가 아니면 과연 장수에게 모반하는[反側]마음이 있는 것이므로 헐뜯는 계획을 꾀하는 즉 지금은 부장(副將)을 헐뜯고 내일은 집사(執事)를 헐뜯고, 또 그 다음날에는 장차 대장(大將)을 헐뜯게 될 것입니다.이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화()는 점점 커져서 위로 고하고 대장(大將)이 여러 막료들에게 유시를 내리고 북을 치고 공격을 시키는데 그런 자취가 우리 진영에 다시 붙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부장(副將)이 출진(出陣)을 힘쓰는데 다시 협심(協心)해서 힘을 모아 큰 일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찌 좋지 않습니까? 여러 사람의 의논[僉議]으로 이미 진()을 조화되게 잘 어울리도록 약조를 하여 이미 이루어졌는데 말로써 귀에 못이 박히도록 또 하여[瀆告] 번거롭고 어지러움의 과실을 끼쳐서 두렵습니다만 감히 필설(筆舌)로 그 전말(顚末)을 모두 진달하오니 바라건대 우리 대장은 그 마음이 공정하고 그 말이 바름에 들추어내었습니다.[摘發]마치 잘난 체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訑訑] 기색이면 끝내 절절(切切)한 충고를 막게 되어 다만 말하길 난 이미 의혹을 풀었으니 그도 오히려 분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또한 망녕된 사람일 뿐이다.라고 하며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마음을 기울여 간담(肝膽)을 토로(吐露)하지 못할 것입니다.이미 사실이 아니고 또 용서하지 않은 즉 장차 어떤 군졸(軍卒)로 장차 어떤 일을 허락하여 이루어 내겠습니까? 참소하여 헐뜯는 사람은 불과 일개 군졸로 일개 군졸을 사랑하여 하나의 진영과 하나의 대장을 잃게 된다면 어찌 다른 진영에서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장수가 이미 부장(副將)의 헐뜯음을 당하여 밝은 지혜로 온전함을 구하여 그 말의 허황된[詭誕]구조를 믿은 즉 이미 미워하는 사졸을 정녕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진실로 혹 부장(副將)에게도 사랑이 있어서 오히려 의심이 있다면 부장(副將)도 그 의심을 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바라오니 우리 장수는 혹시라도 의심을 말고, 혹 사랑만 있지 마십시오.아아! ()이 아직 치열한 기세이니 토벌을 도모하는 것이 급한데 긴요함에 관계되지도 않은 말로 따짐이 심하고 대장(大將)이나 부장(副將)한 사람의 장수도 없으면 안 되니 반드시 협심(協心)하는 일이 효과를 이룰 수 있은 즉 먼저 참소하여 헐뜯은 죄를 바로 잡아서 두 장수가 화해하는 마음이 무릇 어찌 진중(陣中)의 대사(大事)가 아니겠습니까? 천견(淺見)으로 거리낌 없는 말이 매우 분수에 넘치지만[僭妄]실로 주신(主臣:임금)으로부터일 뿐이니 삼가 밝게 해량해 주십시오.

 

與申禮安順夫之悌書(여신예안순부지제서)

 

頃者成生應賢自花山還道尊敎區錄吾陣所斬倭頭某將幾級成小冊子以送云此乃某事而有未可果爲者乃以凡陣中日記及諸文書可考者悉

경자성생응현자화산환도존교구록오진소참왜두모장기급성소책자이송운차내모사이유미가과위자내이범진중일기급제문서가고자실

爲見失於去歲南中之行無所据覈此固尊公已聞於成生者不復細陳大槩吾陣倡起最首江左而非柳任兩公不可爲也則凡始終云爲無非此兩

위견실어거세남중지행무소거핵차고존공이문어성생자부부세진대개오진창기최수강좌이비류임양공불가위야칙범시종운위무비차양

人功力而斬首多者實李右副也必欲區錄顆級則恐他將之反爲空札也是亦不待考列而知矣第任欲起復之際雖不在陣亦有受署於呈文者

인공력이참수다자실이우부야필욕구록과급칙공타장지반위공찰야시역부대고열이지의제임욕기부지제수부재진역유수서어정문자

此則可以同施而金左副涌50)之下署處又多於任是皆考諸本呈昭昭可見幸乞看檢本呈三將幷署則竝施爲三將之功兩署亦然若一將單署

차칙가이동시이금좌부용50)지하서처우다어임시개고제본정소소가견행걸간검본정삼장병서칙병시위삼장지공양서역연약일장단서

則亦以署者爲主此外恐無明白公平底道理未知尊意以爲如何向旣以書代進今又冒栽或公或私每通片札似若有常所往來之分雖蒙恕亮實

칙역이서자위주차외공무명백공평저도리미지존의이위여하향기이서대진금우모재혹공혹사매통편찰사약유상소왕래지분수몽서량실

深惶尺

심황척

 

예안현감 순부(順夫) 신지제(申之悌)에게 준 글

 

요즘 성응현(成應賢)군이 안동(安東:화산)에서 도()로 돌아가는데 교구록(敎區錄)에 우리 진()에서 왜적의 목을 벤 것이 어떤 장수가 몇 급()인지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보내면서 이것이 어떤 일이고 있을 수 없는 것을 과연 한 자가 모든 진중일기(陣中日記) 및 여러 문서들을 남김없이 참고하여 보았는데, 작년 남중(南中) 행차에서 잃어버려 의거할 바가 없어서 실상을 조사하겠다고 이르셨답니다.이는 진실로 공()께서 이미 성군(成君)께 들으셨을 테니 반복해서 자세한 진술을 하지 않겠습니다만 대개 우리 진()은 경상좌도[江左]에서 가장 먼저 창의(倡義) 기병(起兵)했으며 유종개(柳宗介)공과 임흘(任屹) 두 공()이 아니면 불가(不可)했은 즉 모든 전말[始終]을 말씀드리면 모두 두 사람의 공력(功力)입니다.(적의)참수(斬首)를 많이 한 것은 실은 우부장(右副將)인 이화()입니다.반드시 구록(區錄)(적을 벤)머리 숫자를 바란다면 다른 장수의 반발이 두려워 빈 서찰이 됐습니다.이 역시 늘어서 상고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제가 임흘(任屹)과 다시 일어나고 싶어 하려고 할 때 비록 진()이 있지도 않았고 또 서명(署名)을 받아 정문(呈文)한 것도 있어서 이는 즉 같이 주선했기에 가능했으며, 좌부장(左副將)김용(金涌)의 휘하에 서명한 곳이 또한 많고, 임흘(任屹)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여러 벌을 올렸으니 환하고 뚜렷하게 볼 수 있었으면 다행이겠습니다.조사한 원본을 보아 주시를 바라며 세 장수가 올린 것에 아울러 서명 했은 즉 같이 주선한 세 장수의 공()입니다.양쪽에 서명한 것 또한 있습니다만 만약 한 장수가 단독으로 서명한 것이라면 또한 이 서명한 사람의 위주가 될 테니 이는 밖으로 명백(明白)하고 공평(公平)함이 없이 도리(道理)가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받드는 뜻을 모르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이전에 이미 글로 대신 진달했는데 지금 또 재량을 무릅씀은 혹 공적(公的)입니까? 혹은 사적(私的)인 것입니까? 매번 편지 서찰로 통하니 만약 평상시가 되면 왕래(往來)하면서 교분을 나누듯이 비록 실로 황공한 편지를 용서하고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雜著(잡저)

 

海鷗不下說(해구부하설)

 

鳥有鷗以名者居東海之濱乃與昻藏一老翁隣焉翁以鷗爲伴鷗以翁爲主朝暮與之游翔靡所疑鷗固翁外無相親翁亦鷗外無相知物我渾忘

조유구이명자거동해지빈내여앙장일로옹린언옹이구위반구이옹위주조모여지유상미소의구고옹외무상친옹역구외무상지물아혼망

歲月已久矣一朝鷗擧冥冥不肯復下翁立倀倀望眼空寒吁是何鷗與翁相狎之旣密而相疎之太遽有若雲飜雨覆然哉噫我知之矣翁有機乎始

세월이구의일조구거명명불긍부하옹입창창망안공한우시하구여옹상압지기밀이상소지태거유약운번우복연재희아지지의옹유기호시

之泯機也翁乎甚矣鷗不色擧殆難免矣夫噫因不失親鷗豈知耶使鷗而信之者翁也使鷗而不信之者亦翁也信之而下鷗見欺於翁不信之而不

지민기야옹호심의구불색거태난면의부희인부실친구개지야사구이신지자옹야사구이불신지자역옹야신지이하구견기어옹불신지이불

下鷗何負翁翁無罪鷗斯天際之鷗至矣嗚呼余寧爲海上鷗不願爲海上翁可以人不如鳥乎余將入海盟於鷗姑爲之說

하구하부옹옹무죄구사천제지구지의오호여녕위해상구불원위해상옹가이인불여조호여장입해맹어구고위지설

 

잡저(雜著)

 

바다 갈매기[海鷗]는 내려오지 않는다는 설()

 

갈매기라는 이름이 있는 새가 동해의 모래톱에 풍채 좋고 의기양양하게 한 노옹(老翁)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노옹(老翁)은 갈매기가 짝이고 갈매기로서는 노옹(老翁)을 주인으로 하여 아침저녁 매일 같이 멀리 높이 날아다니며[]함께 놀아서 갈매기는 참으로 노옹(老翁) 외에는 서로 친함이 없는 것 같았고,노옹(老翁)또한 갈매기 외에는 서로 아는 것이 없는 듯 물아(物我)를 온통 잊은 듯이 지낸 세월이 이미 오래인 듯 의심이 들 정도였다.하루아침에 갈매기가 아득히 먼[冥冥]곳으로 올라가 다시 내려옴을 즐겨 하지 않자[不肯]노옹(老翁)은 서서 길을 잃고 헤매며[倀倀]차고 빈 하늘만 바라보며 탄식하니 이 어찌 갈매기와 노옹(老翁)이 서로 길들이려 함이 아닌가? 이미 친밀함이 서로 소원해져서 크게 절박함이 있어서 마치 구름이 번듯치고 비가 뒤집히는 듯 하도다.아아! 내가 알기로 노옹(老翁)에게는 기미가 있었지 않았겠는가?

뒤섞이기 시작하는 기미가?!노옹(老翁)이여 심하도다! 갈매기가 물색없이 올랐다가 위태롭게 어려움을 면키 어렵게 되었도다 아아!돌아오지 않아서 친한 갈매기를 잃어버릴 줄 어찌 알았으랴? 갈매기에게 믿음을 준 것은 노옹(老翁)이고,갈매기에게 불신(不信)을 준 것 역시 노옹(老翁)이라.믿고서 내려오면 갈매기는 노옹(老翁)을 속인 것으로 보이고, 믿지 않아서 내려오지 않으면 갈매기는 노옹(老翁)에게 어떤 부담을 가진 것이니 노옹(老翁)은 무죄(無罪)이나 갈매기는 이 하늘가의 지극한 곳에 이른 갈매기일 것이다. 아아! 나는 정녕 바다 위의 갈매기가 되지 해상(海上) 노옹(老翁)의 갈매기가 되기를 원치 않으리라.사람으로서 새와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장차 바다에 들어가서 갈매기 맹주에게 잠시 이런 말을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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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臺51)記 課製(춘대기 과제)

 

奧若稽古歲起攝提也天皇氏木德王命之曰天可宇毋庸宮室地可席毋煩几案嬪服御非我所急飮食衣服非我所遑惟我首出庶物體元居正宜

오약계고세기섭제야천황씨목덕왕명지왈천가우무용궁실지가석무번궤안빈복어비아소급음식의복비아소황유아수출서물체원거정의

有臺春其名與我共登者其惟億萬姓乎於是築信土高之樹其上仁木不日以成八荒同城皇居譬辰衆拱如星日以無爲爲有爲視同胞無其形兼

유대춘기명여아공등자기유억만성호어시축신토고지수기상인목불일이성팔황동성황거비진중공여성일이무위위유위시동포무기형겸

吾與而囿育當是之時日出嵎夷氣淑鳥墅谷風扇和乾元布澤以言其平秩則本乎天者位乎上本乎地者位乎下均齊方正各得其所又豈有兄弟

오여이유육당시지시일출우이기숙조서곡풍선화건원포택이언기평질칙본호천자위호상본호지자위호하균제방정각득기소우개유형제

之顚連而無告者耶以言其生成則乾道倡而成男坤道和而成女天地交泰生化無窮雖在飛禽走獸之微亦得以自相孶尾於其間有是哉民物之

지전연이무고자야이언기생성칙건도창이성남곤도화이성녀천지교태생화무궁수재비금주수지미역득이자상자미어기간유시재민물지

咸若也氣象熙熙風習皥皥萬八千歲藹郁長春臺乎臺乎不可尙已皇以是傳之地皇地以是傳之人皇前後相繼其揆則一自是以後伏羲神農黃

함약야기상희희풍습호호만팔천세애욱장춘대호대호불가상이황이시전지지황지이시전지인황전후상계기규칙일자시이후복희신농황

帝帝堯大舜之治天下也莫不登斯臺而發春政夫所謂養犧牲敎火食作舟車濟不通者固三皇之所不屑而亦可見因時增築制度漸備矣茅茨土

제제요대순지치천하야막불등사대이발춘정부소위양희생교화식작주차제불통자고삼황지소부설이역가견인시증축제도점비의모자토

階就之如日五統九韶有爛慶雲則臺上之春可謂殷矣地平天成府事修治綱解三面德及禽獸則禹湯之於臺非不登也而家傳至桀曷喪有歌獨

계취지여일오통구소유란경운칙대상지춘가위은의지평천성부사수치강해삼면덕급금수칙우탕지어대비불등야이가전지걸갈상유가독

夫忝厥多瘠閔詔則抑春之欲暮者耶至德之嗣鷹揚牧野善雖未盡仁實無敵井疇遵畫民産恒足衣帛食肉人不飢寒則無惑乎父母之孔邇而聖

부첨궐다척민조칙억춘지욕모자야지덕지사응양목야선수미진인실무적정주준화민산항족의백식육인불기한칙무혹호부모지공이이성

統攸垂隆緖欲替囹圄乍空於成康52)盡化於穆滿則春風吹盡臺覆于隍嗚呼渭面論囚波心血赤披哉狂秦固無足道而漢楚乾坤虎鬪龍

통유수융서욕체영어사공어성강52)진화어목만칙춘풍취진대복우황오호위면논수파심혈적피재광진고무족도이한초건곤호투용

爭雖四海終輸於豁達之手而馬上提劒風起雲揚猶未免春去臺空也議賑春和玄其庶而窮黷繼之已矣西都式至于唐治盛貞觀53)斗米

쟁수사해종수어활달지수이마상제검풍기운양유미면춘거대공야의진춘화현기서이궁독계지이의서도식지우당치성정관53)두미

三錢夜戶不閉天其或者回厥斗杓而血蝶閨禁恩戕骨肉薄於所厚若是其聖酷則雖曰煦噓民物以盡濟安之策吾未之信也柴祝生聖香孩著黃

삼전야호부폐천기혹자회궐두표이혈접규금은장골육박어소후약시기성혹칙수왈후허민물이진제안지책오미지신야시축생성향해저황

立經陳紀仁厚爲尙汴上開基似非偶然而受授之際燭影云南渡蒼惶百年風塵回首春臺荒草蕪沒於乎有衰末路滔滔噫一團陽春萬古沖和

입경진기인후위상판상개기사비우연이수수지제촉영운남도창황백년풍진회수춘대황초무몰어호유쇠말로도도희일단양춘만고충화

其在于天固無晷刻之或間而秋遂冬成只是保合於一元則春無可歸臺自若也人病不探世莫登耳姬氏之衰有一靑牛白髮言訖五千夢入太古

기재우천고무귀각지혹간이추수동성지시보합어일원칙춘무가귀대자약야인병불탐세막등이희씨지쇠유일청우백발언흘오천몽입태고

希夷乎一蹴而登春臺自得之樂盖亦可想而坐在淸虛其騖外矣尼山日月大聖天繼老安54)少懷上下同流鑄顔淵以春生許曾點之浴沂55)

희이호일축이등춘대자득지락개역가상이좌재청허기무외의니산일월대성천계노안54)소회상하동류주안연이춘생허증점지욕기55)

相與拱揖乎羲皇姚姒之聖遊泳於泗林壇杏之春如有試者期月可矣而素王千載寂寞遺臺吾道非耶何其惜哉人豪有挺足躡天根三十六宮都

상여공읍호희황요사지성유영어사림단행지춘여유시자기월가의이소왕천재적막유대오도비야하기석재인호유정족섭천근삼십육궁도

是春也則弄凡堯夫獨登其臺座上春風吟弄56)光霽57)紫陽58)從容琴養中和濂洛59)諸賢直繼前聖而沒地齎志有臺何益嗚呼大東重華日

시춘야칙농범요부독등기대좌상춘풍음롱56)광제57)자양58)종용금양중화렴낙59)제현직계전성이몰지재지유대하익오호대동중화일

揭暘谷靑宮毓聖潛德又新此政春臺經始之日臺苟成也則有邦其居俗躋雍熙耕田鑿井民樂其生山梯海航守在外夷太平萬世庶將無讓於古

게양곡청궁육성잠덕우신차정춘대경시지일대구성야칙유방기거속제옹희경전착정민락기생산제해항수재외이태평만세서장무양어고

矣余以春服童子乃所願則學孔子而紫氣關中況若有老氏之夢涵濡雨露沐浴膏澤風乎臺上詠而乃歸遂以臺之興廢終始一如所見爲記噫君

의여이춘복동자내소원칙학공자이자기관중황약유로씨지몽함유우로목욕고택풍호대상영이내귀수이대지흥폐종시일여소견위기희군

吾堯舜之君民吾堯舜之民君民同樂於一臺而余得爲皐稷契左右堯舜進退乎君民之間則幸矣不然而或爲邵60)親見伏羲或爲周61不除

오요순지군민오요순지민군민동락어일대이여득위고직계좌우요순진퇴호군민지간칙행의부연이혹위소60)친견복희혹위주61부제

庭草或爲程種芝蘭剪荊棘或爲朱等閑識面於萬紫千紅而已則余不爲不幸而抑爲我一片靑丘之不幸也不亦甚乎嗚呼噫噫天啓暮春欲晦記

정초혹위정종지란전형극혹위주등한식면어만자천홍이이칙여부위불행이억위아일편청구지불행야불역심호오호희희천계모춘욕회기

 

기문()

 

춘대기(春臺記) 월과로 지음[課製]

 

깊숙한 옛 도()를 상고해 보니 섭제(攝提)인 인()에서 세월을 기산(起算)한다.천제(天帝:天皇氏)의 목덕(木德)이 펼치는 봄에 왕명(王命)으로 이르길 하늘은 덮을 수는 있어도 궁실(宮室)을 짓고 자리를 만들 수는 없고,책상[几案]에서 비빈(妃嬪)의 복장까지 번거롭게 할 것이 없다는 어명이 있었다.무아(無我)상태에서 빨리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는 무아(無我)상태로 황망히 생각하니 나는 모든 물체의 우두머리로 태어나서 으뜸으로 바르고 마땅함에 거()하고 있다.()에 그 이름이 춘()이란 이름이 있는 대()가 있는데 거기에 나와 같이 오른 사람을 생각하니 지금은 억만 명이나 되지 않을까? 땅을 믿고 쌓은 높은 나무는 그 위는 인목(仁木)으로 오래지 않아 황제가 사는 성()과 같이 전 세계 8방의 끝[八荒]을 이뤄서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모든 별들을 거두어들이듯이, 태양이 아무 하는 일 없이[無爲]하는 것이 있는[有爲]듯이 동포(同胞)를 보면 그 형태가 없다.아울러 나와 같이 동산을 기르고 있는 바로 이 때 해 뜨는 곳[嵎夷]에서 해가 떠오르니 들의 새들도 맑은 기운에 골바람[谷風]을 부채질하며 화창한 하늘의 도[乾元]는 은택을 베풀어서 말도 분별 있게 질서를 세워[平秩]야 하는 즉 이것이 근본이 아닌가? 하늘[]이란 자리인가? 위가 근본인가? 땅도 위치인가? 아래에서 균형이 잡혀있고[均齊] 네모지고 반듯하게[方正] 각기 그 있는 바를 얻어서 있는데,또 어찌 형제가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顚連] 알리는 자가 없는 것인가? 그 생성(生成)에 대해서 말해보면 건도(乾道)는 창성하여 남자를 이루고 곤도(坤道)는 화합하여 여자를 이루어서 천지(天地)가 크게 교합하여 생명으로 변화함이 무궁하니 비록 날짐승은 날고 들짐승은 달리며 미물들 역시 각기 서로 교접할 상대가 있어서 그 사이에서 새끼를 낳아서 이렇게 되었도다.민물(民物)이 모두 다 이처럼 되었도다.기상(氣象)이 화락하고 풍속[風習]은 마음이 넓고 여유가 있어서[皞皞] 18천년 동안 무성하게 오래도록 우거진 것이 태평성대인 춘대(春臺)가 아닌가? ()란 상고할 수는 없지만 이미 천황()이 땅에게 이를 전했고,지황(地皇)이 이를 인황(人皇)에게 전한 바 전후로 서로 이어짐을 헤아린 즉 하나에서 비롯된 이것이 이후에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제요(帝堯),대순(大舜)이 다스리는 천하(天下)이다.이 대()에 오르지 않고는 봄의 정사(政事)를 발()하지 말진 저!소위(所謂)희생물(犧牲物)을 기르고,화식(火食)을 가르치고,[]와 수레[]를 만들어 통하지 않음을 건지신 분이 참으로 3(三皇)이 하신 바이라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며, 또 때에 따라 제도(制度)를 점차 구비하여 증축(增築)했음을 볼 수 있다.흙 계단에 띠와 납가새가 덮어 가고 해처럼 오현금(五絃琴:()임금이 만든 5줄 거문고)과 구소(九韶:()임금이 지은 악곡)가 있어서 서광이 비칠 조짐이 있는 구름[慶雲]이 찬란한 즉 대() 위의 봄은 가위(可謂) 은성(殷盛)하다.땅은 평화롭고 하늘은 고을을 이루고, 일은 강령을 닦아서 다스리니 세 방면으로 덕()이 풀려 금수(禽獸)에게 까지 미쳐서 우()왕이나 탕()왕에 이르기까지 대()에 오르지 않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으로 전해져서 걸()에게 까지 이르렀는데,어찌 망하는 노래를 홀로 불렀단 말인가? 무릇 더럽힘을 다하여 파리함이 많아 마음 아파함을 알린다면 봄을 억눌러서 저물려고 하지 않겠는가? 뒤를 이은 지극한 덕()으로 매를 날리고 들에 방목을 하며 좋았으니 비록 인()에는 미진(未盡)해도 실로 적()이 없어서 밭두둑으로 우물정자로 획을 그어서(丁田制를 시행하니) 백성들의 물산인 의백(衣帛),식육(食肉)이 항상 풍족하여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가 없은 즉 미혹함이 없지 않겠는가? 매우 가까운 부모의 성통(聖統)이 유유히 내려와서 융성한 실마리로 바꾸려고 하여 감옥[囹圄]도 잠시 비니 편안함을 이루고,목왕(穆王)때 원학(猿鶴)과 사충(沙蟲)으로 화()한 장병이 가득한 즉 춘풍(春風)이 대()를 채워 산골짜기로 덮어 부네.

아아! 위성(渭城)함양(咸陽)의 면모를 논하면 죄수 물결 중심에는 붉은 피가 날아오르지 않았는가? 미친 진()나라는 참으로 도()에는 만족할 수 없어서 한()과 초()가 용호(龍虎) 쟁투(爭鬪)를 하여 비록 사해(四海)가 활짝 열려서[豁達] 마침내 손수 운반할 수 있었으나 마상(馬上)에서 칼 바람[劒風]을 일으키니 구름이 듯 날렸어도 오히려 봄이 가는 것은 면하지 못하고 대()는 비었네.구휼하는 논의로 봄은 화창하여 그 모든 사람들이 말없이 조용히[] ()박해도 더러움을 이어갈 뿐이었네.서쪽 도읍에 지극한 경의를 표한 당()나라는 정관(貞觀)의 성대한 치세로 쌀 1말에 3()하고 밤에도 문을 닫지 않았었는데 혹자는 그 하늘이 북두칠성의 국자 자루가 돌기를 다한 듯 궁중에서는 은총을 받으려는 궁인(宮人;蹀粉)들이 골육(骨肉)의 피를 불러 그 후()함이 엷어져 마치 그 성덕(聖德)이 가혹하게 됐은 즉 비록 말하기를 민물(民物)과 호흡[煦噓]하며 모두 편안하고 가지런한 정책이라고 해도 나는 믿지 못하겠다.성인(聖人)이 나심을 제사지내고 축()하며 어린 아이들 향 피우고 황룡포를 입고 서서 한 세기를 늘어놓고 지내는 인후(仁厚)함은 오히려 하남(河南:汴水)에서 그 기틀을 위에서 열었으니 아마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주고 받을 때 촛불 그림자처럼 비참하다며 허둥지둥[蒼惶] 남쪽으로 건너 와서 백년의 병란(兵亂:風塵)에 머리를 돌려 춘대(春臺)를 보니 거친 잡초에 뒤 덮여 보이지 않게[蕪沒] 되지 않았는가? 슬픔이 있는 말로(末路)는 도도(滔滔)하게 어지러워 탄식하네.아아! 한 덩어리[一團]의 양춘(陽春)이 만고(萬古)토록 천지 사이의 조화된 기운[沖和]이 그 하늘에 있으니 참으로 시각[晷刻]이 없는데 혹 그 사이에 가을이고 드디어 겨울을 이루니 단지 이는 만물의 근본인 일원(一元)에 안정시켜 화합[保合]하는 즉 봄은 돌아 올 수 없어도 대()는 태연 자약(自若)하다.사람이 병이 깊지 않으면 세상에 어찌 오르지 않을까? ()나라 희씨(姬氏)의 쇠()함은 한 마리 청우(靑牛)가 백발(白髮)이 됐다는 말에서 변화물에 대한 민간 신앙으로 필경에는 5천언의 도덕경(道德經)이 꿈에 들어오니 태고(太古)적 심오한 도()의 본체[希夷]인가? 일축(一蹴)하고 춘대(春臺)에 올라 스스로 즐거움을 터득하고 있는데 어찌 또 앉아서 생각할 수 있으니 마음에 잡된 생각이 없이 맑고 깨끗해져서[淸虛]있는데 그 밖의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가 나신 니구산(尼丘山)의 일월(日月)같은 공자(孔子)대성(大聖)이 하늘에서 이어져 늙은이를 편안히 하고[老者安之]하고 젊은이를 품어주어[少者懷之]상하(上下)를 같은 범주의 부류로 하니 안연(顔淵)으로 인()의 봄이 살아나고 증점(曾點)이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싶다는 말을 허여하며 서로 같이 읍()을 하지 않았는가? 복희[羲皇]씨와 요사(姚姒:舜임금)씨 같은 성인(聖人)도 사수(泗水)와 산림에서 유영(游泳)했고,공자가 가르치던 행단(杏壇)의 봄은 시도한지 아마 기월(期月: 1개월 혹은 1주년)에야 가능했을 뿐이지만 소왕(素王:老子)은 천년을 남긴 대()도 적막(寂寞)하니 내 도()는 아니리니. 어찌 그것이 애석하지 않은가? 인간 호걸(豪傑)들이 빼어나서 하늘의 맨 끝인 천근(天根)36(:제왕의 궁전.)을 발로 밟아 올라가니 모두 봄인 즉 무릇 높은 사내들을 희롱하며 홀로 그 대()에 올라가 앉으니 위에는 봄바람이 불어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광풍제월(光風除月)하네.자양(紫陽:朱子)이 조용히 거문고 타며 중화(中和)를 기르고 주돈이(周敦),정이천(程伊川:) 정명도(程明道:程顥)같은 염락(濂洛)의 여러 현자(賢者)들이 성인(聖人)의 앞을 바로 이었다[直繼]가 죽었는데 땅에는 뜻을 갖춘 대()가 무슨 도움이 될까? 아아! 우리나라[大東]에도 순()임금의 문덕(文德)이 거듭되니[重華] 해는 동쪽 끝 해 돋는 양곡(暘谷)에서 높이 오르고 세자궁[春宮]에서는 성인(聖人)의 잠덕(潛德: 미덕을 숨김)을 기르고 또 이처럼 새로운 정사(政事)를 춘대(春臺)에서 일을 시작하는 날 대()는 진실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그런 즉 이 땅에 살면서 풍속이 올라가고 천하가 태평하여[雍熙]밭 갈고[耕田]우물 파고[鑿井]백성들은 그 생()을 즐기니 산()에 의지하여 바다에 항해하며 외이(外夷)를 지키며 태평(太平)함을 만세(萬世)토록 많아서 장차 거의 옛날에 양보함이 없으리라.나도(曾點처럼) 춘복(春服)에 동자(童子)들과(沂水에서 목욕하는 것이)소원인 바 그런 즉 공자(孔子)를 배우고 자주 빛 서기[紫氣]가 동쪽에서 와서 관중(關中)에 있는데 하물며 마치 노자[老氏]의 꿈처럼 마치 우로(雨露)처럼 은택을 베풀어[涵濡]목욕(沐浴)함이 바람의 은택[膏澤]인가? ()위에서 읊고 돌아오니 드디어 대()에서의 흥함과 쇠함[興廢]이 시종(始終) 똑 같아서[如一]소견(所見)을 적는다.

아아! 임금도 우리 요순(堯舜) 같은 임금이고,백성도 요순(堯舜)의 백성이니 임금과 백성이 같이 한 대()에서 즐기니,나도 순() 임금 때의 신하였던 고요(皐陶),(),후직(后稷),()같은 현신(賢臣)이 좌우(左右)에서 요순(堯舜)과 같이 진퇴(進退)하는 것을 얻는다면 어떨까? 임금과 백성 간에 바로 행복일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혹시 소강절(邵康節)이 되어 태호(太皞)복희(伏羲)씨를 친견(親見)하던가 혹은 주돈이(周敦:濂溪 주무숙)가 되어 마당의 풀을 뽑지 않고 천지 생물의 기상을 관찰 하던가 혹은 정()선생이 되어 지란(芝蘭)을 심어 가시[荊棘]를 자르거나 혹은 주자(朱子)등을 한가하게 만자천홍(萬紫千紅)의 얼굴을 알아본다면[識面]나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지만 각설하고 난 한 조각 청구(靑丘)에 있으니 불행(不幸)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심했나? 아아! 아아!

천계(天啓:明 熹宗의 년호) 3[暮春] 그믐 무렵[欲晦]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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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唐中書舍人高季甫謝賜鍾乳表62)(의당중서사인고계보사사종유표)

 

言猶有諱實負驄馬63)之乘愛欲其生64)濫荷藥石之饋食報非望感恩增漸伏念臣愛君癖焉居官厥鞠躬盡瘁爲臣竊期於孔明犯顔勿欺事

언유유휘실부총마63)지승애욕기생64)람하약석지궤식보비망감은증점복념신애군벽언거관궐국궁진췌위신절기어공명범안물기사

上願學於魯叟頃承陛下之謬簡獲叩殿中之顯班言責所專不得言則當去政事或失隨有政而敢規豈曰利病云乎庶自盡職而已三年御史有何

상원학어로수경승폐하지류간획고전중지현반언책소전부득언칙당거정사혹실수유정이감규개왈리병운호서자진직이이삼년어사유하

補袞之得宜一日中書己知遷秩之踰分何圖十襲寶劑分自九重仙函其然豈然謂有瞑眩之進以藥報藥過蒙綸之褒顧玆乳粉之良又豈參朮

보곤지득의일일중서기지천질지유분하도십습보제분자구중선함기연개연위유명현지진이약보약과몽륜지포고자유분지량우개참출

之比貢自楚越得最難於人間名擅韶連産實稀於天下服之無斁非但百疾渾除妙乎其神抑且三生可迓尙一封之未柝已二豎65)之欲逋拜手

지비공자초월득최난어인간명천소연산실희어천하복지무두비단백질혼제묘호기신억차삼생가아상일봉지미탁이이수65)지욕포배수

先嘗敢曰未達八髓便爽更覺偏霑世固有可賞諫之君臣未見錫餌之史命賜束帛盛擧再著於漢家分置煎茶異數一書於吳紀臣實有愧帝

선상감왈미달팔수편상갱각편점세고유가상간지군신미견석이지사명사속백성거재저어한가분치전다이수일서어오기신실유괴제

前玆盖伏遇皇帝陛下猶視體視臣若治病治國和藥爲急不惜御髥於長城問疾斯頻乃開便戶於小壁遂令蒲柳之質得被石鍾之貽臣敢不益勉

전자개복우황제폐하유시체시신약치병치국화약위급불석어염어장성문질사빈내개편호어소벽수령포류지질득피석종지이신감불익면

迸鱗更進苦口勿藥有喜縱未占六五之辭損66)疾使庶無愧九二之責

병린갱진고구물약유희종미점육오지사손66)질사서무괴구이지책

 

표문(表文)

 

()나라 중서성(中書省)사인(舍人)인 고계보(高季輔)가 종유(鍾乳)를 하사(下賜)받고 사례함을 견주어서 올리는 표문(表文)말을 함에는 오히려 총마(驄馬)에 올라타고 있어서 실로 부담스러워서 꺼림이 있습니다.(논어의)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외람되게 약석(藥石:鍾乳)을 하사(下賜)하여 보내시는[饋食]부담에 보답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대해 고마움[感恩]이 점점 증대합니다.()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임금을 사랑하는 습벽(習癖)이 있습니다.벼슬살이를 하고 있으면서[居官]부질없이 병들어 진심을 다해 나라 일에 이바지하지도[鞠躬盡瘁]못하고 있는 신()이 가만히 대단히 밝음을 구하면서 임금이 싫은 안색을 하는데도 마음에 두지 않고 바른말로 간()하는 범안(犯顔)을 하고, 일에 있어서도 위에서 원해도 속임과 거짓이 없게 하라는 것을 공자[魯叟]에게 배웠기에 요즘 폐하(陛下)의 오류를 받들어 글로 대궐 안[殿中]의 현반(顯班)에 조아림을 얻게 됐습니다.언론의 책임을 맡은 간관(諫官)의 임무가 오로지 말함을 얻지 못한 즉 당연히 정사(政事)는 멀어지고 혹시라도 정치(政治)에 수반하는 규정을 감히 잃지 않겠습니까? 어찌 이익과 손해 득실[利病]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거의 자신의 직분에 다했을 뿐,3년 동안의 어사(御史)로 있으면서 무슨 임금의 잘못을 보충하는 일[補袞]을 얻었다고 과연 어느 한 날에 중서성(中書省)으로 바꾼 다는 것을 알고 분수에 넘치는 차례인데 어찌 열 겹이나 싸서 소중히 비장(秘藏)[十襲]구중(九重)궁궐의 신선의 함()에서 임금의 약제[寶劑]를 이렇게 나눠 주시니 어찌 이처럼 과실(過失)에 약석(藥石)되는 말을 해 주었으니 약석(藥石:鍾乳)로 보답한다는 임금의 조칙[]의 말로 돌아보며 포상함을 입어서 어지러워 보이지 않게[瞑眩]됩니다.이 종유(鍾乳)가루의 좋음 또한 어찌 삼()이나 창출(蒼朮)에 비교하겠습니까? ()나 월()의 공물(貢物)로 인간에게는 가장 얻기 어려운 것으로 이름난 멋대로 예쁘게 이어서 난 실로 천하에 희귀한 것으로 복용하면 싫어할 수 없어서 비단 백가지 질병도 모두 없애버리는 묘()한 것이 아닙니까? 그 신효(神效)함은 각설하고 또 삼생(三生)에 마중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한 통의 편지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이미 병마(病魔:二豎)를 잡고 싶습니다.손을 맞잡고 머리 숙여 절하며[拜手] 먼저 시험 삼아 감히 말씀드리면 정수(精髓)에도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한편 상쾌하고, 또 두루 미침이 세속에 젖음을 깨닫게 되어 참으로 임금께 간()하는 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은 아직 사신(史臣)에게 먹이[]를 하사(下賜) 받음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명()을 내려 속백(束帛)의 예물을 성대하게 거행하는 하사(下賜)를 하셨습니다.한방(漢方:漢家)에서 거듭 드러나기로는 나누어 두었다가[分置]차로 달여서 먹는다는 이례적인 특별한 은총[異數]이 오기(吳紀)라는 한 책에 있습니다.()이 실로 황제(皇帝)께 참괴(慙愧)됨은 황제(皇帝)를 도운 것도 없는데 전에 이처럼 아마 황제(皇帝)폐하(陛下)를 만나 엎드렸으면 오히려 신체를 보시고 신()의 몸을 보셨다면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치료하는 조화로운 약이 급했을 것입니다.장성(長城)에 황제의 수염이 날림을 아끼지 않으시며[不惜]빈번하게 모든 고통을 물으시니 작은 벽의 부엌문을 열고 명령을 따릅니다.갯버들과 수양버들처럼 빨리 시드는 신체가 쇠약한 체질[蒲柳]이 종유석[石鍾]의 주심을 입어 얻었으니 신()은 감히 더욱 힘써서 비늘 같은 시종(侍從)들을 물리치고 다시 입에 쓴 고언(苦言)을 진언(進言)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이 있다고 기뻐함을 용서하지 마십시오.손괘(損卦)의 점사(占辭)에서도 제왕의 자리인 5에 부드럽고 유약한 음()6이 아니라 누군가 도와서 유익하게 하며, 하늘이 보우(保佑)한다고 했으며, 병을 치료하듯이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의 결점을 고치고 옳은 일은 빨리할수록 기쁨이 있고 허물이 없으리라. 고 했으며 모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아래 신하의 자리인 2의 자리에 강강(剛强)한 양()9가 자신의 손실을 가져오지 않고 남에게 보탬을 주는 신하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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